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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염쟁이 유씨


BY 왕눈이 2015-02-13 13:14:50

 

입춘이 지났건만 여전히 바람이 차가운 2월 12일 대학로의 밤은 쌀쌀하기만 합니다.

하필이면 오늘 관람할 공연은 '염쟁이 유씨'입니다. 어느 계절이든 '죽음'이란 주제는 마음을 더 차갑게 하지만 오늘은 유독

마음가짐이 비장해지네요.

 



 

대학로는 공연의 메카가 확실한 듯 합니다. 꾸준히 대학로의 극장들을 섭렵하고 다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처음 방문하는 극장이 남았있네요.

아주 오래전 첫 연극을 보았던 삼일로의 창고극장이 떠오릅니다. 지금 대학로의 극장들이 바로 창고극장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염쟁이 유씨'는 누적공연 2천여회, 전체 관람객 30만명, 소극장 1인극(모노드라마), 죽음에 관한 이야기까지 소위 안팔리는 조건을

다 갖춘 연극임에도 승승장구하는 유명 공연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극복이 탄탄하고 대사가 좋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오랜 공연이다보니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들도 많았을겁니다. 오늘의 캐스팅은 '신현종'씨네요.

로비에 앉아 기다리는 관객층을 보니 의외로 다양해서 놀랐습니다. 주제가 무겁다고 생각해서 중장년층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오늘은 운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좌석을 찾아 앉고 보니 중앙무대의 가장 앞에 줄이었습니다. 덕분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소극장의 묘미는 바로 배우의 호흡까지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죠.

 


 

소극장을 많이 봤지만 이랑씨어터의 좌석배치는 상당히 특이한 것 같습니다.  무대를 중심으로 'ㄷ'자 모양으로 배열이 되어있습니다.

무대는 관이 가운데 놓여있고 뒤에 병풍이 있습니다. 군데 군데 걸려져있는 수의가 오늘의 공연이 '죽음'임을 암시하네요.

주인공이 등장하고 처음 몇 분간의 공연의 아주 재미있습니다. 염쟁이 유씨는 자신이 누구냐는 질문으로 관객을 공연으로 끌어들입니다.

평일이다 보니 관객은 많지 않았지만 공연내내 배우와 함께 호흡하는 수준이 상당히 놀랍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유씨는 조상대대로 염을 가업으로 이어온 집안에 장남이었습니다. 자신만은 절대 염쟁이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자신의

시신을 남에게 맡길 수 없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딱 3년만 염쟁이를 해보기로 맘을 먹었다가 결국 평생 염쟁이로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취재하려는 기자를 위해 자신이 마지막 염을 하는 날 그를 초대하게 됩니다. 배우는 관객하나를 지목해서

기자역할을 부여합니다. 처음에는 당황했던 기자역의 관객은 시간이 갈수록 아주 괜찮은 배우가 되어가네요.

나머지 관객들은 기자와 함께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체험꾼이 됩니다.

저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입관하기전 염을 끝낸 시신을 처음 봤는데요. 지금도 마음이 싸해집니다. 워낙 마른 체형이어서 그랬는지

염을 하면 몸을 꽁꽁 싸매어서 그런지 삼베로 둘러싸인 아버지가 너무도 작아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보통 염을 하는 장면을 가족들이 참관을 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무섭다고 해야하나...입관전에만 참관을 했었습니다.

생각보다 염을 하는 과정은 아주 복잡하더군요.

명칭도 낯선 수시, 반함, 소렴, 대렴..그리고 입관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염쟁이들의 일이 녹록치 않다는 걸 알게됩니다.

굳어진 시신의 몸을 주물러 펴고 소나무나 쑥을 우려낸 물로 씻기고 시신의 몸에 있는 구멍을 막고..

보통 죽음에 이른 사람의 몸뚱아리에서는 썩은 물들이 나오는데요. 이 물을 빼내지 않으면 고운 탈골이 어렵다고 합니다.

시신의 입에 엽전이나 물에 불린 쌀알을 넣고-이건 저승가는 노잣돈이랍니다.-

수의를 입히고 온몸을 꽁꽁 싸매고..

배우는 그 장면을 고스란히 재현합니다. 그리고 사이사이 죽음에 관한 철학적인 대사들을 꺼내놓습니다.

부모님들이 미리 영정사진을 찍고 수의를 장만하거나 하면 절대 화내지 말고 잘 받아들여라. 저승으로 가는 준비를 하는 부모님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사실 유씨에게는 늦게 장가들어 겨우 하나 얻은 아들이 있었답니다. 자신처럼 염쟁이가 되는 것이 싫어서 오래전 아들을 내몰았는데

9년이 넘어서도 오지 않았던 아들이 유씨에게 왔습니다. 가장 가슴아픈 모습으로...

 

중간중간 등장하는 장례대행업자의 코믹한 연기가 다소 무거움을 걷어가 주곤 합니다. 그에게 어딘가 초상이 나서 알려주면 건당

4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이 솔깃합니다. 투잡으로 한번 해볼까나...www.골로가.com으로 접속해서 알바한번 해보시길...^^

망인에게 첫 제사를 올리면서 배우는 소주를 꺼내 마십니다...자신이 마시던 소주와 귀하다는 죽방멸치를 관객에게도 권합니다.

덕분에 저도 소주 한잔과 멸치 한 마리를 얻어 먹었습니다. 소주는 달았고 멸치는 짜지 않고 너무 맛있었습니다.

 

'죽은 사람 때문에 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 사람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 소중한게여...'

'음식 맵시는 상차림에서 나타나지만 그 사람의 성품은 설거지 할 때 나오는 벱이여.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죽어봐야 아는거여.'

참 가슴을 울리는 대사들입니다. 흔히 마지막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내 뒷모습은 어떨까요.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하필이면 자신의 마지막 염이 사랑하는 아들이라니..아버지를, 아내를,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거두는 염쟁이 유씨의 인생이

버겁습니다. 오래전 먼저 떠난 남동생과 재작년 오빠를 따라 떠나버린 막내 여동생이 떠올랐습니다.

먼저떠난 사람을 가슴에 묻지 않으면 영혼도 떠나지 못한다는 배우의 말이 가슴을 칩니다.

우리도 기어이 반드시 가야하는 '죽음'을 평생 지켜봤던 염쟁이 유씨의 인생을 보면서 '삶이 켜켜히 쌓여 죽음이 된다'는 배우의

말을 감싸안고 일어섰습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대로 숙연해졌고 간혹 여자분들은 눈물을 흘렸던 이 공연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유씨에게서 받았던 소주 한잔과 은은하게 퍼지던 향의 기억을 간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