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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과 단풍 그리고 세월...함양 상림과 지리산 벽송사(2/2)


BY 초록별 2001-11-28

2. 아! 지리산 그리고 벽송사... 함양에서 인월을 거쳐 벽송사가 있는 추성동으로 향하며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산이 지리산이라는 말과 지리산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인다는 이야기를 현석이와 다솜이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열번을 넘는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늘 너무 아늑하고 포근한 그 능선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서도 1년에 한번은 꼭 지리산 종주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지리산은 저에게 큰 의미 였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지리산행은 두 번뿐이었고, 그것도 종주가 아닌 천왕봉만의 아쉬운 산행 이었습니다. 추성동도 이미 두 번 들어갔던 곳이기도 합니다. 한번은 지리산 종주를 모두 마치고 칠선계곡으로 하산하면서 추성동을 들려 나왔고, 또 한번은 칠선계곡만을 보기위해 결혼하던해 아내와 들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칠선계곡은 지리산을 두,세번 찾은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우리나라 3대 협곡으로 꼽을 만큼 아주 험한 계곡입니다. 인월에서 추성동으로 향하며 뱀사골 입구와 백무동 계곡입구를 지났습니다. 그 입구를 지날때마다 그동안 다녔던 지리산행이 떠올랐습니다. 추성동에 도착하여 벽송사로 향하는 길은 승용차 2대가 비켜가기 어려운 길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 길은 칠선계곡을 흘러나온 맑은 물들이 아직 다 끝나지 않은 험한 물길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낙엽과 단풍 그리고 세월...함양 상림과 지리산 벽송사(2/2) 벽송사는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는 입구에서 좌회전을 하여 가파른 길로 500m 정도 올라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서암과 벽송사 갈림길이 있었습니다. 서암은 왼쪽으로 300m, 벽송사는 오른쪽으로 300m 의 거리 였습니다. 우선 우리가족은 서암으로 향했습니다. 서암 입구에 커다란 화강암벽을 깍아 사천왕상을 세워 둔 모습에 감탄 하였습니다. 이런 감탄은 불상이 안치되어 있는 화강암굴에서 더욱 커졌습니다. 화강암을 굴로 뚫고 그곳에 새긴 부처님이 내려오시는 모습 조각품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이곳 서암은 벽송사의 암자로 벽송사의 전 주지스님이셨던 원응 스님께서 1989년부터 10년 넘게 주위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조성한 곳입니다. 입구인 대방광문과 아미여래타를 모신 극락전과 광명운대 등 발 길 가는곳마다 만나는 조각들 마다 불심이 깃든 흔적이 보였습니다. 서암을 둘러보고 벽송사로 향했습니다.벽송사는 해인사 말사로 창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알 수 없지만 옛 절터에 있는 삼층석탑이 고려 초기 양식이어서, 고려초기나 신라말을 창건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조선 중종 15년인 1520년에 벽송스님이 중창하여 벽송사라 하였으며, 6.25때 소실된 뒤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벽송사로 들어가는 길에서 좀 특별한 것은 목장승 두분이 서 있다는 것인데, 함양에서는 이곳 말고도 깊은 산중에서 나무나 돌로 만든 장승을 만날 수 있는 곳들이 여러곳 있는 등 함양 지방은 예로부터 장승이 많은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벽송사 주변이 변강쇠 전설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목장승을 지나자 불붙은 듯 환하게 서있는 단풍이 우리를 반겼습니다. 가파른 계곡을 쉽게 올라가도록 나선형으로 만들어진 도로를 따라 걸을때마다 단풍에 물든 지리산은 다양한 빛깔로 바뀌며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모습들도 벽송사가 눈에 들어오며 펼쳐진 단풍의 물결에서는 다 비할바 없는 사소함 이었습니다. 가뿐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그곳에서 잠시 넋을 놓고 서서 단풍 숲만을 바라보다가 단풍색에 이끌리듯 그 환한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단풍의 아름다움에 취하려는 순간 우리는 설명 표지판 하나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벽송사의 유래와 지리산 빨치산루트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빨치산루트는 한국전쟁이 끝날무렵 북으로 도주하지 못한 공산주의자들이 지리산으로 숨어 들어 활동한 길이었습니다. 더욱이 벽송사는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쓰인곳이었다는 기록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숲에 설운 역사의 흔적들이 묻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단풍숲에서 잠시 쉬고 난 뒤 벽송사로 들어갔습니다. 먼저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목장승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입구 양편에 서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보호각속에 함께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장승은 남자장승과 여자장승으로 여자 장승의 머리부분은 불에 타 손상되어 있었고 남자 장승은 짱구 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현석이도 짱구 머리라며 재미있어 했습니다. 벽송사는 아주 작은 절이었고, 조용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해인사 말사인 벽송사는 조선 중종 15년(1520년) 벽송 지엄대사가 창건하여 벽송암이라고 했고, 그 후 숙종 30년(1704년)실화로 불에 타버린 것을 지안대사가 신도들의 모금을 통해 완전히 중수 했으나 6·25로 다시 불타버렸습니다. 지금의 사찰은 지난 63년 원응스님이 다시 복원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세월을 보내며 허물어지고 다시 세우기를 거듭하고 있는 벽송사는 사람이 많이 찾는곳이 아니었습니다. 단풍이 절정이라는 일요일이었지만 적막함을 느낄만한 그런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벽송사를 애워싸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에서 적막함이란 표현은 맞지 않을 듯 하였습니다. 평온함이었고, 자연스러움 이었습니다. 벽송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해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깊은 산중이어서 밤이 일찍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벽송사 앞쪽으로 채소밭이 가꿔져 있었고, 그 밭 뒤쪽으로 나뭇잎을 모두 떨군 감나무가 빨간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 감을 따고 있는 모습도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훔뻑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에필로그> 세월의 흐름... 산천의구를 옛시인의 허사라 했던 노래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함양 상림에서 1100년동안 계속 변해온 모습을 만났습니다. 벽송사에서는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진 기록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느꼈습니다. 그 아름다운 벽송사에서 같은 동족이 총칼을 앞세워 전쟁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렇듯 산천은 변하고 있었습니다. 하긴 이번 여행에서 느낀것처럼 산천은 한나절의 햇빛으로도 변하고 있었습니다. 살랑부는 바람 한조각에도 가을나무는 잎을 떨구며 변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너무 사소한 변함이지만 그 사소한 변함이 어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체험학습 자료로 현석이와 다솜이는 예쁜 색으로 변한 나뭇잎들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찍은 그 예쁜 나뭇잎도 한나절이 채 지나기 전에 줄기에서 떨어져 바람에 날리며 세월속으로 사라져갈지 모릅니다. 그렇게 자연이 변하고 세월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다 지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