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일주일 앞두고 사건이 있었다. 그 날의 일 역시, 그 순간에는 알아채지 못했다. 유난히 어떤 상황에 집착하게 되는 때가 있다. 평상시엔 나의 지랄맞음을 인지할 수는 있지만 악착같이 뿌리를 뽑아내려 작정한 날에는 그 센서가 작동하지 않는다. 나름의 기준으로 아이와의 교감이 어느 정도 생겼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했던 말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나의 착각이었다. 아이는 선생님이 오지 말래, 안 갈거야, 라고 했고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어머님은 계속되는 거부에 결국 학원에 전화를 하셨다. 금요일에 생긴 일이었고 결국 월요일에 아이는 오지 않고 어머님의 전화가 와서 선생님과 통화를 원한다고 전했다. 그런 말을 하게 된 전후사정을 말씀드렸으나 돌아온 말은 "애가 그럴 만 하네요.". 당황했다. 아이는 상처받은 것이다. 내가 해야 하는 건 사과 뿐이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걸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순간 억울했다. 아이의 말을 전하고 있지만 본인도 상처받은 것 같은 어머님의 말을 더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내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어땠는지 의심(?)할 수 있었다. 핵심을 짚어야 했다. "제가 아이를 구박해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솔직한 어머님의 말, "열받을까봐 그것까지는 애한테 아직 못 물어봤는데 이제 물어보려고요."
아이는 아이다. 영어학원에 가기도 싫은데 이참에 아예 끝장낼 타이밍이라 생각할 수 있다. 엄마와 할머니까지 아이의 얘기를 들으며 흥분한 상태니 최악의 상황은 아이가 학원을 그만두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바이럴마케팅의 효과만큼 그 반대상황도 무시무시하다. 나만 아는 나의 진심은 있으나 없는 것과 같았다. 어머님은 의외의 얘기를 했다. 애가 눈치도 없고 잘하는 것도 하나도 없다고 그런데 그렇더라도 학원에서 와라 말아라 할 건 아니지 않냐고. 그 나이의 남자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눈치가 없고 해맑고 천둥벌거숭이같다. 그렇지 않은 소수의 아이들이 예외다. 그 날의 일도 아이가 못해서가 아니었다. 부유하게 자라고 부족한 것 없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게 간식을 싸와서 흔쾌히 나눠주는 아이였다. 오히려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의 그런 모습을 이용하는 것을 그냥 봐넘기기 힘들어 몇 번 간여한 적이 있었다. 아이편에서 다른 아이들을 야단칠 때 오히려 아이는 괜찮다고 했었다는 얘기를 하자 수화기 건너편의 "그런 적도 있었나요?" 하는 목소리에 균열이 생겼다. 어머님은 아이가 지적받는 상황에 거듭 놓였던 경험이 있었고 어쩌면 그래서 아이가 소외되거나 외로워졌던 적이 있을 수도 있었는데 내가 그 예민한 구석을 건드렸다. 의도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니지만 아이가 의도까지 알아채서 수긍할 수는 없는 일이니 그 말을 한 것에 대해서 사과했다. 학원을 계속 다니고 말고를 떠나 아이가 상처받은대로 나둘 수는 없으니 사과를 전해달라고 하니 아이를 설득해서 데러올테니 직접 얘기해달라고 하며 통화는 끝났다.
며칠 뒤 아이가 엄마 손에 이끌려 학원에 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고 해명을 했다. 내 말을 다 이해했냐고 물으니 쑥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반 친구들이 기다린다고, 이왕 왔으니 같이 게임하고 갈래?, 했더니 해도 돼?라고 엄마에게 묻는 아이. 저렇게 천진난만한 애한테 내가 무슨 짓을 한걸까. 아이를 교실로 보내고 어머님은 아이 간식과 실장님과 내 커피를 사다주시고 나가시며 "저 그렇게 이상한 엄마 아니에요~"한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일주일 동안 속을 지지고볶았다. 마음을 몰라준다고 아이탓을 할 수도 없었다. 아이 말만 듣고 화를 내는 엄마도 아니었다. 아이에게 섭섭한 마음도 없고 밉지도 않고 심지어 어머님은 보자마자 너무 예쁘고 세련되어 왜 만나고 있는지도 잊고 외모에 반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팠다. 아픈 이유를 들어다보려고 버둥거리는 동안 당연하게도 불면의 밤들이 이어졌고 오래된 친구이자 극도의 스트레스상태에서 어김없이 나를 찾는 건선이 다리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만이었다. 이제 아이들이 손안에 찰흙처럼 만지는 대로, 굴리는 대로 잡힐 줄 알았던, 조금 센 얘기를 해도 내 마음을 알아줄거라는. 세상에 당연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고 글을 써놓고는 내가 하는 행동은 당연하다는 듯 아이의 마음을 함부로 헤집어 놓다니 희망이 겨울밤 떨어지는 해처럼 곤두박질쳤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면서도 내내 머릿속 덫에 갇혀 똑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아직도 멀었구나. 인간이 되기도, 선생이 되기도. 학원에서의 내 이미지는 커리큘럼고수자이자 안하는 애들 그냥 못 넘기는 원칙주의자다. 성격대로이긴 한데 그걸 많이 내려놨다고 생각한 순간 일은 터진다. 갑과 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일이 수모를 느끼게 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원인을 제공했으니 내가 풀어야한다고 생각했지 피하고 싶지 않았다. 밖에서는 그 모습이 책임감있고 담대하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자괴감에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밖에는 안될까. 대체 왜 그냥 넘어가질 못할까.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까지 했을까. 그래봤자 나이도 가늠할 수 없이 투명한 피부에 잘 몰라도 며칠을 고민하며 살까말까 망설이는 인터넷상점의 몇십만원 짜리보다 족히 열배는 비싸보이는 외투에 관리받은 몸매에 고급주택단지에 그에 걸맞는 차를 타고 아이들은 개인과외나 시키지 학원은 그저 아이들 사회성을 위해 보내본다는 어머니들에게 진심을 구걸해야하는 거라면 나는 이 일을 왜 하는 걸까.
내가 잘못해 놓고 바닥을 쳤다. 그 어머니가 가진 것이 나를 더 낮아지게 했다면 그건 내 문제다. 흔들리지 않고 자라는 건 없다지만 사춘기도 아니고 이십대도 아니고 친했던 옛친구가 인스타그램의 셀럽이 되어 퍼스트클라스를 광역버스 타듯 애용하고 집에 발레선생을 들여 온가족이 개인수업을 받고 백화점 명품브랜드에 장보러 가듯 드나들고 드나드는 만큼 사는 피드를 보면서 무뎌졌다 생각했던 찌질한 마음이 대폭발했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와는 동떨어진 감정까지 버무려져서 "올해의 사건" 트로피를 받아 마땅한 한 주를 보냈다. 마음의 병은 몸의 병을 끌고 오기에 몇 년 동안 큰 병 모시느라 소홀했던 감기까지 소소하게 찾아주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찾아오신 줄도 몰라뵙고 아, 왜 코가 막히지? 왜 콧바람이 뜨겁지? 처럼 맹추같은 생각이나 하면서 초기대응에 실패했다. 살겠다고 비타민C를 폭탄처럼 때려붓고 차를 끓여서 혼자 1리터를 마시고 아무래도 적응 안되는 이상한 맛의 프로폴리스를 아침저녁으로 목구멍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