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같이 영화를 본 후 이렇게 후회를 해보기는 처음입니다. 아이에게 ‘어른’이라는 것이 많이 부끄러웠고, 영화평점에 의지해 같이 보자 우겼던 자신이 너무 후회스러웠습니다. 영화 ‘써니’를 보는 내내 마음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어요. 옆에 앉은 중학교 3학년 딸아이가 까르르 웃을 때 마다 그 웃음은 제 가슴에 날카로운 통증을 남기더군요.
자~ 이제 안타깝고 마음 아픈 종합 세트를 열어 보겠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너무 많은 부분을 이야기 할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최대한 영화의 적은 부분으로 제 생각을 제대로 전할 수 있을지가 걱정입니다.
물질 만능주의
당신하고 장모님하고 백 하나씩 사. 그리고 등장한 샤넬백, 그 백을 들고 병원에 입원한 장모에게 전화 한 번 하지 않은 사위 최고를 외치는 장모와 부러운듯 환호를 지르는 병원 사람들.
백에 달린 묵직해 보이는 자물쇠가 클로즈업되고 퍽....하는 소리. 뒤 이어 나오는 대사 ‘명품백이 좋긴 좋구나 한 방에 머리가 박살나다니....’
금옥이가 춘화에게 보내는 몇 만원의 돈을 수표로 바꾸는 장면
남편의 불륜을 알았지만 빌딩 하나 받고 그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눈감아주기로 하는 아내 등등
그리고 돈으로 모든 이의 행복을 통째로 책임져버린 해피엔딩까지, 영화 전편을 흐르고 있는 물질 만능주의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지금의 주인공인 나미는 남편으로 인해, 과거의주인공이었던 춘화는 자신의 사업 성공으로 부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영화였습니다. 흥신소를 통해 친구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아낌없이 쓸 수 있는 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미, 금옥, 복희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이유이도 돈이었고 진희가 마지막까지 2인자의 자리에 만족해야 하는 이유도 ‘너는 돈이 많으니까’였습니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
영화에 나오는 그 어떤 사람도 가족과 함께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저에게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 아픈 부분이었습니다. 가정의 형태적인 해체만이 문제는 아닐 겁니다. 정신적인 유대감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
아내를 볼 때마다 지갑을 여는 남편과 옆구리 찔려 아버지에게 하트를 억지로 그리는 딸, 시어머니 앞에서 밥상을 제대로 엎고서야 친구의 문상을 올수 있었던 며느리 등등 소통의 부재 속에서 다들 자신이 상처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끝내 소통의 의지마저 잃어버린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미화되고 정당화된 폭력
폭력, 조폭은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철없는 10대들의 치기어린 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여자들도 폭력 영화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던 걸까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라는 ‘추억’속에서는 모든 것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고 그 어떤 것도 용인된다고 생각했을까요?
과거의 일이라고 해서 모두 ‘추억’은, 그것도‘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40대 여자들의 과거 속의 폭력을 너무도 정당화시키고 미화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5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 써니의 부활로 그들의 폭력성도 부활하고 현재에서도 그 폭력성은 미화되고 정당화되고 있더군요.
의식보다 무서운 것이 무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가 미치는 영향이, 그저 영화는 영화일 뿐, 보고 재미있으면 그만, 이라는 말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영화 속의 써니를 따라해 보고 싶을 것입니다. 영화 속의 그들이 스스로 이야기 하듯 ‘불량서클’을 만들고 싶고, 손에서 담배를 떼지 않고 폼(?)나게 자신의 상처를 멋지게 표현해보고 싶을 것입니다. 시골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던 착하고 예쁜 나미도 칠공주의 일원, 불량써쿨 써니의 한 사람으로서 저렇게 행복한데.... 학원에 공부에 시험에 지쳐 시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그들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해맑은 얼굴이 극명하게 대비되어보이지 않을까요? 나는 이렇게 착하게 말잘듣고 열심히 공부하지만 행복하지 못한데 저들은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도 행복하다니.....그리고 저렇게 시집 잘가서 누릴 거 다 누리고 사는데, 친구를 때려 고등학교를 잘린 춘화도 사업에 성공하여 친구들 인생 전부를 구원해줄 정도로 성공하는데 나도 저들처럼.....을 꿈꾸지 않을까요?
그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 미화되고 정당화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 써니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철저히 폭력을 미화하고 정당화한 것일까 끝내 이해를 못하고 있는 중입니다. 본드를 하는 친구와 절교하는, 본드를 한 채 자신 앞에 나타난 친구에게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하는 춘화에게서 그 어떤 가치의 기준을 찾을 수 있을 지, 어른인 저에게도 혼란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앞의 폭력의 미화와 정당화와 이어지는 면이 있지만 영화 써니에는 “써니”만 있고 우리는 없었습니다.
