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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운 것은 종잣돈


BY 미개인 2014-08-23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졸업 후 스스로 배우는 데 들어가는 소자본 같은 것이다.

                             --토머스 페인--

 

토머스 페인(1737~1809) 미국.작가.국제적 혁명이론가.

영국의 퀘이커교도인 코르셋 제조업자 가정에서 태어나 13세 까지는 학교에 다녔으나 ,가난 때문에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정치와 사회제도의 모순을 체득하였다.

런던에서 만난 벤자민 프랭클린의 소개로 필라델피아로 이주,미국 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 때 활약하였다.

'상식'을 통해 미국이 공화국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독립이 가져오는 이익을 펼쳐보여 사람들에게 열망을 갖게 만들었다.

또한 그 책에서 봉건과 왕을 강하게 비판했고,미국 독립 전쟁 때 '위기'를 간행,시민의 전투의지를 끌어올렸다.

혁명 중 '이성의 시대'을 통해 "신은 있지만 인간과 교류하지는 않는다.그러므로 계시는 가짜이고,인간이 신을 안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게 드러나고,

무신론자로 오해를 받아 여생을 가난하게,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았다.(위키백과)

 

유치원에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배웠다는 투의 책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투명하리만치 순수한 당시의 어린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이 사실은 인생을 살아가며 알아야 할 모든 것이었음을 고백한 것으로 아는데,

나이가 들어가고 레벨이 올라가면서 점차 약삭빠를 것을 배워온 우리들의 교육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나는 사필귀정이란 가르침을 무엇보다 소중한 가르침으로 알고 살아왔고,부정은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믿고 살아왔는데,그리고 확인해 왔는데,

어제 법정에서 느낀 ,그리고 확인한 바는 힘 있고 빽 있으면 승리할 수 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분위기였다.

병원측의 변호사가 들어오자마자 판사가 이내 알아보고 심리를 진행하는데,안면이 있거나 ,그 변호사가 꽤 유명하기 때문이었으리라.

내내 변호사는 자기의 주장을 펼쳤고,내겐 무언가를 물어보곤 답을 하려하면 중간에 끊어버리고 ,

한편으론 본 사건이 업무방해 가처분임을 강조하는 듯하다가,변호사가 진료행위를 이야기하면 경청을 해주고,

내게 뭔가를 물었을 때 진료행위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려들면,이건 업무방해 가처분 신청임을 강조하며  중간에 잘라먹기가 일쑤였다.헐~

새끼 변호사인 듯한 젊은이 둘과 함께 온 그 변호사는 재판할 맛이 났을 것이다.난 죽을 맛인데...

도둑을 도둑이라고 말하는 것도 명예훼손일 수 있다는 판사의 말은,설사 병원측이 잘못을 했더라도 그것을 고발하는 시위를 펼치는 것은 업무방해에 해당될 수 있다며,

내게 합의를 종용하고,얼마를 원하는 거냐면서 병원 측이 알고파하는 것을 대신 물어주기까지 한다.

변호사가 ,내가 210만 원을 물어달라고 했다고 말하자 ,이 자리에서 원하는 액수를 밝히라고까지 종용을 한다.

내가 돈이나 밝히는 찌질이로 전락하는 비참한 기분이 들었고,그런 말 한 사실이 없으며 돈을 원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치료를 원한다고 말하자,

돌팔이들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게 뭐냐며 얼른 합의하고 그 돈으로 다른 병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까지 친절하게(?) 조언을 한다.

이게 바로 법피아인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발끈했지만,숨돌릴 틈조차 주지 않고 끝내버린다.

쫓겨나듯 나왔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놈도 아니고,그들의 말대로 경찰에 끌려 내쫓기는 한이 있더라도 당당해주리라!

그리고 그게 과연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할 법정신의 실현인지를 따지기 위해서 달리 방법도 찾아보리라.

내 참...가진 만큼 누리고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이 비참한 기분을 어이 할꼬?

그러나 난 사필귀정이란 배움을 종잣돈 삼아 ,여기서 또 배워나갈 인생의 쓴맛을 배우는 데 써먹으리라.

 

앞에서 언급한 유치원 운운한 책의 내용을 어림짐작해 보자면,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것은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양보해야 한다.착하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정도의 것이지 않을까?

만고불변의 진리이니...

