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의 처음과 끝을 다 보려고 하지 마라.그냥 발을 내딛어라.
--마틴 루터 킹--
마틴 루터 킹(1929~1968) 미국의 목사이자 인권 운동가,흑인 해방 및 권리 신장 운동가.
미국내 흑인 인권 운동을 이끈 개신교 목사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1964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지만 성추문 사건 등에 연루돼 망신을 당하기도 했고,
1968년 4월 테네시 주의 흑인 미화원 파업운동을 지원하러 가다가 멤피스에서 흉탄을 맞고 사망하였다.
성추문 등의 바람직하지 못한 과거가 있어 언급을 망설였지만,내용과 그의 추태가 상관없어 보여 새겨보기로 했다.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지만,그렇다고 불가능하달 만큼 난해하지도 않은,
저절로 이뤄지는 일은 절대 없고 ,얼마간의 의지와 노력이 따라야 하는데,너무 무리하다간 쓰러져 아래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고,
굴러 떨어졌다 하더라도 다시 올라설 수도 있고,다시 올라서기를 포기하고 하염없이 올라갔던 지점을 바라보며 슬퍼만 할 수도 있다.
꾸준히 오르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과일도 따먹고 편안히 풍광을 즐길 수도 있으며,올라온 아래를 굽어볼 수도 있으니...
그러나 거기가 끝이 아님은 조만간에 과일도 다 떨어지고,비바람에 시달려 춥고 배가 고플 수도 있으니 ,
얼마간의 여유를 만끽하곤 또 다시 오르고 올라야 하는데 오르면 오를 수록 이전엔 상상도 못했던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게 되는 그런 계단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그러나 절정이 있기 마련이어서 거기 도달하면 다시 내리막으로 접어들어야 하고,
다시 바닥에 다다라서 또 다른 오름을 할 의지만 있다면 새로운 계단에 도전을 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바로 그런 생각을 하여 저런 멋진 명언을 남겼을 거라고 생각하는데,나로선 또 다른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
인생을 산행이나 마라톤 쯤이라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되새겨보곤 하던 것과 같은 맥락이긴 하겠으나
지금까지는 어딘가 모르게 인생은 일회성임에 주목을 했던 것 같은데,100세 시대가 된 지금에 와선 그것만도 아니란 생각도 하게 된 계단론이다.
사실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멀티 인생을 살고 있기도 하고 ,한 분야에서 성공적인 마무리를 하고 나서도 누리려고만 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며 두 번 세 번의 라이프 사이클을 더 이루면서 젊은 청춘으로 살다가 청춘으로 마무리까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수 년 전 운명을 달리한 최 인호인가 하는 소설가처럼 평생 청춘으로 살다간 좋은 본보기가 되는 사람도 있고,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로 은퇴를 했지만 견습 웨이터를 자청해서 많은 사람들의 모범이 되는 등 신나게 사는 사람처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단,
젊어서보다 더 행복하고 정열적인 노년기의 삶을 향유하는 사람도 있다.
그처럼 한 계단만 열심히 오르다 간 사람도 있고,다양한 계단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계단의 첫머리가 ,그리고 그 끝이 어떨지를 따져보고 간 것이 아니라 하고 싶고 잘 할 것 같은 계단을 선택하면 발을 내디뎠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 나는 초라한 계단의 내리막에 처해있다.
내가 선택한 계단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계산만 앞세우다보니 오르는 데 너무 많은 진을 빼버려서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꿋꿋이 버텨서 굴러떨어지지 않고 내리막에까지 접어들었으니 그런대로 흡족하다.
하지만 곧 닥칠 바닥에 다다르면 나는 또 다시 나의 열정을 바칠만한 계단을 오르고 있을 것이다.
내리막이다보니 조금은 여유를 가질 수가 있어서 미리 저만치에 있는 다른 계단들을 살피며 준비도 하고 있다.
지금의 것이 비록 초라하긴 하나,그리고 앞으로 오르게 될 계단 역시 이보다 더 초라할지는 모르겠으나 새로운 계단은 즐겁게 오르내릴 수 있으려고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피고 또 살피는 신중함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작은 소망이 있다면 죽는 순간까지도 어떤 새로운 계단을 오르던 중 그 계단의 중간 쯤에서 노상객사를 하는 것인데...
그럴 수 있으려면 건강관리는 물론이고 마음의 단련이나 공부도 더욱 열심히 해가야 하리라.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해야 할 것 같아서 ,하고 싶어서 하게 되면 역시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 즐겨내리라.
남들이 다 오르다 굴러 떨어진 길이라고해서 아예 대들지 않거나 중도 포기를 하는 따위의 어리석은 인생 낭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가 원래는 한 언어를 쓰며 살았었지만,오르고 오르다보면 하늘에까지도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며 바벨탑을 쌓는 오만방자를 떨어대다가
천벌을 받게 돼 무리마다 다른 언어를 쓰게 되는 형벌을 받게 되고 그래서 이리 혼란해졌다는 신화가 있다.
그래서 바벨탑이 혼란의 상징이 됐다던가?
그러나 그 신화를 현실로 만들고야 말겠다며 새로운 바벨탑을 쌓고 있는 무리들도 있는 줄 알지만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인지?
어떤 세계 최고령자의 소식을 들으며 큰 딸이 하던 말이 떠오른다.
녀석이 채 열 살도 되기 전의 일이었건만,녀석은 그 소리를 들으며 ,
\"에효~저리 오래 산다는 게 지루하지도 않은가?\" 하는 소감을 말하는 걸 듣곤 박장대소를 했던 기억이 있다.
굵고 짧게,가늘고 길게 등으로 삶의 형태를 운운하는 때가 있기도 했지만,
적당히 굵게,적당히 길게 살다 가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삶은 아닐까?
가끔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가 궁금하기도 해서 철학관이라도 들러 점이라도 볼까 하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결코 그러지 않으리라.
만일 그것이 가능해서 끝을 알고 살아간다면 그 무슨 재미란 말인가?
지금처럼 이렇게 될 줄 알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면 지금처럼 행복할 수가 있었을까?
몰랐기 때문에 쓰러지고 넘어져도 일어났고,달려도 봤으며 ,은인자중도 하면서 나름대로 스릴을 즐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이처럼 초라한 몰골을 하고도 행복해할 수 있는 건 아닐까?
몸이 ,마음이 쉬자고 하면 쉬어줄 것이며,달리자고 하면 숨이 목에 차도록 달려도 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오르기 시작한 계단이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후회없이 오르고 내리면서 나름대로 재미를 찾아가리라.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약을 올려가며 유혹을 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공짜 인생은 반드시 위험과 무미건조함,그리고 따분함을 가져올 확률이 높을테니 부러워도 하지 않고 시샘 따위도 하지 않으며
튼튼한 내 두 다리로 멋지게 살아내 보리라.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도 없이 오르고 내리기를 즐겨왔던 인사가 지금 처한 광경을 보면 한심하기까지 하지 않은가?
이것 재고 저것 재다보면 평생 계단의 한자리도 올라서보지 못하고 말 수도 있으니 ,
그리고 설사 들어섰다해도 이내 후회하고 돌아내려오며 후회를 하게 될테니 일단 눈앞의 계단을 오르고 보자.
오르면서 재미가 없거든 다 오르고 내려가서 다른 계단을 선택할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한 계단만 오르내리다가 말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것이 아닌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