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크리스천 버나드--
크리스천 네이틀링 버나드(1922~2001) 남아프리카 공화국.흉부외과 의사.
케이프타운 의과대학에 들어갔으며,그루트 슈어 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하였다.
1953년 케이프타운 대학교에서 결핵성 수막염 치료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67년 12월3일 세계 최초로 인간의 심장 이식 수술을 무려 30명의 의료진이 참가한 가운데 9시간에 걸쳐 성공리에 마쳤다.(위키백과)
불에 달궈지고 망치로 두들겨 맞은 쇠가 단단해지듯,사람 역시 고생을 하고 고난을 겪은 사람들이 강하고,또한 인간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경에 처해서 좌절하고 재기하지 않는 사람은 나약한 것은 물론이고 비뚫어진 성격의 소유자인 경우가 많다.
시지프스의 신화가 말해주듯 어쩌면 우린 실패와 좌절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가에서 인생을 고난의 바다라는 뜻의 '사바'라 칭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일 것으로 사료된다.
성공으로만 일관된 삶도 없고,실패로만 이뤄진 삶 또한 없다는 걸 우린 보고 있잖은가?
농구 천재 마이클 조던이 말했듯이 실패하고 또 실패하면서도 도전하길 멈추지 않는다면 그는 어쩌면 그 자체로 성공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나는 성공했다는 느낌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근성이 부족하고 촐싹대는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심지어는 어려서부터 꿈 꿔오던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소박한 꿈의 추구에서도 실패를 하고 나선 성공이란 말을 떠올리지도 않는다.
나의 아버지께서도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일고여덟 차례 성공의 문턱에서 번번이 실패를 하셨으면서 ,매번 재기를 하셨고,
또 다시 성공의 문턱에서 도박으로 무너지시길 반복하셨는데,지금도 성공과는 담을 쌓은 삶을 살고 계신다.
하지만 우리 부잔 이런 공통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현재 행복하다고 여기며,초라하나마 여유롭게 살고 있다는 공통점 또한 갖고 있다.
아버지와 나와의 연령 차가 이십 몇 년이니까,차이라면 아버지께선 좀 늦게,난 아버지보단 좀 일찍 철이 든 정도라고나 할까?
즉,반드시 성공을 해야만 행복한 것도 아니며,행복하기 위해 성공을 하는 것도 아니니,
성공지상주의나 물질만능주의 정도의 사회적 풍조에 경도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어쩌면 우린 그런 풍조 때문에 불행해하면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인데,
성패나 물질의 과다로 행복을 판가름하려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비교와 경쟁을 하면서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성패나 과다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우린 당장 성공인이 될 수도 있고,부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인데...
어떤 조사에서 말하길 우리 나라 평균재산이 2억 8천만 원인가 한다고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의식구조가 어떤가를 보면 ,그 재산의 90퍼센트 이상이 부동산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보는데,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린 집을, 사는 곳이 아닌,투자하고 투기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
일단 빚을 내서라도 사기만 하면 무조건 오를 거란,20~30년 전의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러니 집에 사는 게 아니라 집을 모시고 사는 것이라 말을 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 많지 않을 걸?!
평생을 아둥바둥 해서 겨우 집 하나 장만한 게 고작이고,그 집이 담보대출을 하는 정도로만 씌여질 뿐,돈 먹는 하마에 불과하다면 ?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게 한국인들의 삶이 아닌가 말이다.
이런 잘못된 의식으로 우리 사회 전체적인 구조적 혼란이 닥친 데 대해 고찰을 해 보자면,
집을 사기 전엔 집이 비싸다면서 집을 싸게 공급해달라고 난리를 치던 사람들이 ,정작 집을 구하고 나면 집 값이 안 오른다고 난리를 친다.
이런 구조적 혼란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결국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한국인들은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미개한 민족이란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에까지 다다라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할대로 팽배한,극복 불가능한 시대를 우린 살고 있는 것인지도...
결국 박근헤를 비롯한 전 한국인이 다 남 탓만 하면서 스스로는 절대 변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으니 ...
우리 역사상 물질적으로 이리 발전된 적이 없지만,유사 이래 가장 행복지수가 낮게 내려와 있다.
201호나 304호나...란 말이 는데,인생,다 거기서 거기란 말이다.
경쟁을 한다면 그럼 누가 승리자일까?
내 생각엔 인생을 조금이라도 즐기며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올라가 봐야 다시 굴러떨어질 게 분명한 무거운 바위를 끌고 산을 올라야 하는데,고난이 넘실대는 바다를 헤엄쳐야 하는데...
그래서 약아빠진 현대인들은 아예 정해진 인생을 살지 않고 ,대신 사기를 치고 .남을 짓밟아서라도 고지에 올라서 뻐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적 삶을 살지 않음으로써 오는 허탈감은 가히 공포 수준이어서,사람들은 음주가무 등의 환락을 추구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내가 지나치다가 우연히 한 인문학 밴드를 알게 되어 ,한동안 소홀했던 관심을 불러일으키려 하고 있는데,
우리네 인간은 원래 이 잘난 몸뚱아리를 초월한 신적인 존재였다고 한다.
그러다 어떤 계기가 있어 육체를 갖게 돼서,끝없는 생리적 욕구에 의해 스스로를 괴롭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인간성 고찰에 관한 글이었는데....
본시 우린 신적인 존재라는 말이니,인간이란 핑계를 대고 게으르고자 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치는 게 아닐까?
사실 우린 우리 안의 천사와 사탄의 싸움에서 늘 사탄의 손을 들어주는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지금 우린 더 가혹한 벌을 받아 수단일 뿐인 물질의 종이 되어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무신론자이고,신앙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지만,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이상할 순 있지만,
내가 믿는 신은 하느님도 아니고 부처님도 아닌,절대적인 순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하는 말인 것이다.
과연 우리가 신적인 존재라는 게 신화적인 이야기이기만 할까?
이런 절대적인 질서를 어지럽히는 불의의 세력과 끝없는 투쟁을 해야 하는 건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싶어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틈나는대로 남들이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를 얹어놓는 꼴이라 할지라도 열심히 참가하는 나.
불의를 보고 침묵하는 것은 금이 아니라 사실 죄가 아닐까?
우리가 이처럼 행복하지도 못하고,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를 단련하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
결코 좌절하지 말고 쓰러져도 ,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근성을 발휘하잔 소리가 하고 싶었다.
나에게...또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