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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여성들의 세월호 참사 NYT광고...우리는?


BY 미개인 201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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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뉴욕타임스> 메인면 11쪽 전면에 게재된 세월호 참사 관련 박근혜 대통령 비난 광고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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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는 사람들, 달마다 공과금에 짓눌려 따로 몇 십 달러 떼어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다들 아시잖아요? 반찬 값 아껴서 낸 성금이 이런 결과로 나오다니... 너무 뿌듯합니다."

"아침 일찍 주섬주섬 옷 챙겨 입고 나간 남편이 두툼한 신문 하나를 들고 와서는 수고했다며 어머니 날 선물이라며 주더군요. 마더스데이에 너무나 감동적인 선물입니다."

"고등학생 아들놈이요… 오늘 아침에 지가 신문 사와서 보고는 가슴 뭉클했대요. 엄마들 짱이라고 하네요. 자기도 알바한 돈 쫌 보내면 안 되겠냐고 합니다."

어머니 날(Mother's Day)인 5월 11일 일요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실린 광고는 미국에 사는 많은 엄마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먼 이국땅에 살면서 고국서 벌어진 참사에 발만 동동거리며 눈물짓던 아줌마들, 그들이 미국 신문에 항의 광고를 내자고 의견을 낸 지 20여 일만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007 작전'을 능가한 <뉴욕타임스> 광고 작전

"한국 정부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국민이 아니라 해외언론이라는 생각에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300명 가까운 아이들이 저렇게 죽어 가는데도 손 놓고 있는 정부를 압박하자는 게 핵심입니다."

처음 <뉴욕타임스>에 광고를 하자는 의견이 한 미주 여성 사이트에 올라온 건 지난 달 23일이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고구마 줄기처럼 드러나는 현 정부의 무능과 무성의로 인한 '참사'로 굳어지던 시기였다. 외국어에 능통한 주부들이 미국과 영국, 독일과 프랑스의 유력 언론 기자들에게 이 사건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와중이었다. 진실을 외치고 있는 고국의 열악한 인터넷 언론 매체들을 돕자는 포스터가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때였다. 

한 회원이 조심스럽게 <뉴욕타임스>에 이 사건의 실체를 보여줄 전면 광고를 제안했다. 2013년 터키의 민주화 시위 당시, 국민들의 모금을 통해 미국 신문에 광고를 했던 예가 참조가 됐다. 호응은 높았지만, 매일 밥하고 아이 키우던 주부들은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고개만 갸웃했다. 

누군가 <뉴욕타임스> 광고비를 조사해 게시판에 올려놓았다. 평일판 한 면의 경우, 80000달러(한화 약 8000만 원), 열독률이 높은 일요판은 12만 달러(약 1억 2천만 원)이 된다고 했다. 이 외에 펀딩 회사에 주는 수수료도 10% 정도 예상해야 했다. 남의 땅에서 빠듯하게 사는 주부들이 생활비를 쪼개 모으기엔 너무나 큰 금액이었다. 

능력 회원이 재능기부로 올린 신문 광고 시안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지만 엄청난 비용으로 인해 일은 지지부진해졌다. 그러는 사이 이미 한국 언론엔 비용 문제로 광고를 안 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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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4 수학여행에 들떴던 아이들, 243 세월호에 수장된 아이들, 16 세의 어린 희생자들, 12일 동안의 기다림, 왜 1일째 구조하지 않았나, 결국 구조된 숫자는 0 : 펀딩 마감 27시간이 남은 시각, 3346명이 14만1858달러를 모금해 244%의 참여율을 보여주고 있다.
ⓒ 인디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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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관련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한 회원이 터키의 경우를 참조해 직접 신문사와 협상을 해보겠다는 내용이었다.

"여러분, 정말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오늘 <뉴욕타임스>와의 협상에 성공해서 전면광고를 5만2030달러에 내는 것으로 컨펌을 받았습니다! 저희 모금목표는 5만8000달러가 약간 넘는 금액으로 정했습니다. 9% 인디고고 수수료 + 3% 페이팔 수수료를 더한 금액입니다. 그럼 많은 성원과 동참 부탁드립니다. 전 이만 아기 재우러 갑니다."

목표는 5만8273달러. 해볼 만한 금액이었다. 4월 29일, 앞으로 열흘을 목표로 본격적인 모금이 시작됐다.    

JC, JH, RH

아줌마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사이트가 개설되고 채 하루가 되지 않은 20시간 만에 초기 목표했던 비용인 5만8273달러의 두 배를 모은 것이다. 2500여명이 모금에 참여해 11만3615달러를 모았다. 

까다롭고 꼼꼼한 주부들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큰 신뢰와 호응을 이끌어 낸 배경에는 이 광고를 주도한 세 사람의 주인공이 있다. JC, JH, RH. 초기 자신의 신원을 공개하며 의욕적으로 광고를 추진한 이 세 사람은 지금은 이런 건조한 이름으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펀딩 모금을 담당하는 인디고고(Indiegogo) 측에서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실명이 아닌 이니셜 쓰기를 제안한 것이다. 

