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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BY 미개인 2016-02-12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1775~1817) 영국.소설가.

영국 햄프셔 주 스티븐턴의 교회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섬세한 시선과 재치있는 문체로 18세기 영국 중.상류층 여성들의 삶을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생전에는 그리 유명하지 않았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작품 중 '오만과 편견','이성과 감성' 등은 여러 번 영화화 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영국 소설의 '위대한 전통'을 창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단 여섯 편의 소설로 2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BBC가 '지난 천 년 간 최고의 문학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미국 독립전쟁,프랑스와의 빈번한 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격변기에 ,한적한 시골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연애를 그린 그의 소설은,

역사의식과 사회 인식이 결핍돼 있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그의 소설이 개인들의 일상생활에 한정된 소우주를 그려낸 것은 사실이지만,그는 누구보다도 세밀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으로 

당대의 물질 지향적인 세태상과 허위의식을 풍자하면서 도덕의식을 예리하게 탐구했다.

또한 당대에 유행했던 고딕 소설과 감상 소설,로맨스 등 대중적인 문학 장르의 관례적인 기법들을 다양하게 실험하면서 ,

리얼리즘에 입각하여 정교한 작품 세계를 창조했다고 평가되고 있다.(위키백과)

 

우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얼마간의 오만과 편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처럼 특히 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새로이 배우고 ,익히면서 오만과 편견을 없애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자신의 오만이나 편견을 부정하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오만이나 편견이 뭐에 쓰는 물건인고?난 그저 다수가 하는대로 따라하며 살아지는대로 사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

여튼 다른 경우는 잘 모르겠고,나의 경우는 오만과 편견의 포로가 돼서 한동안 나와 주변을 모두 힘들게 했었다.

사랑하는 건 분명한데,오히려 상대는 나의 사랑을 사랑이라 생각지 않고 힘들어 했으며,그러다 보니 그들에게 나를 사랑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어불성설.

내 식의 사랑을 강요했고,내 몸을 돌보지 않으면서 사랑을 했노라며 오만을 떨어대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여튼 지금은 내 안의 오만, 편견과 싸움을 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참으로 험난한 길이다.^*^

 

지금은 남을 나에 맞추려는 허무한 고생을 사서 하려 하지 않으면서 ,나 스스로 나를 사랑하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 역시 편견을 없애지 않으면 불가능한데...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우리들 자신을 속이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치부가 드러나는 게 두려워서 일기를 안 쓰게 되는지도 모르겠고...

스스로에게 자기합리화를 열심히 시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식겁하는 때가 적잖은 걸 보곤 ,아연실색하게 되는데,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솔직히 대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한 약속을 남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거리낌도 없이 깨버리기 일쑤이진 않은지?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선,이 정도면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며 자신을 속이진 않는지?

자신과의 약속을 파기하고,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자신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자기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남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남들에게 이런 나를 사랑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우린 살아가면서 쉬지 않고 사랑을 갈망하게 된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리비도!'라면서 성적 욕구에 의한 육체적 사랑에 한정하는 게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의 사랑 말이다.

그렇다고 리비도 자체를 등한시 하잔 말은 아니니 오해말길...

나도 한 땐 프로이트의 저 말을 근거로 리비도가 세상의 모든 것이기라도 한 양 나댔던 적이 있었지만,

얼마간 나이가 들고 ,리비도 외의 사랑에 눈을 뜨게 되면서 참사랑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이제 갓 그 출발점을 지난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이미 많은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출발은 늘 자기자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이기적이랄 만치 자중자애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진정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법이란 게 뭐가 있을까?

공짜를 바라지 않고 내가 흘린 땀 만큼의 결과물을 당당하게 누리면서 살고,세상에 얼마간의 기여를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자신에의 최고의 사랑이지 않을까?

구걸과 다름없는 ,남을 속여서 남의 것을 빼앗아 살면서 나를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게으름을 피우다 곤궁해지자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여서 ,남들로 하여금 나를 도와주고 싶게 만들면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분수에 넘치는 삶을 향유하려 빚을 내서 살며 불안한 하루하루를 연명하면서 ,과연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끄러운 비인간적 삶을 영위하면서, 누군가에게 들킬까 숨어다니는 삶을 영위하면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을 불안의 늪으로,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그런 삶은 결코 사랑하는 사람의 행위가 아닐 것이다.

 

그럼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뭘까를 나름대로 고민해 봤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여러 정황을 대입해가며 실험을 해 본 결과,답을 얻었다.물론 나에 한한 것일 수 있지만...

'분수껏 살자!'가 그것이었다.

자신의 주제를 잘 파악해서 주어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되,너무 무리하지도 ,너무 게으르지도 않으면서 살아가고,

결과물에 너무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주어지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자,비로소  '나'가 좋아하기 시작했다.

한 해 두 해 살아가면서 얼마간의 내외부적 패턴을 익혀서 ,벌이가 좀 나을 땐 저축하고,나쁠 땐 조금 덜어서 쓰기도 하면서 ,

거기서 또 조금을 덜어 누군가 힘든 사람들을 위해 나누기 시작했더니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으면서 도리를 다하며 살다 보니 나름대로 떳떳해지기 시작했고,그러면서 불안감이나 두려움도 동시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의 시선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비교나 경쟁 따위도 하지 않게 되면서 항상 찡그리고만 있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매일 얼마간의 운동을 하고 냉수마찰도 하자고 스스로와 한 약속도 거의 지키며 살다 보니 건강해졌고,더불어 기쁨도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되면서 제3자에게 자랑하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가 됐지만,참으련다.^*^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니 ,남들도 사랑스러워보이기 시작했고,그런 나를 남들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봐주기 시작한다.

친구하자고,동지하자고,잘 지내보자고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이 ,굳이 찾지 않아도 다가와 주기 시작한다.

신기하다!

그들의 눈엔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게 보이기라도 하는 걸까?

과거 나를 혹사시켜가면서라도 가족을 사랑하겠다고 발악(?)을 해대던 땐 그들이 오히려 나를 미워했더랬는데...

나 자신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누가 나를 사랑해주길 바란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 아닐까?

그리고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남을 이용한다거나 해코지를 해서 내 배를 불릴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게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다 보니 그런 나를 남들도 사랑하고 싶어지는 걸 게다.

살짝 오만한 듯하면서 겸손할 수만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주변 환경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는 지조쯤과 고집은 편견이라고 치부하지 않아도 좋겠지?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정 사랑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비법이라고 제인 오스틴은 저 말로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