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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모럴 해저드 뒤엔 황교안이 있다?


BY 미개인 201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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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13만명이 응시한 서울시공무원 임용시험이 13일 오전 서울시내 155개 학교에서 치뤄졌다. 서울 강서구 한 학교에서는 보건소 직원들이 정문에서 비접촉제온측정기로 수험생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손소독제와 마스크를 나눠줬다. 시험이 끝난 뒤에는 교실과 학교 건물 곳곳에서 소독작업이 이뤄졌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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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대통령 선거가 있다 치자. 여기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로 출마한다. 유권자들은 그의 국가운영 능력을 이미 충분히 경험한 터이고, 이 시간에도 '넘치게' 경험하는 중이다. 과연 '박 후보'는 승리의 영광을 안을 수 있을까?   

많은 독자들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지난해 세월호에서 올해 메르스로 이어진 위기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것은 '무능' 정도가 아니라 '무존재'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를 다시 대통령으로 뽑는다고?

글쎄,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충분히 당선될 수 있다고 믿는다. 잘 하면 '압승'까지도 바라볼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다. 생각해 보라. 지난해 6월 "세월호 후폭풍"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고, 새누리당 후보가 "전멸"하리라는 예상 속에서 치러진 지방선거 결과가 어땠는지 말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꽤 '창의적'이고 '신선한' 전략을 짰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 방안을 제시하며 유권자를 설득한 게 아니라, 길에서 넙죽 절을 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주세요"라고 읍소한 것이다. 국민들이 물에 빠진 상황에서 '대통령을 지켜달라'는 기막힌 요구를 한 셈인데, 놀랍게도 이 전략은 먹혀들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도 '메르스'라는 병명을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두 주 만에 병원은 물론, 학교, 학원, 극장, 식당, 공연장, 대중교통 이용은 물론, 집 밖을 나서는 데도 용기를 내야 할 정도로 이 병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현실이 이런데, 가상의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민폐 대통령'의 기이한 지지율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를 처음 언급한 것은 첫 환자가 발생한 지 13일이 지나서다. 확인된 환자가 18명에 달하고, 이미 2명이 사망한 뒤였다. 이처럼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한 말을 들어보자.

"더이상 확산이 안 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겠다."

지난해 세월호 사건 때는 어떤 말을 했을까?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해야"였다. 자, 이제 올해 초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는 어떤 대책을 지시했는지 맞혀보라. 짐작하신 그대로다. "구제역 전국 확산 안 되게 방역에 만전을 기해야."

지당한 말씀이긴 하다. '확산되도록 만전을 기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역할은 (몇 년 치를 미리 녹음해 둔 듯) 뻔하고 알맹이 없는 말을 되뇌는 게 아니라, '확산이 안 되게 할'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각계의 전문가들을 뽑아 대통령 곁에 두고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까닭이 여기 있다.

하지만 별로 문제될 게 없었다. 메르스가 한 달째 전국으로 퍼져가는 상황에서도 대통령 지지율은 30% 중반을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자신만만한 약속과 달리, 확산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폭락했다'는 지지율이 이 정도다. 아무 것도 안 한 것으로는 성에 안 찼는지, 감염 확산에 대한 지자체의 자체적 대응 노력을 훼방하기까지 하는 정부를 1/3 이상의 국민이 '지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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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열린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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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내일 선거가 있다면 정부가 그냥 있겠는가. 오늘 길거리에 '메르스 때문에 속상한 대통령을 지켜주세요' 따위 표어가 등장할지 모른다. 여당 의원과 당국자들은 '대통령 지킴이'가 되어 대로변에서 큰절을 하고, 보수언론은 대통령이 '25시간 실시간 보고'를 받느라 얼마나 고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집중조명할 것이다.

공권력도 가만 있을 리 없다. 검찰과 경찰은 '메르스 괴담 유포자'를 체포하는 데 열을 올리고, 국정원은 '메르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의 '배후'를 캐기 시작할 것이다. 올 봄에 치러진 재보궐선거가 그랬다. 하필이면 세월호 1주기를 맞는 4월에 선거가 있던 탓에, 청와대와 여당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여기에 여권 핵심인물 다수가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수억 원 대의 뇌물을 받았다는 '성완종 추문'까지 터져나온 터였다.

전에도 그랬듯, '새누리당 전멸론'이 나왔다. 세월호 직후 선거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전멸'한 쪽은 야당후보들이었다. 국회의원 선거구 4개 가운데 3개를 새누리당이 차지했고, 나머지 하나는 무소속 후보에게 돌아갔다. '국가의 실종'에서 '이게 나라냐'는 한탄까지 낳았던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오히려 늘어난 의석으로 보상받은 것이다.

'정권'과 '국가', '박근혜 사랑'과 '애국'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물론 ('대통령을 구해주세요'의 새 버전인) '대통령이 아파요' 전략이 괴력을 발휘하기는 했다. 야당이 견제·대안세력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요인은 '신 반공주의'라 할 만한 공안정국의 도래였다.

이 공안통치는 '종북척결' 같은 험악한 구호에서 시작해, '태극기 달기 나라사랑'이나 '대통령을 지켜주세요'같은 '애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하지만 '착각'과 '공포'를 토대로 작동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정권'은 '나라'가 아니며, 태극기는 '국가의 상징'이지, '정권의 상징'이 아니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뀔 수는 있지만, 그때마다 나라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매번 국기 공모전을 열지도 않는다.

