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나가면 일찍 들어와. 네 아빠 난리치는 통에 그저 내가 죽겠으니까. 아니 그것 보
다 요즘 세상이 오죽이나 무섭니? 시간 계산 잘 해서 10시30분까지, 아니 늦어도 11시까지는 들어와야 한다.“
“네.”
“대답만 하지 말고. 약속 꼭 지켜야 해. 알았지?”
“아유, 그만 좀 해. 알았으니까.”
“그리고 틈틈이 문자 보내고.......”
집을 나서는 아이에게 나는 몇 번이나 당부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창 친구를 좋아하는 나이인지라 한 번 나가면 거의 12시나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곤 하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시계를 보며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급기야는 자식 교욱이 어떠니. 개념이 없다느니, 부모를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등....... 그러다보니 곱지 않은 시선은 물론 되지도 않는 소리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이가 집에 들어올 때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아니, 그런 것쯤은 감당할 수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 혹시나 나쁜 일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아이의 동선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에 괜찮았는데 이제는 한 번 나가면 집에 돌아올 때까지 전혀 알 수 없어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면 학교에 다닐 때는 휴대폰이 공부에 방해되는 애물단지였는데 지금은 외출할 때 꼭 필요한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중간중간 서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아이의 동선을 어느 정도는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시에 나갔는데 아직도 안 들어왔어? 그렇게 말해도 안 듣는 건 무슨 심보야? 실망이
다. 이럴러면 아예 지 마음대로 하라고 해. 그냥 집에만 들어오라고 해. 나도 전혀 신경쓰
지 않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시계가 10시를 좀 넘자 기다렸다는 듯 남편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늘상 듣는 잔소리이지만 들을 때마다 속에서 무엇인가 치고 올라오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참느라 좌불안석에 눈길조차 어디에 둘지 몰라 황망해 하고, 그것 때문에 또 잔소리를 듣고.......
어떻게라도 나는 그 순간을 좀 모면해 보려고 아이에게 다른 때보다 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도대체 어디냐? 어쩜 너는 그렇게 멋대로이냐? 아빠 오셔서 한창이시다.......’
‘누구세요?’
나는 한바탕 답답함을 풀어놓았는데 모르는 척 답장을 보낸 아이의 느물맞음에 어이없었다.
‘누구긴, 네 에미다.’
‘저, 제어머니가 아니신 것 같은데요.’
아뿔싸! 답장 온 문자의 전화번호를 확인해 보니 아이의 전화번호와 끝자리가 다른 게 아닌가!
‘딩동’
때맞추어 들어오는 아이를 보자 나는 어디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릴 걸, 아이를 믿었어야 하는데.......’
“엄마, 오늘 문자 메시지 보내지 않은 건 제가 시간 맞추어 돌아온다고 믿으신거죠? 고마
워요.“
“응? 으응.......”
아이가 방으로 들어간 후, 나는 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미안합니다. 잘 못 보냈군요.’
문자 메시지가 전송되는 것을 확인하며 이 일은 나 혼자만의 비밀로 하기로 했다. 황당한 문자를 받은 그 분에게 죄송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