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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에 불가했던 나


BY 평범주부 2014-10-01

고작 15만원 들고 시작된 산티아고 순례길,
하루 평균 30킬로를 걸으면서
여행 경비 또한 벌기 위해 거리공연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르고스에 도착하니
성당 앞 광장은 수많은 인파로 바글거리고
거리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곳을 그냥 지나치게 된다면
배가 고플 때 무척 후회할 것이란 생각에
서둘러 분장을 하고 하얀 얼굴의 광대가 되어
한쪽 구석에 자리를 폈다.

사람들은 내가 동양인인 것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카메라 세례와 모자 속에 동전들을 던져 주었다.

광장의 다른 공연자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사각지대에 자리를 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한 거리 공연자 한 명이 보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한 명에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텃새를 부리진 않을까?’
‘내 돈을 전부 훔쳐가진 않을까?’

그런 두려움도 들었지만,
나의 끼니를 위해,
그리고 순례경비 마련을 위해 열심히 공연했다.

1시간 정도가 흘러갔을 무렵,
맞은편에 있던 거리 공연자가 나에게 다가온다.

‘올 것이 왔구나. 제발! 제발!’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걸어오는 그를 힐끔힐끔 응시했다.

내 앞에 걸음을 멈춘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자신이 오늘 번 돈 전부를 내 모자 속에 쏟아 붓고.
나를 살며시 안아주며 말했다.
“Buen Camino!”

머릿속은 '왜?'라는 의문으로 가득찼다.

혹시나 텃새를 부릴까 노심초사했던 내게.
혹시나 돈을 훔쳐가진 않을까 두려워했던 내게.

“당신의 카미노 여행에 행운을 빈다”라 말하며,
거리 공연으로 모은 돈 전부를 내게 주고 간 것이다.

국적도,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나에게
베풀어 준 그의 따뜻한 마음을 다시 생각해 보며,
지금 이 순간도 하루 벌이를 하고 있을 그를 떠올리니
감사함과 부끄러움이 교차한다.

- 글/사진 새벽편지 우근철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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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살아가며 가슴속에 간직할 감동이란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 오늘 당신은 누군가에게 감동이었나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