애국이 '박근혜 사랑'이나 '새누리당 사랑'일 수 없는 까닭은, 현 집권세력에게 애국이 '노무현 사랑'이나 '열린우리당 사랑'이 아니었다는 점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박근혜 팬덤'을 '애국'으로, 그의 실정을 비판하는 국민들을 '종북'으로 만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주세요'는 애처로운 부탁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거부할 권리 없는 명령이며 위협이다. '대통령을 지켜줄' 마음이 없는 이에게 어떤 호칭과 대접이 돌아갈지 뻔하지 않는가?     

공안정국의 시작을 알린 신호탄은 2014년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이었다. 재보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추가로 늘린 3개의 국회의원 의석은 바로 여기서 떨어져 나온 것이었다. 현 정부를 맹렬히 비판하던 (다시 말해 '대통령을 지켜주지 않던') 반대파도 제거하고, 거기서 굴러나온 의석도 챙기고, 이런 '꿩먹고 알먹고'가 없었다.

문제는 정당 해산 과정이 민주국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몰상식 그 자체였다는 점이다. 억지와 모순으로 채워진 헌재의 판결은 이미 세계적 조롱거리가 되었다(참고기사: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하"). 국제민주법률가협회는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통진당 강제해산 판결을 심각히 우려한다'는 성명까지 발표했지만, '종북' 딱지가 붙은 채 조리돌림 당하던 정당을 감쌀만큼 간 큰 이는 많지 않았다.

대통령의 거듭된 과오 뒤에 황교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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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변호사 시절 수임한 사면 관련 자문건에 관한 야당 의원들의 추궁을 받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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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상 초유의 사건 뒤에는 '정통 공안통'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있었다. 그의 '성과'는 이것만이 아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특별법은 '민간기구에 수사권을 줄 수 없다'며 힘을 빼고, 참담한 구조실패로 드러난 공직자들의 과실은 해경 123정장 단 한 명만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하는 것으로 박근혜 정부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황교안은 대선 여론조작사건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다. 최근에는 메르스 환자가 나오기 무섭게 '괴담 유포자 처벌'을 선언한 검찰의 든든한 배후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2013년 대선 여론조작, 2014년 세월호 참사, 그리고 2015년 메르스 재앙까지 매년 계속되어 온 정부의 과오를 은폐하고 무마하는 역할을 해 온 셈이다.

그 결과, 현 정부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잃었고, 황교안 개인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는 '영예'를 얻었다. 그가 총리로서 어떤 역할을 할지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메르스 확산 방지에 참담한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 온 박 대통령에 대해 황 후보는 "대통령께서는 제 때 해야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황 장관이 감독하는 산하기관인 검찰은 '메르스 허위사실 유포'로 박원순 시장을 수사하고 있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듯, 국무총리로 임명되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훨씬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된다. 그저 우연이라 믿고 싶지만, 이 시점에서 정부가 난데없이 벌이는 다음카카오에 대한 세무조사는, 국민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해 온 공간에 대한 '손보기'라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

황교안 총리 내정자가 살아온 삶의 궤적은 두 가지 면에서 교훈을 준다. 하나는 권력자 눈에 들어 출세하는 비결을 거의 교과서처럼 보여준다는 점이다. '강자 편에 서기'는 그의 삶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특징이다. 예컨대,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을 맡아 특별수사팀을 지휘할 때, 횡령과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받던 삼성 경영진은 불기소 처분한 채, 관련 정보를 공개한 이상호 기자와 노회찬 의원을 기소했다.

황 총리 내정자의 삶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개인의 영예가 사회적으로는 큰 불행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저 강자 편을 들어서가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기본 법칙인 헌법을 무시하고 유린해왔기 때문이다.

헌법 무시해 온 법무부 장관, 총리로 '영전'?

황교안은 '독특한' 애국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예컨대 그는 신임 검사 임관식에 참석해 애국가를 4절까지 외워 부르지 못하는 검사들을 꾸짖은 것으로 유명하다. "헌법 가치 수호의 출발은 애국가"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헌법 가치 수호의 출발"은 애국가 가사를 외기보다 헌법을 지키는 데 있다. 예컨대 헌법 38조 납세의 의무, 헌법 제20조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39조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3-4년 안 내고 묵혀둔 종합소득세를 총리 지명 후에 부랴부랴 내는가 하면,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드러나 '전화변론'과 탈세 의혹을 동시에 받고 있다. 

그는 공무원 신분으로 "교도소 6만여 명, 주님께 인도해야"한다거나, "주일에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발언도 했다. 2007년 샘물교회 신도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살해됐을 때는, "최고의 선교는 언제나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선교에는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놀라운 주장도 했다. "헌법 가치 수호"와 거리가 먼 발언일 뿐 아니라, 비합리적 신앙을 국민 목숨 위에 놓는 위험천만한 사고가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정부에 그렇게 인재가 없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의외로 간단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일 못하는 상사는 일 잘하는 부하직원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법이다. 일은 안 하면서 주목은 받고 싶어하는 모순적 욕망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되어 온 현 박근혜 정부의 '인사참사'는, 일하는 사람 대신, 지도자를 돋보이게 만들 사람을 쓰려고 했기 때문이다. 황교안 총리 임명이 위험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현 정부의 고질적 무능과 무책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통령 눈치 보지 않고 할 일을 할 사람을 써야 한다. 물론 불가능할 것이다. 박원순이나 이재명 시장처럼 메르스에 적극 대처한 지자체장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보라. 

내일 대선은 없다. 하지만 황교안 총리 내정자의 임명동의안 표결이 예정돼 있다. 총리는 유사시 대통령 임무를 대행하는 막중한 자리라는 점에서, 표결은 대통령 선거나 다름없다. 특히 대통령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누가 총리가 되는가는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더 없이 중요하다. 이제 '행복'은 둘째치고 '생존'조차 불확실한 나라에 살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