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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BY 굴렁쇠 2008-07-10

'민중을 사랑했던 장관'....'2MB만을 사랑하는 장관'

 
둘 다 국민에게 사랑 받는 배우 출신이다. 둘 다 연극을 전공했고, 배우들의 꿈인 오페라 무대에도 섰다. 뭐 중요한 건 아니지만 두 사람 모두 외모까지 출중하다. 두 사람 모두 문화예술인으로서 문화부장관이 된 것도 같다.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한 사람은 그리스 여성이고, 한 사람은 대한민국 남성이다.

한 사람은 자기 나라의 민중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이 두터운 난세의 투사였고, 한 사람은 자기 나라의 민중들로부터 지탄과 실망이 끊이지 않는 난세의 '또라이'다.

한 사람은 경애의 마음으로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지만 한 사람은 벼슬아치 명부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골칫덩이다.

이쯤 되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알아차릴 때가 됐다. 유인촌 문화부장관이다.

다른 한 사람은 그리스의 멜리나 메르꾸리(Melina Mercouri, 1925~1994)다. 그녀는 죽었지만 지금도 민중의 가슴속에 '그리스의 잔다르크'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조국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고단한 인생역정을 해쳐온 아름다운 전사였기 때문이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것이 마땅찮다.

하지만 나라의 어려움이 여전히 존재하고, 더한 위기와 곤경에 처할 수도 있는 마당에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 마땅한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다. 그래서 역사는 항상 과거를 안고 현재를 움직이며 미래를 예측한다. 예측된 미래가 절망적이라면 그 거울을 든 현재를 과감히 수정해야 한다. 과거의 경험, 사례, 증거가 타산지석이 됨은 물론이다.

장 찬 악역배우, 유인촌 장관

배우 유인촌의 뛰어난 연기력을 접한 것은 아무래도 양촌리 김회장댁 둘째아들로 나오는 <전원일기>였을 것이다. 그가 출연한 다른 드라마나 연극무대는 거의 본 일이 없다. <전원일기>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는데도 도시적인 이미지를 제법 잘 눅이며 양촌리에서 촉망받는 농사꾼이 됐던 그다.

유인촌은 그 이후로도 <역사스페셜>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몇 번 본 기억이 있다. 역사의 진실을 캐내는 과정이 녹록치가 않았다. 유인촌씨의 진행도 무게가 있었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연극무대에서 그의 연기는 물오를 대로 올랐다고 한다. 그의 인생도 배우로서의 품격과 지성과 감성, 인간미를 두루 갖춘 인격체로서 모자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 그는 악역을 자임한 궁색한 배우이다.

이명박 정부 각료로 입각한 이래 유인촌은 돌변했다.

한마디로 '잘못된 악역을 자임한 초라한 배우'의 몰골로. 지금 생각하면 노무현 정부 시절 배우를 부리는 감독 출신 이창동 장관이나 김대중 정부 시절 삼류소설가 출신 김한길 장관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여서 그럴까. 문화부장관(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 발탁된 날부터 지금까지 관료로서 하는 꼬락서니가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충견으로서 그의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설쳐대는 모습은 눈뜨고 볼 수가 없다. 왜정시대 완장을 찬 친일앞잡이들과 무엇이 다른가.

귀공자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갈수록 비열함이 하늘을 찌르는 그의 저격수 노릇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보자. 얼마전 (6월 24일) 한동안 도끼눈을 뜨고 주시하던 그가 참지 못하고 또 국민들의 오장육부를 뒤집어놨다.
촛불집회를 중단하란다. 민생경제 안정을 위해 불법시위를 즉시 중단하고, 촛불을 끄고 일터로 돌아가란다. 다수 시민이 누려야 할 광화문 일대 문화공연이 촛불시위 때문에 취소되고 있단다. 고유가 사태로 경제가 어려운데 불법시위가 웬말이냐 그런다.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는 쇠고기 사태를 국민의 힘으로 막아보겠다는 것이 촛불시위가 아니었는가. 민생경제 안정을 위해 망국적인 한미 FTA의 파고를 넘고자 국민들이 밤마다 광화문 서울광장에 모인 것이 아니었는가.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잃어버린 국민주권을 찾기 위하여 물러설 수도 없는 전선에 초병으로 달려온 사람들이 아니었는가. 어쩌면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가장 용기 있게 대처한 풀잎 함성들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유 장관의 지난 몇 달 동안의 모습. 유인촌 장관의 업무를 지배한 것은 '오만과 독선'이었다. 그는 행정공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체 문화부 인사도 미룬 채 산하 기관단체장을 몰아내는 데만 집착했다.

