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고등학생~대학교 1학년)를 지나 법적으로 성인이 되고, 본격적인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전공과목의 교수들을 강의실에서 볼 일이 생겼는데, 항상 전공을 가르치는 교수의 얼굴에서 절망이나 희망이 아닌, 공허(nothingness)라고 말하면 매우 적절할 아무런 감흥이 없는 표정을 보게 되면 그런 얼굴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집에 돌아오면 머릿속 서랍을 열어서 누벨바그의 시네마를 빔 프로젝터로 재생하는 것처럼 돌려서 보곤 하였다. 왜 교수는 인생을 전부 산 것처럼 흥미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을까? 그 비밀은 시간이 지난 뒤에, 내가 석사과정을 마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자신의 인생을 걸지 않고도 30대 초반 정도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전공에서는, 그것이 가능한 학문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1/n을 제도적 학문에 바치고 나머지 (n-1/n)를 앞으로 얻어야 할 어떤 유무형의 것을 위해서 보관하거나, 축적할 수 있다. 하지만 철학이나 어문학은 인생에서 1/n을 바치는 것만으로는 학위를 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2/n, 3/n을 바치는 것도 웃긴 일이다.
그들을 인생 전부를 바치고 박사학위를 받아서, 나머지 인생에서는 아무 것도 이룰 것이 없는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교수가 되든 말든 그것도 큰 문제가 아니지만, 어쨌든 한국 사회에서 교수직을 하게 되면 금전적인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되기 때문에 (정년 이후에도 연금이 나온다는 장점이 존재한다) 단지 돈을 위해서 교수직을 선택한다. 그 다음에는, 교수가 된 뒤에 자신의 연구실을 얻은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최근에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이충민 교수가 4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곧바로 떠오른 사실 하나. 그는 (아마도 윤이형 사태 이후로 계정을 잠궈 두어서 그랬겠지만) 나를 블럭한 적이 있다. 따라서 그의 계정을 보기 위해서는 다른 계정으로 들어가서 트윗을 확인해야 했다. 그의 마지막 트윗에는 몇십 개의 추도문이 붙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생전의 그의 성품을 칭찬하는 멘션들이었다. 하지만, 고인과 나의 접점이 전혀 없다는 사실 때문은 아닐지라도, 나는 앞의 일화를 되새겨보면서 이충민 선생이 과연 인생에서 이룰 것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인생에서 몇 분의 몇을 바쳐서 박사학위를 얻었을까? 만약 그것이 전부라면,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 남은 짧은 삶은 그에게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 삶이었을까? 그에게 1/n의 삶이 남아 있었기를 바라는 나의 기원은, 부디 위선적인 마음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이제 영원히 그 대답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과장하지 않고 말하기 위해서 여기에서 글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실제의 삶에서 퇴장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아무 것도 아닌 어떤 것에 인생을 바친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