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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마주하는,어렵디 어려운 일을 즐기자!


BY 미개인 2014-10-09

나에게 가장 쉬운 일은 1만 명의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다.반면 가장 어려운 일은 한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조안 바에즈--

 

조안 바에즈(1941~     ) 미국.가수.인권운동가.반전 평화운동가.

핵무기 제조에 반대하는 물리학자인 부친과 희곡작가인 모친의 세 딸 중 둘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부친의  직장 때문에 캘리포니아의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음악에 심취하였고,졸업무렵엔 자신의 노래를 녹음하여 음반회사에 보내기도 했다.

매사추세츠에서 보스턴 대학을 다니다 음악을 위해 중퇴하고,캠브리지의 포크음악 클럽에서 정식으로 노래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1년 밥 딜런을 뉴욕에서 만나 함께 전국순회공연을 하며 흑인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인종차별 철폐운동에 앞장서고,월남 반전평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직접 반전시위에도 가담했다가 체포를 당하기도 했던 그녀는 반전운동가 데이비드 해리스와 결혼을 하고 반전운동에 더욱 열중하게 된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가면서 그녀의 활동도 변화되어 전통 포크에서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추구하는 등 ,

전문 교육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실력으로 평생 큰 업적을 이뤄 여덟 장의 골드앨범과 한 장의 골드싱글을 기록했다.2007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했고,

인권과 평화운동의 공로로 두 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고,두 개 주로부터 '존 바에즈의 날'을 지정받기도 했다.(위키백과)

 

음유시인이라고나 할까?통기타를 치면서 읊조리듯 'The river in the pines'를 부르는 그녀를 보자마자 매혹돼서 박차고 일어섰다.

근처 레코드 가게를 뒤져서 조안 바에즈의 LP를 사들곤 ,그녀와 사랑에라도 빠진 듯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좁은 자취방으로 돌아와 질리도록 들었었다.

지금은 그녀의 LP가 두 장 밖에 안 남았지만,비가 온다든지,뭔가 울적할 때면 듣곤 하는 그녀가 저런 말을 남겼다니...

또 다른 음유시인 나나 무스꾸리와는 확실히 다른 그 무엇인가가 있어서 어려서부터 두 가수의 노래를 즐겨 들었었다.

민주화의 열풍이 극에 달하던 80년대가 시작하자마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들어 밑바닥 생활을 더듬거리면서 힘들 때 ,

약간 사기꾼 기질과 날라리 기질을 소유한 사회친구들과 뒷골목 음악다방을 찾아서 위로를 받곤 했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서울대에 못 갈 바엔 자수성가를 하겠다며 학력고사만 보고 나서 원서접수도 하지 않고 삼중당 문고판 소설하나 달랑 넣은, 

비다시피한 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 다녔던 문제아였던 나.

어느 누구로부터도 관심을 받지 못했던 ,재능도 근성도 없었고,부모님으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던 나는 맨손으로 무작정 사회에 뛰어들었다.

무능하고 근성도 없는 스스로를 조롱하며 방황을 하기도 했었지만 ,그것 역시 오래 하질 못하고...

정체성의 혼돈이라고나 할까?나는 누구일까?나는 과연 이 세상에 살 가치가 있기는 한 걸까? 식의 고민으로 힘들었을 때,

수원 팔달문 옆의 중앙극장인가의 뒷골목에 있던 음악다방에 쳐박혀 메모지에 신청음악을 써서 부스에 밀어넣고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었고,

그러면서 DJ의 말장난에 낄낄ㅐ며 위안을 찾곤 했었다.

그러던 중  잔잔하게 읊조리듯 통기타 하나 들고 노래하는 시인 조안 바에즈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라니...

 

여러 사람과 어울려 수다를 떨거나 토론을 하는 것은 사실 아주 쉬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을 상대로,그 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을 땐 앞이 깜깜해질 정도로 힘들 수 있다.

아마도 그녀는 그 한 사람을 자기 자신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힘들다고 안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과의 마주섬이 아닐까?

조안 바에즈를 사랑하면서도 단 한 번도 그녀의 인생비망록을 파헤쳐볼 생각을 못한 내가 참 한심하다.

진작 저 말을 들었더라면 ,그래서 한 사람과 마주 서는 훈련을 거듭해왔더라면,

그리고 그 한 사람을 자신으로 설정하고 끝없이 토론을 해왔더라면 ,그래서 그 어렵다는 한 사람과의 마주섬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면 ...

지금보다는 훨씬 가치있는 일을 하며 뿌듯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나 자신과의 마주섬을 꾸준히 연습하고 훈련을 쌓아가리라.

미개인아!넌 지금 잘 살고 있는 거니?넌 과연 잘 살아왔니?네가 지금 이렇게 행복하다며 마냥 게으름을 피울 정도로 한가할 수 있는 거니?

네 주제가 과연 어른인 척 하면서 비판을 일삼고 ,SNS에서 '좋아요'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잘났냐?

너는 과연 네 삶의 주인이며,함 석헌 선생이 주창했다는 자기로부터의 개혁을 완성했느냐?

 

물론 한동안 지금의 따분하기만 한 삶을 버리지 못하겠지만,

텔레비전에서 본 최 재천 교수의 ,통섭(지식통합)의 시대가 왔음을 강조하며 죽는 순간까지 꿈꾸기를 그치지 않는 사람이 되자는 강연에서 봤듯이,

아직 은퇴 이후의 삶이나 준비하며 살기엔 너무 한 것이 없고 ,너무 젊기만 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길을 찾아가리라.

끝없이 묻고 또 물으며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성찰하고 반성하고 ,주도적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책임져 가리라.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해하기 위해서 살아가리라.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나 스스로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 삶을 영위해 가리라!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불경죄로 죽게 된 순간까지도,"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던 것처럼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되리라!

나를 존엄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며 나만의 삶을 살아가리라!

 

낮에 ,친일 매국노 척결이란 내용의 피켓과 현수막을 보고 찾아오셨다는,취미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분이 불쑥 가게 안으로 들어오셨다.

차를 권하고 마주 앉아 한참을 토론하고 격론까지를 펼쳤더랬다.

그동안 사회개혁을 위한 시도가 없지 않았고 뛰어난 인물이 없지 않았지만,여전히 이 모양 이 꼴인데,왜 이런 일을 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져있느냐는 식의 ,

좀 더 순화시키고,타인들과의 보조도 생각하며 구두선에 그치지 말라는 충고도 받았지만,

언성을 높여가며 나의 입장을 강변하고 실천가로서의 미개인이기를 추구하고 있노라며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혼자 하고 있다고...

그리고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명함을 건네고 블로그를 봐달라고 당부를 했다.

마침 걸려온 출장 요구 전화 덕에 끝이 없을 것 같던 도돌이표식 토론은 마무리를 지었지만,

한 편으론 씁쓸하기도 했었고,한 편으론 후련하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더욱 실천을 하는 사람으로 매진해가리라!

본보기를 보여가리라.

당당하게 나서서 주인공임을 천명해도 어느 누구 하나 간섭하거나 제지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 보이리라.

그러니 너도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외쳐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