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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은...


BY 미개인 2016-03-03

환경은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내가 또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혜민--

 

혜민:대한불교 조계종 승려.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 종교학 학사,하버드 대학 종교학 석사,프린스턴 대학교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대학에서 7년 간 종교학 교수로 재직했으며,현재 뉴욕 불광선원 부주지와 서울 인사동의 마음치유 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젊은 날의 깨달음'이란 책을 쓴 인기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트위터리안이다.(위키백과)

 

태어나면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환경은 운명이나 숙명이란 말로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의미로 통하고 있지만,어감상 분류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

운명은 얼마간 능동적으로 개척해갈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숙명은 어쩔 수 없는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환경이란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나는 그리 분류를 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위의 말도 그런 맥락에서 한 말일 것으로 사료된다.

 

숙명이란,생로병사와도 같은,우리의 힘으론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환경을 이름일텐데...

그것은 바꿀 수도 없지만,만약 바꾸려고 하면 반드시 화가 따르기도 하는 성질을 띠고 있는 환경을 이를 것이다.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란 말도 숙명이라 할 수 있을텐데,이를 거부하려는 사람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 최고의 갑부란 인간이 그렇고,최근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데이트 폭력이 그렇다고 할 수 있겠는데,스스로도 고통스럽겠지만,보는 사람들의 기분도 울적해진다.

청와대의 한 할멈도 열심히 보톡스를 맞아대는지 점점 흉물스러워지고 있다.

아름다움을 중요시 하는 여자들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결국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순리를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임은 ,

뛰어난 사진작가의 작품 속에서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워낙 귀해져서 자주 볼 수는 없지만, 운이 좋으면 ,화장 등으로 꾸미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나이가 든 모습을 보고 설레기도 한다.

최근 자연치유법과 관련된 책을 내서 화제가 되고 있는 문 숙이란 전 배우가 대표적이랄 수 있는데,

아마 그녀가 나이듦을 거부하려 성형수술이나 보톡스 등의 도움을 받았다면 지금쯤 추해져있을지도 모른다.

 

운명이란 우리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바꿀 수도 있고,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낼 수도 있는 환경으로 얼마간의 의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203호나 204호나...'란 말이 의미하듯,우린 저마다 얼마간의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시련이나 고통을 대하는 마음은 천차만별일 수 있고,그에 따라 그들의 삶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을 우린 많이 보고 있다.

똑같은 반 컵의 물을 놓고도 '겨우~'라며 좌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 컵 씩이나~'라고 생각하며 희망을 갖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

부족할 것이라곤 없어 보이는 육체와 조건을 갖고도 늘 불행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마간의 장애를 갖고,역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꿋꿋이 극복해내서 성공 스토리를 연출해내는 사람이 있는데,

이처럼 본인의 의지에 따라 성공적으로 ,또는 절망적으로 인생을 만드는 경우를 운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는데,이 또한 운명을 개척하는 한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숙명을 전제로 하면서 운명을 개척해가는 삶을 살아간다면 ,죽는 그 순간까지 열정을 간직한 채 신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죽을 수 밖에 없는 숙명을 무시하고 운명만 열심히 개척해대다가 채 누려 보지도 못하고 죽는다면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그래서 틈틈이 삶의 큰 그림을 그려두고 ,그 안의 작은 그림들을 완성해가며 보람을 그때그때 찾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의의 죽음을 당한다 해도 전혀 억울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며,순간순간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불가의 지혜는 불교인들만의 것일까?

인생은 고난의 바다란 뜻의 '사바'라고 불가에선 말하고 있다.

삶 자체가 시련의 연속이고 ,고통의 연속이며,역경의 연속이란 말이다.

거기서 힘들다고 좌절하고 멈추면 가라앉아 죽게 되거나 파도에 밀려 의도하지 않은 섬에 밀려갈 것이다.

그러나 그 섬은 바다보다 못한 무인도요 ,목숨을 위협하는 괴물들이 득시글대서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것보다 괴로운 곳일 것이다.

다시 바다에 뛰어들어 밀려온 만큼 더 나아가야 할 것이니 더욱 힘들고 비참해질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열심히 파도를 이겨내고 방향을 잘 설정해서 끝없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더욱 성장할 것이며 강해져서 고난 자체를 즐기는 경지에 다다를 것이다.

불가에선 그 경지를 해탈이라 하고 성불이라 하는 것 아닐까?

 

불가에선 허공을 떠도는 티끌에도 불성이 깃들어 있다고 가르치는 줄 안다.

그러니 모든 중생들은 자신 안의 불성을 일깨워 성불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겐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

나 역시 종교 자체를 경멸하는 사람이지만,불가의 가르침을 철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입장에서 해탈이나 성불을 상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왔다.

가끔 신기루처럼 보일듯 말듯 하는 환영일지도 모르지만,나는 가끔 그 기미를 느끼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음 하나 고쳐먹는 것으로,누구나 다달을 수 있는 경지라 확신하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나만 겪고 있는 고통이라 생각하곤 억울해 하지도 말고,분해서 화를 내지도 말자.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양상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거의가 비슷한 정도의 고난을 겪고 살게 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훌륭한 현인들께서 신은 공평하다고 말해온 것일 것이다.

조성된 환경에 던져진 삶을 살지 말고 스스로 조성한 환경을 누리며 살아가는 주인공적인 삶을 살자.

우리 나라에 엄청난 시련이 닥쳤지만,이 고난을 잘 극복해내면 찬란한 평원이 펼쳐져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