모금에 참여한 누구도 이들이 어디에 살고 있고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려 하지 않는다. 다른 주부들처럼 아이를 키우고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엄마라는 사실 외에는 말이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은 광고 시안부터 카피, 모금의 법적 문제, 신문사와의 협상 등 굵직한 일들을 척척 처리하며 회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솔직히 모금이 벌어진 지난 열흘 동안, 이들의 마음고생은 상상을 초월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댓글 알바로 추정되는 이들의 글들이 사이트 게시판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외신에 대한 번역 작업과 <뉴욕타임스> 광고 기사가 한국에 소개된 지난 4월 말부터 이들의 방해는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모금의 순수성을 폄훼하고 훼손하게 하는 댓글들과 작성 글들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더불어 회원들이 쓴 정부 비판 글들이 삭제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뉴욕타임스> 광고의 성격을 바꾸려는 의도가 담긴 글들이 줄을 이었다. 광고 진행팀들의 신원을 의심하고 이들과 어떻게든 접촉하려는 시도도 부쩍 늘었다. 무엇보다 정부 비난 글들이 계속 지워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분개한 회원들의 강력한 항의에 사이트 관리자가 며칠 만에 해킹에 의한 공격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보안을 강화한다는 안내문을 내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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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삭제 사태와 관련된 사이트 관계자의 알림 글
ⓒ Missy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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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글이 훼손되는 것을 체크하기 위해 회원들은 글을 작성할 때 제목 앞에 고유번호를 적었다. 어떤 글들이 삭제되고 사라지는지 스스로 감시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더불어 광고 진행자들의 안전을 우려해 한국 정부 기관의 추적을 훼방할 수 있는 여러 아이디어들도 제안됐다. 진행팀은 공식적으로 어떤 기관이나 언론들의 접촉과 인터뷰들을 모두 거부했다. 진행사항은 오직 모금에 참여한 이들만 볼 수 있는 사이트와 개인 이메일로만 공유했다.  

"(우리가) 밤잠 쪼개가며 회사와 육아를 병행하면서 회의하고 의기 투합하며 캠페인 벌이는 목적, 그것은 300명에 달하는 실종되거나 죽은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님들의 목소리가 되어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진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많은 분들이 원하시기 때문이죠. 처음 계획대로 쭉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생각치 못한 박근혜씨의 영혼 없는 대국민사과발언에 의해 저희가 캠페인 페이지 내용을 살짝 수정했습니다. 

저희 캠페인은 이것 하나이며 앞으로도 이것 하나일 것입니다. 다른 크라우드펀딩 웹사이트에 저희 콘텐츠와 이름을 도용해 사기를 치는 사기꾼들이 있답니다. 절대 그런 농락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펀딩이 호응을 얻자 유사 사기 사이트도 등장했지만 회원들의 집요한 수사에 며칠 만에 철수되는 사건도 있었다. 언제 광고가 나가는지 물으며 나라 망신이라는 글들도 끊임없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회원들은 진행팀을 믿는다는 말로 전반적인 진행과정에 대한 신뢰를 표현했다.

이름까지 가려야 할 정도로 여러 압박들과 가슴앓이가 있을 거라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그런 압력에 광고의 의미가 훼손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행팀의 꼼꼼한 중간보고와 클라우드 펀딩이라는 투명한 모금 방식은 참여회원들이 갖가지 훼방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신뢰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일요판 풀 페이지는 평일판보다 원래 3배 이상 더 비싼 걸로 아는데… 디자인이나 수고비도 없이 좋은 가격에 잘 나와서 너무 좋네요."

진행팀은 지금까지 딱 두 명이 금액 반환을 요청했다는 사실도 솔직히 전했다. 정확히 열흘 만에 4129명이 참여해 16만 439달러를 모금했으니 한 사람당 3만9000원씩 내 오늘의 광고를 만들어낸 것이다. 진행팀은 광고를 하고 남은 금액은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을 상대로 투표를 거쳐 국내 독립 언론 후원이나 추가 광고를 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5월 18일 미국 50개주 항의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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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가 나온 일요일(11일) 오후, 교민들이 <뉴욕타임스> 본사 앞에서 세월호 참사관련 박근혜 정부를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다.
ⓒ Missy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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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미국인들마다 걱정해주고, 아는 사람은 없냐고 물어 보던걸요."
"미국 아줌마들 제게 너무 가슴 아프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 안타까워합니다."
"저희 교수님도 물어보셔요. 좀 전에 광고 PDF 파일 보내드렸어요."
"직장에서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다들 이해가 안 간다고 어떻게 300명 이상의 사람을 한 명도 못 구했냐고..."
"오늘 플로리다 세월호 집회 갔는데, 지나던 미국 사람들 다들 응원하고 엄지 치켜 주고 차 경적까지 울려 주더라고요."
"직장에서 너무 많이 물어봐서 답변하는데도 이력이 났어요."

광고가 나가자 역시나 나라 망신, 누워서 침뱉기, 미국인들은 아무도 관심없어 한다 등의 노력을 폄훼하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줌마들은 그건 300여명이 넘는 아이들을 부모들 눈앞에서 죽게 한 나라의 어른이 할 소리는 아니라며 콧방귀를 뀐다. 우리는 움직일 테니 당신들이나 선장 말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국가를 지키려는 국민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세계에 알리는 걸 창피해 하는 사람들이 전 더 국가 이미지(를) 실추한다고 봅니다." 

"나라의 장래가 될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그 어린 생명보다 체면이 더 중요하다는 사람이 있군요."

"저도 처음엔 정부가 잘 알아서 할 텐데...누워 침뱉기라 여겼는데... 그런데, 생존자가 0이랍니다. 한 명이라도 살아오길 우리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다음 주 미국 50개주 집회에 꼭 나가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 합니다."

어머니 날 아침, 엄마들의 쌈짓돈으로 어렵게 신문 한 면을 채운 오늘 광고에 대해 한 주부가 따끔한 결론을 내렸다. 

"<뉴욕타임스> 광고는 단순히 미국 시민들만을 위한 광고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정부의 손에서 기자정신 버리고 거짓과 조작으로 가득 찬 언론사에게 따끔한 한마디! 국민들이 병*이 아니다. 경고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