정치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이랬다.
"이전 정권(노무현 정부)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코드가 맞지 않으면 같이 일을 할 수 없다",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계속 자리를 지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행위다",
"끝까지 자리에 연연한다면 재임 기간에 어떤 문제를 야기했는지 공개할 수밖에 없다" 


▲ 유인촌 장관에게는 정책은 없고, 오직 완장 찬 MB 추종 권력만 있다.

참으로 폭군이 따로 없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권력의 유착을 방지하기 위한 기관장의 임기보장)'까지 노골적으로 부정하며 한때 한솥밥 먹던 동료 선배 문화예술인들을 능멸·숙청하는데 팔을 걷어 부쳤다.

공공기관단체장은 공익을 위해 존재한다.

권력의 이동이 있을 때마다 논공행상의 대상이 되거나 정치적 목적에 따라 마음대로 휘둘릴 수도, 휘둘려서도 안 되는 그런 존재다.

기관·단체장 자리가 그 무슨 정치투쟁의 전리품이냐 말이지. 다양한 빛깔의 공존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할 문화정책의 책임장관이 '코드'와 '색깔'을 내세워 반문화적 폭력을 자행했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그것은 장관으로서 명백한 위법행위이며, 직무유기며, 산하 기관·단체장의 정상적인 업무방해행위다.

산하 기관·단체장들은 온갖 수모를 겪다가 하나 둘 쫓겨났다. |

유인촌, 그에게는 문화관광정책이 없다. 권력을 앞세운 문화폭력만이 있을 뿐이다. 문화관광장관의 자격을 상실한 대통령 친위대장이면서 돌격대장일 뿐이다.

이런 그에게 조국이 어디 있고, 반만년 겨레의 역사와 문화가 어디 있겠는가. 완장 찬 선무당의 광란극만 되풀이 될 뿐이다.

그리스의 아름다운 전사, 멜리나 메르꾸리

멜리나 메르꾸리. 1925년 10월 18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모의 이혼으로 어렸을 적부터 할아버지와 살았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스피로스. 제정시대에 30년간 아테네시장을 지냈다. 아버지 스타마티스 메르꾸리도 내무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명망 있는 정치가 집안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에 관심이 있는 그녀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연극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과 함께 아테네로 돌아온 멜리나는 이후 1960년 남편 쥘 다생이 감독한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Never On Sunday)와 1962년 <죽어도 좋아>(Phaedra)에 출연해 60년대 월드스타로 부상했다.

멜리나는 이 두편의 영화에서 지적이면서 정열에 불타는 연기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영화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 멜리나를 키운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을 감독한 쥘 다생은 미국에서 매카시 선풍이 한창 일던 헐리우드 블랙리스트 시대에 공산주의자로 몰려 미국을 떠나 그리스에 정착한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그와 함께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많은 영화인들이 미국 영화계에서 함께 추방되었고, 이후 헐리우드는 섹스와 오락 위주의 저질 대중문화가 판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멜리나 메르꾸리를 국제적인 스타로 만든 <일요일은 참으세요>는 그리스 문화를 밑바탕에 두고 속된 미국 문화를 냉소적으로 신랄하게 비판하게 된다. 멜리나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그녀가 사랑한 그리스 항구 피레우스는 영화촬영지로 유명관광지가 됐다.

배우로서 입지를 굳힌 멜리나가 민주화 투쟁과 정치무대에 뛰어든 것은 1967년 발생한 군부쿠데타가 계기가 됐다. 4월 21일 새벽, 그리스는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왕정제의 반혁신적인 정치로 불안이 고조되자 일개 대령이었던 요르고스 파파도풀로스가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콘스탄티노스 2세가 축출되고, 모든 자유와 인권이 억압되고 유린되었다. 광기의 군사독재가 시작된 것이다.(그리스의 아픈 현대사는 우리의 역사와 많이 닮아 있다.) 이때 아테네시장으로 30년을 보낸 할아버지도 결국 투옥되어 감옥에서 일생을 마쳐야 했다.

멜리나는 침묵하지 않았다. "쿠데타는 나에게 겁탈과도 같은 영향을 마쳤다. 겁탈당하면서 조용히 반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르짖고 반항하며 할퀼 것이다." (멜리나 메르꾸리의 회고 중에서)

멜리나는 그리스를 떠나 뉴욕으로 건너갔다. 그녀는 미국 TV에 출연하여 처음으로 그리스의 광폭한 정치현실을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군정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아무도 그리스 여행을 하지 말라"는 말을 마다하지 않았다.