돈 좀 있다고,힘 좀 있다고 까불어대는 무리들이 과연 얼마나 잘 사는지 남은 인생동안 두 눈 똑바로 뜨고 봐주리라!

내 비록 가방끈이 짧다 하여 무시하고들 싶겠지만,난 그들보다 좀 덜 약삭빠를 뿐,못 배워서 못 살지는 않을 것이다.

못 배워서 그들보다 행복하지 말란 법도 없으니 보란듯이 행복하게 살아주마 각오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던 하루였다.

법정을 벗어나 나오는데,상대 변호사가 새끼 변호사들인 듯한 젊은이들과 마주 서서 뭐라고 하는데,

글쎄,"봐라,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가르치며 잘난 척을 하고  있었을까?그 새끼 변호사들은 고개까지 주억거리며 찬탄을 금하지 못했을까?ㅠㅠ

 

하지만 설사 그랬다고 하더라도 난 조금도 기가 죽지 않고,부럽지도 않다.

적어도 난 옳으니까...

단국대 치대병원의 자랑스러운 의사들이 ,너무 얕게 심어져서 그런 것 같다,보상 받으셔야겠다,

이렇게 시술한 의사가 누구냐는 식으로 이름을 물어 확인하고 진료기록에까지 남긴 의사도 있었다.

그리고 수차례 X-ray를 찍어댔으면서도 최종적으로 제거 수술을 한 의사의 말처럼 뼈가 더 망가진 것도 모르고 ,

임시방편으로 방치한 책임도 있다고 할 수 있다.

50퍼센트를 보상해주겠다는 첫 제의가 있었고,건달이 덩치 좋은 젊은 친구들 셋을 시립시켜놓고 협박성 발언을 해대다가 합의를 하자고도 했고,

어제 상대 변호사는 내가 말하지도 않은 210만 원을 꺼내들고 판사가 조정을 할 의사가 있느냐며 묻는데 슬쩍 내밀기도 했다.

이 모든 정황과 진료기록을 들고 끝까지 내가 옳았고 병원 측이 잘못했음을 밝혀내고 말리라.

학창시절을 점수기계로 살지 않았고,따라서 점수를 따는 비법(?)을 배우는 대신 선생님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여 온 내가 배운 것을 종잣돈 삼아 

앞으로의 나의 행복을 일궈가는 데 써먹으리라!

남들이 다 나를 루저라고 비웃는 한이 있더라도 ,나 스스로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다면 내가 이긴 것이고 ,내가 잘 산 것이라고 믿어주리라!

 

토머스 페인이 당시엔 비난을 받고 인정을 받지 못하며 고통스러웠을 수 있지만 3 세기째 작가로서 ,혁명이론가로서 칭송을 받고 있다는 것이 ,

그가 산 삶이 결코 그르지 않았음을 증명하듯,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삶의 비결임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물론 내 믿음이 100 퍼센트 옳다곤 자신할 수 없지만,적어도 난 약삭빠르지도 않고,누군가를 해칠 마음도 없는 사람이니 그닥 많이 틀리진 않으리라.

만일 토머스 페인이 당시 조금 편하게 살고 싶어하며 주장을 철회하고,저서를 수정하며 비굴하게 살았더라면 

지금 그가 누리는 지위를 누릴 수 있을까?

이 순신 장군이 당시 원균 등의 모리배들과 함께 권모술수나 부려댔다면 ,'명량'이 1500만 명을 넘어서는 공전의 히트를 할 수 있었을까?

쪽바리들이 자신들의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명장으로 기억할 수 있었을까?

그들에겐 그들의 그릇이 있었듯 나에겐 나만의 간장종지만한 그릇이 주어졌으니 그거라도 그득 채워서 ,

사발이나 떡시루만한 그릇을 타고나서도 약삭빠르게 처신하느라 반의 반도 못채우고 껄껄껄 하다가 죽을 그들 앞에 당당히 서 주리라!

그러면서 바라는 것은 아직 무궁부진한 가능성을 가진 나의 딸들이 부지런히 그릇도 키우고,그걸  채우는 데도 매진해서 

세상에 이름도 떨치고 ,스스로도 당당하게 죽어갈 수 있는 삶을 살아주는 것이니...

두 손 모아 오늘 밤도 간절히 기도하리라!

사랑한다!나의 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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