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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흔남...흐린 가을의 주말에...


BY 미개인 2014-09-28

토요일의 인문학 아카데미에 참석하기 위해서 천호지 곁에 세워둔 전용차를 가지러 간다.

밤 열시에...

운동이 하고 싶어서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그것도 밤길을 걸어서 가기로 했다.

낮에 잠시 비가  왔을 뿐 ,지금은 안 오고 있었지만 ,우비의 야광 테이프의 덕을 보기 위해,그리고 여전히 흐려있는 밤하늘의 변덕에도 대비하려 

우비를 주섬주섬 챙겨입고 밤여행을 떠난다.

터벅터벅 하릴 없어서 걷는 것이 아니라 씩씩하게 뒷발로 온 몸을 밀어가며 파워워킹을 하다보니 갈증이...

밤이어서 미처 물까진 준비하지 못했는데...

그런데 핸드폰에 한 포털사이트에서 선물받은 아이스크림 콘 쿠폰이 있는 게 생각이 난다.

때마침 나타나 준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 콘을 받아들고,예닐곱 살의 꼬마가 좋아하듯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쪽쪽 핥아먹는다.^*^

중년남이...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밤길은 넉넉히 캄캄했고,한동안을 그렇게 동심에 젖어본다.

낮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으나,밤이어서 혼자 낄낄대기까지 하며 마음껏 누려본다.

 

한 시간 반이 조금 더 걸려서 차에 당도했고,차를 몰고 파지나 주우며 오려는데...끼이익!

방금 지나쳐온 길가의 그 무더기가 뭐지?

조심조심 후진해서 보니 어떤 업체에서 정리를 하며 내놓은 듯한 파지가 산더미다.

먼지가 좀 많이 쌓인 것들이었지만,냉수마찰을 곧 할테니 상관하지 않고 부지런히 싣고 또 싣는다.뿌듯~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달빛에 체조하듯 갑으로 착한 아저씨의 작업장에서 수상한(?) 하역작업이 이뤄졌고,

집에 돌아와선 서둘러 냉수마찰하러 간다.

내일 갈곳이 초행인지라 아침에 좀 일찍 가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급했고...

그렇지만 길옆의 파지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또 다른 아저씨와의 약속의 장소를 두어 번 오가고...

시원하게 냉수마찰을 하고 돌아와 ,블로그에 글 하나를 올리고 잠자리에 들면서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가 가깝다.

벌러덩~

 

다행히도 아침 일찍 눈이 떠져 과일로 서둘러 식사를 하고,자동차 검사장으로 가서 검사를 마치고,

전기 면도기의 부속을 사서 천안역에 도착하니 딱 좋다.시간이...

역주변의 ,주말을 맞아 한산하기만 한 공공기관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조금 기다려서 급행전철을 타고 달린다.

급한 마음과 거의 보조를 맞춰주는 고마운 전철 덕분에 편안히 앉아서 책도 보고 차창밖의 풍경도 감상하면서...

여행기분을 제대로 내고 국개의사당을 곁에 두고 합정동에 내려섰는데,

이런!약도를 안 갖고 왔다.

연락처도 없다.

시골 역사정도겠거니 하고 돌아보지만 ,역출구가 열개가 넘는 것 같다.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보려지만,프린트를 해놓고 프린트에 방치한 약도였던지라 전혀 기억이 없다.

무작정 4번 출구일 것이라고 설정을 하고 그 주변을 골목골목 뒤지고 ,어렴풋이 기억하는 카페의 이름을 대보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보이지도 않는다.

관계자가 나의 번호를 땄었던 게 기억나면서 시간이 되면 전화가 오겠지~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헛걸음이 되는 거나 아닐까?

더군다나 PC방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통신사 대리점들도 주말이라 문을 연 곳이 없다.

높디높은 빌딩들만 숲을 이루고 있는 그곳에서 미아가 되다시피 했지만,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겠다 생각하며 상가주변을 어슬렁거리는데,

호두과자점의 젊은 주인이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눈에 띈다.

불쑥 밀고 들어가서 최소포장의 봉지를 사들고 협조를 부탁하니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뒤져서 어렵사리 연락처를 알려준다.

땡큐~!

 

전화를 걸고 더듬더듬 찾아가니 마악 강연이 시작되던 참이었다.휴우~

대화하듯,토론하듯 철학을 전공한 교수와의 강연이 두어 시간 지속됐고,살짝 지적갈증을 해소한 후 서둘러 돌아오려 전철에 올랐는데...

누가 뒤애서 툭툭 친다.

그럴 리가...여기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리가...하고 뒤돌아보니 방금 전 강연을 하시던 교수님이고,그 옆엔 다음 달에 강연을 하실 교수님이다.

서너 정거장을 가는 동안 회포(?)를 풀고 나는 국철로 갈아타야했기에 아쉬운 이별을...

그런데 시간을 보려고 꺼내든 나의 피처폰은 '안사모'의 운영자가 전화를 했었다고 알려준다.

소음 탓에 못 들었던 모양.

시간 되면 전화해서 만나자고 포털 사이트에서 제의를 했던 터라 ,암흑절벽일 가게에의 염려를 잠시 접고 전화를 걸어서 만난다.

음료수를 하나씩 들고 가까운 공원벤치로 가서 대화를 나누다가 ,재촉을 해서 저녁이라도 사고 싶은 나의 마음을 전하려 식당가를 어렵사리 찾아낸다.

근황을 주고 받는데,헐~자꾸 맥이 끊긴다.

스마트폰이 범인이다.

갑자기 내가 스마트폰보다 덜 중요한 인간으로 전락을 하면서 ,기분도 상한다.

계산을 하고 서둘러 빠져나오지 않았더라면 오래 갔을 불쾌함이었을 것 같다.

다행히도 적당한 선에서 떨쳐내고 전철로 나의 제3의 고향인 천안에 당도한다.

무사히 열두 시간 가까이 나를 기다려준 고마운 차를 몰고 서들러 돌아와 ,가게 불도 켜서 나의 성에 광명을 찾아주고 

길 가에 게시한 열 개의 태극기가 잘 보이도록 간판불까지 환하게 켜주니 비로소 안도가 된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살펴주고 나니 온 몸에 힘이 쪼옥 빠진다.털푸덕!

에라 모르겠다,양치질만 하고 손발만 대충 씻은 뒤 자리를 펴고 쓰러진다.

혼곤하다.

확실히 나이는 어쩔 수 없는가보다.

겨우 한나절의 어행이었을 뿐인데...

 

오늘 휴일은 온전히 쉬면서 보내야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