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통해 보이는 잿빛하늘이 내 얼굴같다. 내 마음 같다. 벨린으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옴>이라는 표현은 이곳이 정착지라는 말인가. ** 벨린의 우리집 창문으로 바라본 잿빛하늘... 나무도 우울하네~~
한국인 내 나라로 <돌아오다>를 꿈꾸는 독일에서의 또다른 시작.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의 강도가 깊어가고, 그리움으로 패인 생채기가 더 아련히 쓰려옴을 가끔은 감당하기가 버겁다.
공항에서 애써 강한 모습으로 웃음지었던 내 모습에 ‘당신 많이 강해졌어.’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하는 남편은 이 속내를 알까. 그 강함의 언저리에는 더 뼈깊은 슬픔이 존재한다는 것을.
결국 그 강함은 다른 통로를 통해 오늘 하루 눈가가 시릴 정도로 울어제끼며 깊어진 그리움을 싸안고 있는 중인데... 남편은 일로, 아이들은 제각각 학교와 유치원의 일상에 묻히고 나 혼자만 덩그마니 컴과 친구중이다. 가족들 모두 빠른 ‘제자리 찾기’에 열중이다. 나또한 주부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묵순이 둘째딸이 좋아하는 김치 몇 포기 담기 위해 어제 밤부터 절여놓았던 배추도 담궈달라 소리없는 아우성을 외쳐대고, 한국에서 질러온 선물보따리 박스들이 거실 한구석에서 나뒹구는데...난 아직도 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워낙에 빠른 적응에 서투르기에 이번 주까지는, 아니 한국의 기억이 묻어나는 1월까지는 잠잠히 날 내버려두자고 어루만지고 있다. ** 빛바랜 유년시절의 가족사진.(아래 맨 왼쪽이 내 얼굴).. 그러나 그리움은 바래지 않고 그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다.
한국에서의 한 달 여정. 이국생활에서 가졌던 향수를 달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지만 되도록 알차게 보내고자 발버둥쳤던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두서없이 보낸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함이 내 인생의 존재이유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내 모태의 가족으로부터 아직 정신적 독립이 덜된 미숙아이기 때문일까.
이번에 한국으로 올 때 독일에 사는 한인 아주머니가 그랬다. “다시 독일 올 때 다른 물병은 들고와도 향수병은 들고 오지 마세요.”라고.... 웃으며 흘려들었는데, 아무래도 향수병에 그리움을 다시 한가득 채워온 것은 아닌지.
친정부모님, 시부모님, 언니네 식구, 조카들....
나이가 들수록 가족이란 실체는 무조건적인 존재임을 실감한다. 난 그들에게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듬뿍 안고 왔다. 또다시 앞으로 이곳에서 살며 감당해야만 할 그리움을 가슴 가득 안고 왔다. ** 엄마가 만들어주신 고추장~~그리움을 고추장에 듬뿍 가져온 것 같다~
인생은 흘러간다. 그 흘러가는 강물 속에서 소중한 것이 마냥 떠밀려가는 것은 아닌지.
유난히도 철없고 울보였던 막내딸, 공항에서 손수건을 적시던 친정부모님. 무언가 잡으려다가 놓친 것처럼 가슴이 쓰리다. 아프다. 이 생채기가 얼마나 오래갈지 난 안다.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있을 거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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