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이 태어나기 전을 생각해 보라.어떠한 모습이었을까?또 이미 죽은 뒤를 생각해 보라.무슨 꼴이 될 것인가?
--홍 자성--
홍 자성(1573~1619) 중국 명나라 문인.
그에 대해 자세히 밝혀진 것이 없고,심산유곡에 파묻혀 나물과 풀뿌리로 연명하며 도인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
'채근담(菜根譚)'의 저자로 유명한 정도이다.
'채근담'은 세상,수양,도,깨달음,자연을 노래한 총 359편의 글로,1년 내내 하루 한 수씩을 읊고 새길 수 있도록 꾸며져있다.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바닥난 국고 등 이미 멸망의 기운이 감돌던 혼란의 시대에서도,참다운 사람의 길을 모색했고,
이 책을 통해 자신이 깨달은 인생의 참된 뜻과 지혜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전편에서는 현실에 살면서도 현실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가짐과 처세,후편에서는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풍류를 주제로 한다.
경구적(警句的)인 단문들이지만 ,결코 지루하거나 딱딱한 책속의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는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지혜를 일깨워주며,속세와 더불어 살되 비루함과 천박함에 떨어지지 않게 도와준다.(위키백과)
흔히들 인생을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기도 하고,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은 건졌으니 수지맞는 장사라고도 한다.
보르헤스라는 철학자는 '삶은 우연이지만,죽음은 필연이다'라기도 했고,나처럼 죽음을 삶의 완성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꽤 많다.
이외에도 삶과 죽음을 정의하고 싶어한 사람들의 고민의 흔적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겠지만,나는 위에 든 네 가지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는 수십억 분의 1의 확를을 용케 차지하고 태어난 기적적인 존재들이다.
벼락 맞을 확률이 180만 분의 1이라는데,우린 그보다 천 배는 더 어려운 확률게임의 승자들인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수십억 마리의 정자들이 하나의 난자를 향해 피튀기게 헤엄쳐간 끝에 성공한 한 마리의 정자에 의해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 것이다.
그런데 그 수정체가 자라서 이리 멋있게 살고 있고,옷도 근사하고, 차도 있고,피곤하면 언제든 누워서 쉴 수 있는 전기장판도 있다.
아직 가져 보지 못한 것이 많고도 많지만,이미 가진 것만도 미처 건사를 하지 못할 정도로 차고 넘친다고 생각하니 욕심도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죽은 걸 보니 잘 해야 명당이란 곳에 파묻혀 자손들 번성을 위한 도구로나 쓰이고,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한 줌 재로 사라지고 만다.
전과 후를 넘겨짚어 보니,초근목피로 연명만 해도 감사하고 감사한 것이니 욕심을 부리지도 말고 불행하다 한탄도 하지 말고 살라는 말일 것이다.
이렇게 간단명료하고 단순명쾌한 행복처방전이 어디 있을 것인가?
주어진 반 컵의 물을 ,겨우 반 밖에 없다며 불만스럽게 받아들일 것인가,반이나 남아있으니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일 것인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마음먹기에 달린 그 선택을 함에 있어 대다수의 사람들은 후자가 맞을 것 같긴 한데 남들이 전자를 택하니 전자를 택하곤 좀처럼 빠져나오질 못 한다.
'사람은 삶이 두려워서 사회를 만들었고,죽음이 두려워서 종교를 만들었다'고 뒤르께임이란 사람이 말을 했다 한다.
인간은 과연 살아도 두렵고,죽어도 두려울 수 밖에 없는 존재에 불과할까?
'채근담'식 사고에만 익숙해진다면 삶도 즐겁고,즉음도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지?
순위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마라톤이라고 생각하고 유랑하듯 신나게 살다가 ,결승점을 통과하듯 즐겁게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동생들과 달동네에서 자취를 했었는데,한 여름에 문을 열어두고 자는 사이 그 어렵다는 벼락을 맞은 적이 있다.
온몸이 타는 듯한 고통에 깨어난 이후,온몸이 뻐근하고 ,무섭기도 해서 한동안 고생했던 적이 있다.
불혹의 나이를 한참 넘기고 나선,나름대로 열심히 사는데도 ,정작 중요한 반려자와의 오해와 알력으로 원만한 가정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다가,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해 봤고,두 번 모두 보란듯이(?) 실패를 하고 말았다.
차를 몰고 큰 다리 밑으로 곤두박질을 쳐봤고,제초제를 다 마시고도 중환자실에서 기저귀 차고 있다가 퇴원했다.
그런데 죽겠다고 뭔가를 하면 마음이 그리 편할 수가 없다.
모든 고통으로부터 드디어 해방되는구나 하는 생각에,전속력으로 달리다가 핸들을 꺾어서 난간을 치고 튀어오르는 순간,아프단 생각이 안 들었다.
제초제를 반 병쯤 마셨을 때 항문으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쏟아져나와 성기주변이 불타는 듯 했지만,고통스럽다기보단 ,
이렇게 고통스러우니 확실히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 번 실패를 하고 주변 사람들을 차마 마주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워 했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 뜨거운 고통이 즐겁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중환자실에서 기저귀를 차고 깨어났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다 끝난 게 아니라니...운명을 원망했고,죽지도 못하는 자신을 원망했더랬다.
그 때 만약 성공적으로 죽었다면 지금쯤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테지만,살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도 하며 살아서 다행이란 생각도 하게 된다.
때가 됐거나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닥쳐 죽어야 한다면 피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이젠 일부러 죽고 싶진 않다.,
죽는 심정으로 살고자 하지도 않았는데,마음을 비우고,주변을 정리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비우고 살고자 했을 뿐인데,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혼자있게 만들어준,그래서 원망했던 전처와 아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다.
그리고 어제 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작은 딸을 만났고,녀석으로부터 쌀쌀맞은 태도를 확인하면서도 전혀 서운하질 않았다.
정말 아무런 연락도 주고 받지 않았는데,많고 많은 삶의 형태를 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런 사회활동을 같이 할 수 있었다는 게 기적인 것만 같아 감사했다.
아직은 어리기만 해서 엄하기만 했던 아비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그리고 영원히 그 오해를 풀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녀석도 옳다고 생각하며 ,불편을 무릅쓰고,추위와 고통을 무릅쓰고 나서서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더군다나 트위터에서 녀석이 아주 희미하게나마 나온 사진도 한 장 챙겼으니,대박이란 생각도 든다.
또 며칠만 있으면 졸업식에 가서 먼발치로나마 볼 수 있고,역시 원하지 않으면 밥도 같이 못 먹고 오겠지만,
녀석이 3년 간 다니던 학교교정을 거닐어 볼 수 있고,큰 놈 처럼 작품이나 게시판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고...^*^
난 어려서부터 괴물소리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무식하고 또라이이면서 당당했고,늘 쪼들리면서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안 하고 살았다.
그러면서 친구들보다 이성을 사귀는 재주도 있었고,고상함과 저질스러움을 수시로 오간다고 해서 괴물 취급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나는 삶도,죽음도 두렵지 않다.고로 혼자서 살아도 별로 불편한 줄 모르고,종교를 가질 필요도 못 느끼고 산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가지지 못한 것에의 미련 등으로 괴로울 필요를 거의 못 느끼고 산다.
그저 가진 것이 과분하고 감사해서 ,기회가 되면 조금씩이라도 나누고 싶어하면서 ,나눌수록 충만해지는 기적까지 누리고 있으니...
지금보다 낫지 못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고,지금보다 조금 나아진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으로 이미 행복하기 위한 모든 것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 '꾸뻬씨의 여행'에서 '행복은 의무다!'라고 말한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