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46

희망은...


BY 미개인 2016-04-02

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만져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불가능한 것을 이룬다.

                      --헬렌 켈러--

 

헬렌 애덤스 켈러(1880~1968) 미국.작가.교육자.사회주의 운동가.

인문계 학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시각,청각 중복 장애인이다.

그녀의 장애로 인해 가지고 있던 언어적 문제를 가정교사 앤 설리번과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한 유년시절을 다룬 영화 '미라클 워커'로 유명해졌다.

생후 19개월에 의사로부터 성홍열과 뇌막염에 걸려 위와 뇌에서의 급성 출혈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

바로 치료를 받았지만,이로 인해 평생 시각과 청각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로부터 알게 된 '펄킨스 시각 장애 학교'를 통해 앤 설리번과의 49년 인연이 시작되고,나중엔 동반자가 되게까지 됐다.

1904년 레드클리프 대학을 졸업하면서 최초로 학사 학위를 받은 시청각 장애인이 되는데,그녀는 독일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그녀를 장애 극복 장애인 여성으로 생각하지만 역사 속의 헬렌은 사회운동을 실천한 사회주의 지식인이다.

1909년 미국 사회당에 입당했으며,공개 서한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됐나'발표와 방송 출연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자 연설가로 유명해졌고,불리한 신체조건 등 많은 장애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지지 및 옹호로 많이 기억된다.

여성 참정권론자이고 평화주의자,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반대자였으며,또한 급진적인 사회주의자에 여성 피임 지원자였다.

1915년 그녀와 조지 케슬러는 '헬렌 켈러 인터내셔널'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는데,이 단체는 비전과 건강,영양 연구에 열심이었다.

1920년에는 미국 자유 인권 협회(ACLU)의 설립을 도왔고,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직설적으로 고발했으며,여성 참정권,사형 폐지운동을 벌였으며,

아동 노동과 인종 차별 반대운동을 펼치면서 보수층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1961년 지속적인 뇌졸중에 시달렸고,말년을 그녀의 집에서만 보냈다. 

1964년 미국 '대통령 훈장'을 받았고,1965년 '뉴욕 세계 박람회'에서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위키백과)

 

나는 아직 볼 수 없는 것을 보거나 ,만져지지 않는 것을 느껴 보진 못했기에 따로 말 할 건덕지가 없지만,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면서 정상인도 하지 못할 큰 업적을 이뤘기에 그런 경지도 겪어 봤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나마 끝 구절인,희망은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는 말은 심증적으로나마 느끼고 있기에...

주변의 현상과 나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며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며 살았다.

틈만 나면 도박을 하시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로 인해 늘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마조마한 집안 분위기에서 ,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싸움을 하시는 부모님들 밑에서 조바심을 치며 살아야 했던 암울한 어린 시절.

결국은 이혼을 하시고 ,시골의 할아버지 댁 골방으로 내몰려 ,집안 일을 해주던 아이에게서까지 무시를 당하고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할아버지 댁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눈치를 봐야 했고,결국 1년 여 만에 쫓겨났다.

반지하 단칸 사글세 방에서 막노동을 하시는 홀아비 아버지와 살아야 했던 청소년 시기...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사회에 뛰어들어 희망이라곤 없는 하루하루를 살았다.

공돌이 노릇을 하면서 유일한 희망으로 간직하던 적금통장마저 아버지에게 털리기 일쑤였고...

암울하기만 하던 내가 희망을 갖게 된 건 서른 살 무렵이 돼서 결혼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였는데...

 

우연히 나의 암울한 상황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게 되면서부터 희망을 키워가게 됐다.

꿈만 같았던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목표를 향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살던 중 ,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는 내가 싫다며 ,나의 과거를 알고 이해를 해주는 줄 알았던 아내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가 그마저도 실패를 하곤 운명을 저주하게 됐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하루하루를 1년 가까이 보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희망의 싹을 발견하곤 주변을 정리하다가,

20년 가까이 그리고 그리던 ,처음 개업을 한 가게를 손에 넣게 되고,다시 두 번째로 세들었던 가게까지 손에 넣게 되자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 생전 내 이름으로 부동산 등기를 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자그마한 꿈 하나를 이루고 보니 죽는 것 조차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운명을 저주하던 것에서 ,감사를 하는 쪽으로 바뀌게 됐다.

덤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게 됐고,그런 만치 나도 뭔가 세상에 기여를 하면서 살아야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주제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마침 친일파 재산 환수법을 만장일치로 부결시킨 새누리당의 소식을 듣게 됐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마침 친일척족이 대대로 서민들을 상대로 가렴주구를 하는 곳이란 데 착안해서 친일 매국노 척결 운동을 하기로 했다.

바로 현수막을 맞추고 ,직접 1번 국도의 큰 사거리 구석마다 현수막을 설치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예상했던대로 경찰과 관공서 공무원들,그리고 지역의 친일매국노들의 주구들로부터 훼방과 공격이 이어졌지만 꿋꿋이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었는데,가족들로부터도 '왜 하필 네가...'하는 반대와 염려가 이어졌지만,

그들과 싸우고 설득을 시켜가면서까지 버텨온 끝에 4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앞으로 여생을 친일매국노들과의 투쟁을 하며 보내기로 결심하게까지 됐으니 ...

이 또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희망의 덕이 아닐까?

 

이 운동을 하면서 마음으로만 생각을 하고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줄 수 있었고,

같은 일을 하던 단체나 개인들과도 많은 스킨십을 하게 되면서 더욱 용기를 북돋우게 됐다.

우리가 해방을 한 독립국가라 표방을 하지만,실제론 아직 일제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중국 등의 강대국에게 사대를 하는 부끄러운 나라라는 생각도 하게 됐고,

우린 반드시 그들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뤄야 하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예전엔 비웃기만 했던 시위군중들의 틈에 끼게 됐고,정의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단체 등에 후원도 하게 됐다.

예전엔 독재에 항거하는 동생을 나무랐고,최루탄의 고통을 안기는 걸 시위군중의 탓이라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일취월장하게 된 것이고 이 모두는 희망에 눈을 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일제 36년이란 암울한 상황을 지내오면서,우리말도 하지 못하고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며 거의 일본화가 된 상태에서 ,

지하에서 외국에서 희망을 잃지 않은 애국지사들에 의해 불가능할 줄만 알았던 해방을 맞았다.

그리곤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것들이 얼토당토 않은 희망 덕에 목숨을 건졌을 뿐 아니라 

남한 단독으로 이룬 정부의 요직 등을 섭렵하면서 불가능할 줄만 알았던 애국자들과 독립투사들을 핍박할 수 있게 됐다.

해방  71년째를 맞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요직 등은 여전히 그 일본의 앞잡이들의 차지가 돼 있고,

5천만 명의 한국인들은 이 친일매국노들의 세상을 극복하고 ,순수한 한국인들의 세상을 이루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의로운 세상에의 희망까지를 가차없이 버리곤 ,아이들로 하여금 공무원이나 건물주가 되는 꿈을 꾸게 만들고 있다.

우리의 희망을 키워야 하고,친일매국노들의 희망의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총선을 열흘 남짓 앞두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며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의 선택에 목을 걸고들 있지만,

우린 정의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고 최선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심부름꾼일 뿐인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에게 굽실거리며 사는 우를 더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소속 선거혁명이 필요하고,당장은 불가능해 뵈지만,우리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고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니...

정의에의 희망을 버리지 말고 열심히 이루기 위해 애를 써가야 할 것이다.

우린 위대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건국 정신을 내걸어 온 반만 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힘을 내고 희망을 잃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