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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지 마라!


BY 미개인 2016-02-29

고개 숙이지 마라.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라.

          --헬렌 켈러--

 

헬렌 애덤스 켈러(1880~1968) 미국.작가.교육자.사회주의 운동가.

인문계 학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시각,청각 중복 장애인이다.

그녀의 장애로 인해 가지고 있던 언어적 문제를 가정교사 앤 설리번과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한 유년시절을 다룬 영화 '미라클 워커'로 유명해졌다.

생후 19개월에 의사로부터 성홍열과 뇌막염에 걸려 위와 뇌에서의 급성 출혈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

바로 치료를 받았지만,이로 인해 평생 시각과 청각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로부터 알게 된 '펄킨스 시각 장애 학교'를 통해 앤 설리번과의 49년 인연이 시작되고,나중엔 동반자가 되게까지 됐다.

1904년 레드클리프 대학을 졸업하면서 최초로 학사 학위를 받은 시청각 장애인이 되는데,그녀는 독일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그녀를 장애 극복 장애인 여성으로 생각하지만 역사 속의 헬렌은 사회운동을 실천한 사회주의 지식인이다.

1909년 미국 사회당에 입당했으며,공개 서한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됐나'발표와 방송 출연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자 연설가로 유명해졌고,불리한 신체조건 등 많은 장애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지지 및 옹호로 많이 기억된다.

여성 참정권론자이고 평화주의자,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반대자였으며,또한 급진적인 사회주의자에 여성 피임 지원자였다.

1915년 그녀와 조지 케슬러는 '헬렌 켈러 인터내셔널'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는데,이 단체는 비전과 건강,영양 연구에 열심이었다.

1920년에는 미국 자유 인권 협회(ACLU)의 설립을 도왔고,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직설적으로 고발했으며,여성 참정권,사형 폐지운동을 벌였으며,

아동 노동과 인종 차별 반대운동을 펼치면서 보수층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1961년 지속적인 뇌졸중에 시달렸고,말년을 그녀의 집에서만 보냈다. 

1964년 미국 '대통령 훈장'을 받았고,1965년 '뉴욕 세계 박람회'에서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위키백과)

 

평생을 시각.청각 중복 장애인으로 살았으면서도,그런 신체적 한계를 무릅쓰고,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현시키려 애쓴 그녀는 인간승리의 표본이랄 수 있다.

그런데 현대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 한국인들은 어떤지?

나 하나 먹고 살기에만 급급하면 됐지,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무슨 상관이냐며 ,오히려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며 눈보라를 헤치고 길로 나서는 이들을 비난한다.

정면으로 바라봐주기만 해도 한층 힘이 날 것 같은데,흘끔흘끔 곁눈질만 하거나 ,아예 외면을 해버린다.

심지어는 행렬을 향해 돌진해선 종북은,빨갱이는 꺼지라고 외쳐댄다.

우리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려고 확성기를 들고 곁에서 꽥꽥거려댄다.

 

눈치만 살피거나,외면하거나 ,적극적으로 딴죽을 걸어대는 그들은 ,

이런 모든 훼방과 불의 세력들의 탄압을 극복하고 싸워온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정의로워지면 어찌 살까?

한동안 찌그러져 있으면서 세상이 다시 망가지길 바라면서 미친 듯 날뛸 준비를 하고 있게 될까?

사실 과거 정치깡패들로 명성(?)을 휘날리던 서북청 같은 단체들이 세상이 혼잡의 극치를 달리자 기다렸다는 듯 부활을 꿈꾸며 날뛰고 있는 것이 그들의 지향점일까?

공공연하게 서북청을 자임하며 날뛰고 있는 무리들이 있고,꼴에 정치권까지 넘보고 있으니...

나라 꼬라지가 참 망신스럽고 부끄럽기가 한이 없잖은가?

 

정의추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것이나,저런 쓰레기들의 발광을 수수방관하는 것은,불의세력들의 준동을 수수방관하는 것은 일종의 공범이다.

그리고 방안에 들앉아서 말로만 떠드는 것도 대단한 역할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나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지만,

막상 바깥으로 나와 그들과 함께해 보면 지금까지의 비겁한 행태가 새삼 부끄러워질지도 모른다.

참으로 좋고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더욱 불의와의 투쟁의지가 불타오르게 된다.

그동안 아둥바둥대며 살아온 삶에의 반성도 되고,그동안 겁내오던 상황들과 직접 맞부딪히면서 용기백배하게도 된다.

더욱 큰 의욕도 생기고,그동안 내가 편안히 살아온 것이 미안해지면서 ,나도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야겠단 생각도 들게 된다.

그리고 그럴수록 나의 삶의 질은 더욱 향상되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한땐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치적 야욕을 가진 자들이라고 생각했고,

또 정치권에 진출한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경력팔이를 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는 모습을 보며 최근까지도 혐오했었다.

그러나 아주 일부의 경거망동에 불과하고,훨씬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일념으로 즐겨 투쟁하고 있음을 알게 되며 더욱 감사하게 됐다.

지금도 내가 현수막을 걸고 피켓을 내세우며 한 사람에게라도 진실을 더 알리려 애쓰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고 칭찬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 역시도 조만간에 나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서 함께 나가자고 해주리라 믿고 있고,

그들도 밖으로 나와 보면 그게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그동안 겁을 내고 망설여만 온 자신을 부끄러워하리라.

일단 나서 보시라,그동안 막연하게나마 불안하고 두려웠던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절망적으로만 보이던 세상도 아주 희망적으로 바뀌고 ,동지들로부터 따스한 체온도 나눠가지게 되면서 행복해질 것이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은 아마 그래서 있는 말일지도...

 

나는 대단하지도 않고,바라는 것도 없다.

그저 나같은 초라한 사람도 하는데,왜 당신은 그리 겁만 내고 있으며,우물쭈물하고만 있느냐고 말하고 싶은 것 뿐이다.

마침 나의 가게가 큰 길 옆에 있어서 주어진 여건을 십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동지들에게 힘이 될 수 있으며,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시 외침을 전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또한 친일매국노 후손들의 가렴주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인접해있어서 그것들을 자극하는 데도 최적인지라 ,

하늘이 나더러 열심히 투쟁하라고 이 자리를 허락해준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한 세기는 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반 생을 허황되게 살았으니 남은 반 생을 알차게 살아내리라 다짐도 해 본다.

 

지난 주, 백 남기 대책위원회의 도보 순례에 여든한 살의 노인분이 동참하셔서 젊은이들의 귀감이 되는 걸 봤는데,

나는 그 분을 보면서 그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면서 꿋꿋이 투쟁해가리라 속으로 다짐도 했더랬다.

아직 열정 하나로 따지자면 30대 못지 않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죽는 그 순간까지 유지하며 젊은이로 살다가 급사하고 싶다.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 집시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며 독립의지를 펼치다가 노상객사를 하는 것이 진짜 꿈이다.

나의 두 딸들에겐 물론이고 후손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조상으로 남기 위해 ,더는 눈치만 보거나 우물쭈물대지 않을 것이다.

과감히 불의에 항거하고 ,정의를 부르짖으며 살다가 죽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동참이 있길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