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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색종이를 먹는 아이


BY kyou723 2007-06-15

큰 딸 주은이가 Vor Schule(예비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초등학교 가기 전 독일어코스다. 주은이 또래의 아이들 5-6명이 둘러 앉아 선생님과 놀이도 하며 자연스럽게 언어에 적응하는 기회인 것 같다. 혹시나 하고 많이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첫날 아이의 적응모습을 보기 위해 청강(?)을 했다. 다소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잘타는 주은이는 의외로 선생님의 말을 잘 이해하는 것 같았고, 아이들도 주은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역시 내 딸이다’ 싶어 내심 안도를 했다.


 ▲ 둘째딸이 큰 딸 학교에 놀러갔다. 큰 딸 친구와 찰칵


▲ 아이들이 어느새 달라들어서 카메라 앞에 선다. 우리 둘째딸이 귀여운지 주변으로 모여드는 아이들  

아침 8시부터 수업이 진행되어 11시 30분 정도에 끝나는 이 학교는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는 다소 고역이다. 그래도 도시락을 챙겨줘야 하니 바지런을 떨 수밖에 없다.

도시락이라 해봐야 한국처럼 밥과 김치, 반찬을 싸주는 것이 아니라 바나나와 과자, 빵 종류를 싸오는 것 같다.

우리 주은이의 도시락은 무엇으로 할까.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결국 고민하다 소시지를 꼬챙이에 달아 구워서 몇 개 넣어줬다. 다음날은 코리아의 향기를 뿜어주기 위해 김가루를 참기름에 볶아 넣어주었다. 내가 먹어봐도 달작지근하고 고소하게 감칠맛나게 만들었다.

이날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폭발이었다 한다. 아이들은 “Was ist das?(이거 뭐야?)"를 외치며 다가왔고, 선생님도 관심이 많았나 보다. 주은이 말로는 선생님이 한 번 드시고는 ‘음... lecker(맛있어)’라고 했다나. 이름을 물어보길래 ‘김’이라고 대답해주었다고 한다.

이 어린 녀석들은 검은 색종이를 먹는 주은이가 마냥 신기했는지 달려들었고, 그날 주은이의 인기는 상승세였다고...아마도 검은 종이를 아그작 씹어먹는 주은이가 멋진 마녀의 딸처럼 보였는지도 모른다. 다음날은 좀더 업그레이드해서 김밥을 싸주었다. 이왕 한국을 알리느니 확실하게 알리자는 의도다. 물론 김밥이 일본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김치도 넣고 한국인 아지매가 만든 김밥이라면 순순 토종 우리 것 아니겠어?


정숙하게 앉아있는 큰 딸 모습이 보인다. 너무너무 재미있다고 연신 학교자랑하는 큰 딸 녀석...검은 색종이 '김'을 나눠먹고는 더욱 의기양양이다.

이곳 베를린은 스시 음식점이 꽤 많이 알려져 있다. 왠만한 독일인도 깔끔하고 심플한 스시를 즐겨먹는 듯하다. 잘한다는 스시집은 문전성시를 이루니 일본의 음식문화 홍보는 어느 정도 성공을 한 듯하다. 한 번은 스시집에 갔는데, 절인 생강에 달랑 달락지근한 밥 한술 나오는 일본음식점이 인기가도를 달리는 이유가 도통 이해가 안갔었다. 그래도 베를린 음식문화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것을 보면 나름 매력이 있긴 하나보다.

그런데 일본이 사촌은 아니지만, 가까이 사는 일본이 잘되는 모습이 배가 아픈 건 사실이다. 잘되려면 우리도 잘되어야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음식문화는 그다지 독일인들에게 어필되지 못한 것 같다.

한 번은 독일인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했는데, 만두를 만들어주니 ‘중국음식’이라고 먹어보았다고 한다. 만두는 한국에서도 잘 만드는데, 왠지 서운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잡채랑 불고기, 식혜 등을 내놓았는데 금시초문인 것처럼 생경한 얼굴이다.

특히 베를린의 한국음식점은 그다지 정평이 호평이진 않나 보다. 가격도 비싸고, 친절하지도 않고 깔끔하지도 않다는 분위기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겠지만 내 주변 한인들의 의견을 시장조사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풍문 탓인지 한국 음식점에 거의 가지 않고, 우리나라 음식은 집에서 해결하고 있다. 특히 7살 4살 어린 아이들이 김치킬러들이라 ‘김치 없으면 못 살아. 정말 못 살아.’를 외쳐대기에 오히려 서울 살 때보다 김치 담그는 횟수가 잦고 밖으로 나가느니 집에서 재료 사서 먹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주은이에게 내일 김치랑 밥을 싸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엄마, 그럼 저 쫓겨나면 어떡해요. 냄새 나서...”

“야... 너는 자존심도 없어? 개네들은 뭐 노린내 안나냐? 케밥냄새만 지독하드만...” 언제 귀동냥을 했는지 벌써부터 딸아이는 김치냄새가 독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집에 들락거리는 유학생들의 주고받는 대화를 놓치지 않았나 보다. 파김치 한 번 먹고 트림 한 번 하면 독일인들이 개거품 문다는 넉살들을 떨더니만...쯧쯧...

그래도 난 억척 엄마다. 주은이네 친구들을 초대해서라도 김치를 먹게 해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리고 김치를 싸줄 생각을 한다.  ‘김치가 얼마나 과학적인 음식인데, 한 번 맛을 알면 한국국적 취득하겠다고 난리일 걸!!!

조류독감이 우리나라에서 안 걸린 것도 다 김치 덕분 아니겠어? 주은아! 집에서처럼 밥에다 김치를 게걸스럽게 한 번 먹어봐!!!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주란 말이야... 김치 먹고 힘내!!! 으쌰! 으쌰!‘




박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