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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션] 온전히 혼자노는 방법


BY 사교계여우 2020-03-01

'혼자놀기'가 거북한 이 시대의 자화상.
 
왜 역사책 같은 것을 보면 그 시대가 흘러가던 대략의 조류나 사상이 현대의 시점에서 풀이되고,
구간을 나눠 정리될 때가 있다. 개중 어떤 것은 2000년대의 사고로는 당최 이해가 어렵고,
정말 그랬기나 한 건지.. 웃기려고 그런 게 아닌지.. 의문스러운 것도 있다.

그런데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웃기는 얘기들'의 가능성을 어쩐지 납득하게 된다.
하여- 서기 2500년 즈음 현재를 돌아본다면 우리도 '웃기는 선배들'이 되는 거지.

...



내가 웃기는 선배들의 틈바구니에서 심신의 위험을 느낀 것은 그때문이다.

2월 14일엔 초콜렛을 받아야 하고, 11월 11일엔 빼빼로 정도는 처먹어줘야
최신 트랜드에 뒤쳐지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문화인이라규~
..라고 생각하는 군중들은 절대 싱글을 자신과 동급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 싱글들은 싱글대로 커플들을 무찌르자며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둥,
별로 재미도 없는 개그를 해대며 은연 중에 커플부대에 끼지 못한 자신을 한탄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냥 가만 있어도 되는데.

그런고로 애인이 있어야 하고, 빨간색이어야 하고, 파란색이어야 하고, 쿨게이는 꺼져야 하고,
BAR와 극장은 혼자 가면 안 된다. 이 시대는 혼자 놀기를 용납하지 않으니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자신도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집단'을 갈구하게 됐다. 어디든 속하지 않으면 낙오자라 여기게 된 거다.
그래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을 무심한 듯 시크하게 깐다.
어쩌다 혼자 술을 마시고 있으면 변태로 낙인 찍히는 세상이 된 걸까.
(심지어는 혼자 노는 사람들조차 스스로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하며 불안해 한다)

이게 말로만 듣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윤택해지는 삶의 부작용인가..
농경사회에서의 혼자 놀기는 적어도 선비급이나 구사하는 일종의 고급 오락이었다.
그러던 것이 개나소나 루이비통을 메고 다니는 풍족한 시티라이프가 펼쳐지자
굶주린 하이에나 마냥 여기저기 심적 평안을 들쑤시는 역크리를 맞게 된 거지.


어디엔가 속함으로써 자아가 유지되고, 안전하다 느껴지는 사회는 깝깝하다. 그리고 위험하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아니, 할 수 없는 사회가 어찌 정상이라 하겠나.
이것은 '이기적 개인 플레이'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문제다.
[온전히 혼자 노는] 상황을 이상하게 보며 변태로 규정하는 인식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그리고 스스로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 우리나라는 여전히 후진국이다.
페레가모를 신고, 루이비통을 메고, 아르마니를 입고서 불안해 하는-
마음의 안식을 '집단과 소속'으로부터 찾는 영혼의 후진국.


우리는 그동안 너무 물질과 외향의 발전 만을 바라보며 달려왔고,
그 결과 본의 아니게 밸런스의 붕괴 현장에 서있게 됐다.
이것은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짊어져야할 범국가적 트라우마에 진배없다.
이제는 오롯이 심적, 물적 균형을 추구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갈 길은 멀다. 자신과의 싸움은 언제나 지리하고 힘겨운 법이니까.
바야흐로 거북한 세상, 모쪼록 Good Luck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