영화로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그리스의 해변으로 유혹했던 자신이 이제는 그리스를 보이콧하자고 호소했다. 그리스 군정은 노발대발했고, '반국가적 해외활동'을 이유로 멜리나의 시민권과 그리스 내 모든 재산이 몰수됐다.

군사정부의 시녀가 된 그리스 정교회도 그녀를 파문했다.

1967년 7월 12일, 일련의 조처를 통고 받은 멜리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외쳤다. "나는 그리스인으로 태어났고 그리스인으로 죽을 겁니다. 파타코스(준장, 내무부 장관)는 파시스트로 태어났고 파시스트로 죽을 겁니다" 이 말은 그후 그리스 레지스탕스의 슬로건이 됐다.


▲ 멜리나는 조국을 진정으로 사랑한 철의 여인이었다.

조국의 민주화를 향한 멜리나의 항거가 더욱 거세지자, 그리스 군정은 킬러를 뉴욕에 급파해 공연 중인 그녀의 암살을 기도했다가 무위로 끝났다.

하지만 멜리나는 굴복하지 않았다. 세계를 순회하며 조국의 정치현실을 계속 폭로했고, 자금을 모아 군사정권에 대항해 투쟁하는 지하운동조직을 측면 지원하기도 했다. 7년을 머무른 멜리나의 망명지는 조국 그리스를 위한 투쟁의 요람이었다.

"그리스의 자유는 그리스 민중의 손으로 쟁취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진실은 그것 외에 있을 수 없으며, 우리는 이것과 맞서야 했다....자유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멜리나 메르꾸리)

1974년 7월, 마침내 군사정권은 무너졌다. 이틀 뒤, 그녀는 망명지에서 돌아왔다. 조국을 사랑했던 멜리나에게 그리스는 눈물나는 땅이었다.

첫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회당(PASOK,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 후보로 나섰다가 33표차로 고배를 마셨던 멜리나는 1977년 두 번 째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1981년 총선거에서 사회당이 집권하게 되자, 멜리나는 그리스 여성 최초로 문화부장관에 임명됐다.

그후 멜리나는 1989년까지 43번에 걸쳐 개각이 단행되었음에도 유일한 여성장관으로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다.


▲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멜리나 메르꾸리


유인촌 장관에게는 없는 특별함이...

멜리나의 문화정책은 그의 조국의 민주화 투쟁 경험과 정치가로서의 열정이 잘 받쳐진 사례로 손꼽힌다.

멜리나 장관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정책 가운데 하나가 빼앗겼거나 밀반출된 그리스 문화재를 되찾아 오는 것이었다.

그 중 1816년 영국의 오스만 제국 주재 대사인 엘긴 경이 약탈해 간 소벽(小壁) 조각상이 대표적이다. 17개 조각상으로 구성된 이 대리석 소벽은 2500여년 동안 아크로폴리스 광장의 파르테논 신전 한쪽 벽면을 장식하던 뛰어난 걸작품이었다. 이 조각상은 영국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명칭도 약탈자의 이름을 따서 '엘긴 마블스'로 개명돼 있다.

멜리나 장관이 조국의 문화유산을 돌려 받기 위한 노력은 눈물겨웠다.

"마치 눈알을 도려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잔인하고 매우 추악하다. 나는 끝까지 이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멜리나는 영국과 국제사회에 호소했고, 이 노력은 강대국들로부터 문화재를 약탈당한 약소국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었다.

1994년 3월 6일, 소벽 조각상이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지병으로 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때 나이 68세.

그리스의 모든 라디오와 TV는 정규방송을 중단했다. 4일 동안 전 국민의 애도기간이 이어졌고, 집집마다 조기가 내걸렸다. 아크로폴리스를 비롯하여 모든 문화 장소에도 조국의 딸을 추모하는 조기가 조용히 나부꼈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멜리나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그녀의 예술과 민주화 투쟁은 바로 그리스 자체"라며 슬픔을 감추지 않았다.

유인촌 장관에게는 없는 특별함이 멜리나 메르꾸리 장관에게는 있다.

유 장관에게는 MB를 위한 반문화코드만 있고, 멜리나 장관에게는 조국을 위한 참문화코드가 있다. 유 장관은 MB만을 극진히 사모하지만, 멜리나 장관은 조국의 전부인 그리스 민중을 사랑했다.

지금, 물러나야 할 사람은 유인촌 장관이다. /굴렁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