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아줌마의 글을 퍼 온 것입니다.
어렸을 적
가로등 불빛도 없어 그야말로 칠흑같이 어두운 밤,
눈이 내리면 그 빛으로 창호지 안까지 환했었다.
잠결에 턱 하고 무거운 물체가 던져지는 소리와 수런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면…
어느새 앞마당엔 불이 켜지고,
불빛 아래엔 피 흘리는 노루와 꿩 몇 마리,
그리고 청둥오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겨울 밤 사냥가신 아버지의 전리품.
아침이면 뼈까지 다진 꿩고기가 상에 오르고,
저녁에는 오랫동안 곤 노루 국물이 한 그릇씩 돌아갔다.
그때는 동물들은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쌓인 눈에 햇살 쏟아지는 겨울 아침에
얼음 사각거리는 논길로 새끼줄 하나 달랑 들고
사냥총 든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 다니다
'탕, 탕' 소리에 후드득 떨어지는 참새를 주워 새끼줄에 목을 꿰었다.
어른 허리띠만큼 새끼줄을 채우면, 신이 나서 돌아와 아침을 먹고,
기름소금 발라 구운 참새를 먹었다.
조금 커서 교통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주검을 보고,
한참 동안 고기를 입에 대지 못했고, 그러다 잊고 살았다.
내 몸에서 생명이 태어나서야
생명을 가진 길가의 풀 한 포기조차 귀한 것을 알고
인간의 감정을 느끼며, 감정 표현까지 하는 동물들..
그냥 지나가는 시궁쥐 한 마리의 생명도 하찮게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박노자의 사냥에 관한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사냥은…
권력체험이라는 것이다.
생계수단으로서의 사냥이 아닌 호화로운 취미 생활로서의 사냥.
옛날 전제군주나 귀족들이 즐겼던 사냥을 일반 시민들이 즐겨하는 건
평등한 사회에서 목청 높일 기회가 없는 범인들이
동물에 관한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절대 군주를 흉내내는 권력 체험…
권력 체험은 인간의 깊은 본능이고,
다른 인간 위에 군림할 기회가 없어 동물에라도 군림하려는 인간이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금 인간 위에 군림하려 할 것은
명약관화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사냥을 동물보호, 자연생태계의 관점에서만 보아왔던 나로선,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사냥뿐 아니라 모든 것이 권력의 문제이다.
남녀 간의 관계에서도 결국엔 권력의 문제가 남는다.
관계 안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경제적인, 그리고 성(性)에 있어서도 권력의 문제이다.
어떤 곳에서도 권력은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마누라를 패서라도 권력을 가지려 한다.
사소한 행동 하나도
권력을 가지려는 무의식적인 의도에서 비롯될 때가 잦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성폭행도 성의 문제라기보다는 권력이다.
나이, 힘, 지위, 성의 권력…
하물며, 정치에 있어서 권력 다툼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권력 다툼을 나무라는 일은 허망한 일이다.
권력으로 얻은 힘을 더 큰 권력을 잡기 위해 쓴다.
돈이 권력이고, 이름이 권력이고, 문화가 권력이고
이젠 다시 종교가 권력이 되는 시대이다.
권력의 맛을 본 사람은 절대 권력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야비하게 뒤에서 칼로 찌르고,
나 빼고 가족 모두를 불구덩이에 밀어 넣고서라도…
권력을 얻기 위해 사람으로 해선 안 될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만큼 달콤한 게 권력이고, 그 힘은 막강하다.
그러니… 뻔한 동영상에도 아니라고 부정하고,
아침에 한 거짓말을 해가 지기도 전에 뒤집는다.
국민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려 하는 것도 모자라
교과서를 개정하고 역사까지 바꾸려 한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자국을 식민지화했던 나라를
미화하는 나라는 없다.
그들에게 국민은, 자기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일 뿐이고,
국가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만드는 목표물이다.
장애가 되는 것은 간단하게 치워버리면 그만이다.
국가, 국민의 돈이라는 개념도 없다.
땜빵질 하기 위해 자기 돈 쓰듯 국민의 돈을 꺼내 쓰는데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다.
(몇 년간 국민연금, 의료보험 각각 십 만원씩 냈다.
만 삼천 원 내는 사람도 있다는 거 알고 전화했더니
삼만 원쯤 깎아주더라…)
그들에게 국민은 총질해도 되는 노루 정도로 보이는 것인가…
새끼줄에 목을 꿰도 되는 참새…?
천만의 말씀이다.
순한 노루도, 아무것도 모르는 참새도 분노할 줄 안다.
내 안에서 용암처럼 끓고 있는 이 낯선 감정은
'분노'이다.
그러면… 권력은 영원한가…
만만의 콩떡이다.
힘없는 민초를 우습게 보다가 크지도 않은 코 다친 사람 여럿 봤다.
빈 총도 안 맞느니 못한 데, 과녁을 잘못 정했다.
1%만을 위한 총질에… 99%는 아프다.
국민은 너희들에게 잡아먹힐 사냥감이 아니다.
시원찮은 폼이나마 잘 좀 맞춰봐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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