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느끼는 데에는 동심이라든가 무심이라든가 솔직함 같은 것이 필요하다.
--무샤코지 사네아--
동심,무심,솔직함...
우린 이미 행복하기 위한 조건 모두를 갖고 있으며,남은 것은 그 사실을 깨닫고,행복해 하며 ,그것을 가능케 해 준 이들에게 감사를 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꾸뻬씨의 행복여행'이란 책에선 "행복은 의무다!"라고 말한 것이라고 나는 받아들였다.
이미 내 손 안에 있는 파랑새를 알아보지 못하고,파랑새를 찾으러 돌아다니다 문득 자신의 손 안에 있는 파랑새를 찾게 된다는 책과 영화를 봤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류의 이야기들을 해왔고,파랑새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위에 말한 것을 잊어서일 것이다.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잃었고,온갖 욕심으로 판단력을 상실했으며,거짓으로 가득찬 몸과 마음이 눈을 가리고 있어서인 것이다.
그렇다면 동심이란 뭘까?
눈 앞의 사물이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판단하며,앞뒤를 재지 않고 순진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우리들 어른들은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진 않는지?
무슨 꿍꿍이속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사기공화국 답게 사기는 아닐지 의심부터 하고 본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선 그럴 수도 있지만,자기 자신에게도 그러고 있으며,내가 갖고 있는 것도 누군가가 빼앗아갈 수도 있으니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파랑새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이건 누군가가 날 속이려고 색깔을 칠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지만 동심을 갖게 되면 있는 그대로 파랑새를 들여다보며 예쁘다고 말할 수 있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목청껏 소리쳐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심...
특히 우리들의 머리 속엔 욕심이 그득해서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어진다.
욕심이란 채우면 채울수록 덩치가 커지는 속성을 갖고 있는지라,어지간해선 만족을 할 수가 없게 만든다.
심지어는 인문학 강연 등에서 ,만족은 게으르기 위한 방편이라고까지 말하며 끝없이 욕심을 부리라고 근사하게 포장해서 가슴깊이 파고들려 한다.
하지만 만족을 한다고 해서 더 이상 노력하고 싶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
한 가지에 만족하면 보다 큰 만족을 추구하게 되고,그렇게 더 큰 만족을 추구하는 행위는 보다 큰 욕심을 추구하는 것과는 달리 내면을 충만시킨다.
가령 돈 백만 원을 갖게 됐고,이것이면 사는 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 소중한 백만 원으로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보냐며 누군가 나눌 사람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일단 나눠보니 나 혼자 누릴 때보다 훨씬 큰 기쁨이 생기는 걸 깨닫게 되고,200만 원을 가지고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식이다.
그러기 위해서 수양을 하고 ,자기계발을 하며,함께할 사람들을 또 찾게 되는 식이니...
세상이 훨씬 풍요로워지고 따스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 아닌가?
내가 그 상황에 작으나마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행복해질까?
솔직함...
우린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솔직한가?
자기 자신에게조차 늘 거짓말을 하고 살며,그런 스스로가 부끄러워 온갖 핑계를 대면서 자기합리화를 사켜가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삶은 늘 불안하기 마련이고,언젠간 회복불능의 비인간적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란 걸 깨닫게 되면서 두려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과 틈틈이 대화를 하면서 ,내가 과연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 충실했는지를 돌아보고 ,반성하고,더욱 노력을 함으로써,
스스로와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그런 사람은 빛나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솔직하게 대할 수 있게 되고,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며,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남들로부터도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니,이 또한 행복하지 않은가?
나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
자신을 과장하거나 ,지나치게 겸손해 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욕심이 지나치게 많고,계산적인 사람도 아주 싫어한다.
그리고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 애쓰며 살고 있다.
함부로 약속을 하지 않지만,일단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 애쓰고 있다.
손익을 따지며 사람을 만나지 않고 있고,가끔 웃기 위해 장난을 치는 경우를 제외하곤 잔머리를 굴리지도 않는다.
내가 가진 아주 작고,적은 것으로도 만족하고 있고,넘친다고 생각해서,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나누고 싶어한다.
더군다나 내 주제를 수시로 파악해가며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또한 잘못은 잘못대로,잘한 건 잘한대로 솔직히 드러내 말하고 ,지나친 평가를 거부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정말로 행복하기 시작했고,앞으로도 행복하게 살다가 갈 자신도 있다.
오늘도 백 남기 대책위 도보행진단이 내 가게 앞을 지나칠 때 ,얼마간 힘이 돼주길 바라면서 피켓을 만들어 잘 보이게 설치했고,
태극기도 게양해서 그들의 행위에 대한 경외심을 표하고 싶어 했으며,직접 나서서 손을 흔들어주며 응원도 해줬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서 지역 경찰서의 정보과 정보관이라는,잘 생긴 친구가 불쑥 들어와선 ,아까 우연히 보게 됐노라며,
위 행사에 대한 나의 느낌을 얘기해달라고 한다.
처음엔 불쑥 불쾌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고 ,마침 하고 있던 식사도 잠시 미뤄둔 채 마주 앉아서 대화를 했다.
감시가 아니라 사적으로 궁금해서라고 한 그의 말을 반복하며 ,사적으로 왔다 하니 솔직하게 이야기하마고 나의 느낌을 말하면서 ,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경찰의 처신에 대해 비판을 하고,그런 경찰의, 민중들과의 틈 메우기에 나서달라고 당부까지 했다.
그렇게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나니 그도 밝게 웃고 떠날 수 있었고,나는 나대로 뿌듯한 가슴을 안고 다 식어버린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게 행복 아닐까?
실제론 눈엣 가시인 듯한 단체의 행동에, 드러내고 공감을 표시하는 나를 감시하러 왔을지라도 난 그런 그의 배후를 캐지 않고 ,
그의 말을 믿고 ,내 진솔한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인간적인 대화까지를 했다고 생각하니 ,
아주 젊고 근사한 좋은 친구를 하나 얻은 듯한 뿌듯함이 생긴 것이다.
생긴대로 멋진 경찰관이 돼 달라고 당부를 하고 ,나의 시위내용까지 또 한 사람에게 알릴 수 있었으니 ,나이든 사람으로서도 할 일을 한 셈이다.
밖으로 나서서 아무나 잡고 그럴 수도 없는데,직접 찾아와 준 그가 고맙기까지 했다.
이처럼 적을 적대시하지 않음으로써 동지로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최대화시켜가는 노력이 우리에겐 필요할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도 저까짓 시골 장사꾼이 ,그 단체를 보호하려 나온 많은 경찰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드러내고 지지를 보내는 괘씸한(?) 나로 보였겠지만,
막상 만나 보니 동네 형님 같은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고,직업상 폐쇄적인 사고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데서 얼마간 벗어날 수 있어서 좋진 않았을까?
그리고 더욱 좋은 경찰이 돼야겠다는 다짐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본분을 다시 한 번 자각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테니 ,장기적으론 그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행복해 해도 되겠지?
나도 좋고 남도 좋게 만들었으며,나의 투쟁의지도 다지는 계기가 됐고,그에게도 사람의 도리를 알릴 수 있었으니 만족해도 되잖을까?
이처럼 어떤 일을 당해서도 위의 세 가지만 갖추고 살아간다면 다 행복할 이유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행복해지기 참 쉽죠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