딸 예민이를 위해 써니 4인방의 통쾌한(?) 복수.... 내 아이가 돈을 빼앗기고 매를 맞는 장면을 보는 엄마는 누구나 분노합니다. 살이 떨리는 분노가 온 몸을 휘감겠지요.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그 아이들을 똑같이 폭력으로 응징해준다고 무엇이 변할까요?
후련함?
통쾌함?
과연 그럴까요?
나미는 엄마입니다. 엄마에게는 내 자식만 보이는 게 아니라 남의 자식도 보여야 합니다. 아니, 그냥 보입니다. 자식을 키우는 엄마에게는....내 아이를 위해 남의 아이를 때리고 후련하고 통쾌한 엄마가 세상에 정말 몇이나 될까요? 자물쇠가 달린 명품가방에 머리통이 깨지는 아이를 보면서 마냥 후련하고 통쾌할 수는 진정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위해 복수를 해 준 엄마가 딸 예민이는 고마울까요?
나미가 진짜 해주어야 할 일은 딸 예민의 내적 상처를 찾고 그것을 치유해주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얼굴의 멍만이 상처는 아닙니다. 예민이의 내면에는 얼굴의 멍 자국보다 더 큰 상처가 관객에게는 보이는데 엄마 나미에게는 안 보이는 지, 아니면 외면하는 지 끝내 그렇게 묻혀져 버립니다. 엄마와 엄마 친구들로 인해 폭력과 피로 물 든 표면적인 복수만이 비참하게 아이의 가슴에 남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영화 '써니'에게는 곳곳에 지독하리만치의 써니를 하나의 개체로 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무섭도록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의 신나는 댄스파티는 그들의 이기주의가 정점에 달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누가 뭐라 하면 써니의 장인 내가 책임진다는 나미의 대사. 섬뜩한 권력의 구조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자신들의 삶을 위해 철저히 타인을 외면하고 타인의 삶을 존중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동년배인 저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외모지상 주의
장미의 쌍꺼풀에 대한 열망과 그녀의 외모를 통한 몸 개그에 가까운 웃음을 이끌어내고 있는 수많은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외모 지상주의. 예쁜 나미를 보며 ‘너는 얼굴이 주인공이었어’라고 말하는 춘화의 한 마디는 그 사실에 밑줄을 좌악~ 그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믿음이 깨어진, 서로를 의심하는 사회
흥신소를 통해 친구를 찾는 나미와 장미. 어떤 경로를 통해 한 사람의 삶이 타인에게 엿보여지고 탐색되고 까발려지는 지의 과정에는 관심이 없고 ‘찾는다’는 결과만 중요한 그들의 모습에서 소설 ‘한니발’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를 느꼈습니다.
‘나는 상대를 모르는데, 상대는 나를 알고 나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의 공포.
희망이 잘려버린 미래
춘화의 유산이 없었다면 이들은 행복할까요?
나미에게 주어진 써니의 우두머리 자리. 왜 나미였을까요?
친구의 유산으로 이달의 보험왕이 된 장미. 그 다음 달은 어떻게 할까요? 또 다른 돈 많은 친구의 유산을 기다려야 할까요?
딸과 함께 살 아파트와 생활비가 생겼지만 복희의 딸은 어떤 인생을 엄마에게서 배울까요? 돈 많은 좋은 친구로 인해 잘 살게 되는 꿈?
사장의 친구라는 이유로 출판사에 취업을 하게 되고 사장자리까지 보장받는 낙하산 인사까지.... 그 출판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꿈이 그렇게 간단히 짓밟혀도 되는 걸까요?
영화관을 나온 40대 후반의 현실 속의 우리는?
유산을 남겨 주는 부자 친구 춘화가 없는 우리... 영화는 작은 우리의 희망마저도 싹둑 잘라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춘화라는 친구가 애초부터 없었던 우리는 무엇을 통해 꿈을 꿀까요?
무엇으로 행복해하며 영화 속의 친구들처럼 온몸으로 행복의 전율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까요? 탈진할 듯 한 이 상실감은 저만의 느낌일까요?
영화관을 나온 지 24시간, 만 하루가 지났지만 저는 여전히 체한 듯합니다.
이 영화를 본 저와 같은 40대 후반의 엄마이자 집사람이자 여자이면서 사람인 누군가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까..... 궁금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역사가 있는, 내 삶의 주인공인 나를 찾게 되어 행복하기만 한지....그래서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인식하게 된 우리는 어떤 미래를 꿈꾸게 되었는 지....아니면 영화 한 편으로 무슨 그런 큰 욕심을? 하면서 그저 깔깔 웃고 스트레스 풀고 잊어버리면 그만인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