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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나들이-연예인이 온다네


BY dongsil112 2007-07-05

 
저녁 나들이-연예인이 온다네
 
시원한 밤하늘을 수놓는 별꽃무리들.
빌로드보다 더 까만 천위에 총천연색의 화사한 불놀이.
이 밤 반세기 전엔 전흔의 상처가 밤하늘을 수놓았음직한 그 시절이 이제 까마득하기만 하다.
경찰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초저녁부터 모여들기 시작하는 인파를  감당하기 힘든 듯 체육공원입구에 기우뚱하니 멈춰 서 있다.
지역 경찰관들의 교통정리가 한창인 저녁 나절.
오늘은 육이오가 발발한지 어언 쉰일곱 해가 되는 날 이른바  자유수호전쟁 기념일이다.
골짝나라의 조그만 읍 방죽 가에 삼년 전 체육시설을 갖춘 아름다운 공원이 생겼다.
 바야흐로 웰빙시대를 맞아  아침 저녁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저녁 식사후 산책코스로 또는 운동 삼아 경보나  테니스 축구 등 각종 스포츠를 즐기기도 하는 최적의 장소인 게다.
해질녘이면 동악산 줄기인 형제봉이 절로 뻐얼겋게 달아올라 붉고 따스한 기운을 이웃에 나눠주며 사그러질 즈음 읍내 사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모여들기 시작한다.
 서울에서 귀한 손님들이 온다고 한 예고장이 일주일 전부터 동네 곳곳마다 날아들기 시작했다.
바로 오늘 저녁이 그날이다.
아이어른 할것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크게 튼 확성기의 소리를 무색케 할정도다.
공원으로 향한 경쾌한 발걸음들이 음악의 리듬에 맞춰 더욱 흥을 돋군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언가 즐거운 기대를 한아름 안고 간다.
손님이래야 별건가?
 연예인 흔한 세상에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한낱 게그맨이 아닌가.
어린 학생들 공부하라 보채지만 말고 부모들 먼저 연예인 들먹이는 텔레비젼 끄라고 다그치시는 어르신들의 말씀 귓가에 쟁쟁하다.
 

 
군단위 기독교 연합회에서 주최한 유월의 문화 축제치곤 어쩌면 어울리지 않은 듯도 하다.
바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 이맘때만 되면 그날의 아픔에 눈시울을 적시실 게다. 
예나 지금이나 유월의 날씨는 이처럼 낮으론 덥고 저녁은 선선했을 터.
마침 공원을 향하던 길에 한 교회 목사 사모님을 만났다.
"혹시 이 행사가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오늘 바로 육이온데......."
"아니, 그냥 군민을 위한 문화행사일뿐예요."
 

 
프랑카드에는 "곡성군민을 위한 신신애.정종철 초청공연" 이라고만 쓰여져 있다.
두 연예인이 펼치는 무대인가보다 짐작할뿐 나도 이른 저녁을 해먹고 여느 때와는 달리 아이들 손잡고 체육공원으로 발길을 재촉했던 게다.
왠걸 벌써 공원을 꽉 메운 인파로 무대가 들썩거리고 스피커소리도 요란한 게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먼저 가수겸 개그맨인 신신애씨가 열창을 하고 나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사연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놓기 시작하더니 여기저기 "할렐루야"라고 외치는 소리가 이어진다.
신신애씨는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유행가로 잘 알려져 있다.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은 잘난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대로 산다."
 
나이에 비해 젊고 발랄한 모습이 아줌마로선 누구라도 부러워할 것이다.
당당하고 활기넘치는 목소리는 아마도 이 노래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는가 보다.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개그맨 정종철씨는 니트모자를 쓰고 나왔다.
옥동자 마빡이로 익히 알려져 있는 그는 요즘 어린이 영화 "챔피언 마빡이"를 촬영한다고 했다.
때문에 삭발을 했다며 모자를 벗자 여지저기 고함소리가 이어진다.
정종철(30세)씨는 KBS2TV개그콘서트에 출연중이다. 
주특기가  성대모사로 널리 알려져있다.
KBS 15기 신인 개그맨으로 데뷰한 정씨는 이날  한국방송공사에 개그맨 공채시험을 치르던 자신의 경험을 걸죽한 입담으로 풀어냈다.
개그맨이라고 유치하게 사람을 웃길 줄만 알았는 데.......
솔직하고 담백한 언어들이 재치넘치는 개그로 풀어질땐 그 어떠한  미사어구보다도 큰 감동으로 전해진다.
타고난 외모에 족할 줄 알고 자기만의 개성을 살려 노력하고 도전하는 모습은 가히 청소년들의 우상이 될만하다 하겠다.
화려한 무대의 조명이 부러워 무조건 따라하는 우리 어린 청소년들에게 주어진 여건에 만족할 줄 알고 '잘나지 않은 평범한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꿈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강연이었다.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학부모 입장에서 늘 달가워하지 않았는 데 이번 기회로 '연예인도 아무나 되는 건 아니구나'하고 느꼈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걸 신신애씨와 정종철씨의 강연을 듣고 나서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보통사람들에겐 한낱 우스겟거리에 불과했던 것들이 어쩌면 그들에겐 성공의 밑바탕을 이루는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인기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이미 난 그들의 팬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세상은 할 일이 많다.
날 필요로 하고 내가 노력 한다면 뭐든지 될 수 있는 게 세상 일이다.
우리 자녀들이 노력없이 이루어지는 건 없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
연예인들의 겉으로 드러난 화사함만을 쫓지 말고 감추어진 이면을 볼 수 있다면 우리 청소년들은 누구나가 바른 길을 걸을 수 있을 게다.
오늘 하루도 벌써 사그러진다.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무늬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사인을 못받았다고 투덜거리는 아이들 한테 '사인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 다만  그 사람 그만한 인기를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았지 않느냐. 그것으로 오늘 너희는 행복한 저녁을 누린 셈이다.'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하니 그건 곧 나 자신을 향한 충고인 셈이다.


고동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