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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BY 김인기(어린별곡) 2000-09-14

◑ 김인기(어린별곡)

◑ ( itsneo@joins.com)

◑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제 오랜 시간을 기다려 일반 서민의 한 사람으로 마음속에 갖고 있던 생각을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글을 씁니다.



1.간단한 제 소개.

저의 전화번호는 011-9888-6060번 이며 이름및 이메일 번호 전체가 실명임을 먼저 밝힙니다.

저는 전남보성태생으로 3살이후로는 서울에서 성장해왔으며, 서울에서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쳤습니다.

고향을 누가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참 어렵지만, 저는 솔직히 기억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수십년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보성이라고 합니다.

제가 학교를 졸업하던해 어떤 중소기업에 원서를 냈는데, 희망부서가 인사?였습니다.

밤 10시경 전화가 울리길래 받아 보았더니 상대방의 말이 "보성이 고향이예요?

앞으로 잘해봅시다" 하더군요.

형식적인 필기시험 후에 정식 통보를 받기전에 인사차장이 제게 전화 해서 한다는 말이 그런 식이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제게 1.5세대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작금 정치 현실이 지역에 따라 시비를 판단함에 앞서 감정이 좌우하는 것이 보통인 슬픈 현실때문 입니다.

앞으로 쓸 글을 읽으심에도 이러한 제 소개를 바탕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비통한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사회를 보며....



2.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우리나라는 헌법에 비밀선거를 선거의 한 원칙으로 천명하고 있지만, 제 스스로 포기한다면, 20세가 되는해에 야당은 신민당과 민한당이 있었고, 신한당은 김대중씨와 김영삼씨의 급조된 정당이었으며, 민한당은 군부정권과 밀착된 제1야당이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신민당에 투표했습니다.

20세의 나이에 무얼 알겠습니까만은 오랜 민주화투쟁을 하던 분들이 만든 당이라는 것에 신뢰를 했습니다.

이후, 영국유학겸 피신, 그후 만든 평민당, 역시 평민당에 투표했습니다.

97년 12월에 김대중선생이 당선되셨을때, 저와는 크게 상관없지만, 밤새워 TV를 보며 마음 졸였습니다.

김대중선생이 당선이 확정된 아침에 인터뷰하시면서, 감격에 찬 얼굴로 "자유가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씀하실 때, 제가 밤새며 가슴 졸였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3.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작은 평가.

가)설화에 시달리는 정권

(1)언젠가는 룸살롱에서 진모 공안부장이 폭탄주 한두잔 마시고, 술취한 김에 한마디 한 것으로 정국이 경색되어 몇달을 끌며, 민생은 뒷전이 되었습니다.

(2)이 번엔 미국물을 좀 먹었다는 박모장관이 은행 대출과정에 "잘봐달라"고 압력을 가했다고 하는군요.

(3)보다 앞서서 윤모씨가 항의하는 의원에게 (아마도 억울해서 홧김에)한마디 한 것이 하필 의총에서 발언을 하는 바람에 시비를 떠나 혐오증만 더하게 했지요.

나)정책에 대한 생각

(1)국민연금보험을 실시하셨죠? 계획은 전 정권에서 했을 것입니다만, 그 때 국민의 저항이 얼마나 컸습니까?

왜? 국민을 위한다는데, 국민이 반대합니까?

(2)물가안정 이 말은 정녕 군부정권이 정통성의 흠결을 메우기 위한 한 방책에 지나지 않았습니까?

지하철요금, 버스요금, 게솔린 가격등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요금은 가능하면, 동결하고 불가피 할때 국민의 눈치를 보며 인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자동차를 모는 국민이 천만명이 넘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국민은 더합니다.

헌데, 게솔린 값은 1300원을 넘어 사상최대고, 요즈음 지하철 요금을 올려도 100원 단위로 올립니다.

500원에서 100원은 20%입니다.

김대중대통령 취임전에는 게솔린값이 리터당 900원 이었습니다.

IMF하에서도 1300을 넘은 적은 없습니다.

무엇이 서민을 위한 정책이고, 무엇이 IMF를 졸업했다는 것 입니까?

다)대외정책에 관한 생각

(1)작금의 대북관계는 일방적인 양보에 의한 관계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너죽기 아니면, 나죽기 식으로 덤비는 사람에게 똑 같이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옛말에 `미운 놈 떡 하나 더준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 류의 사람에게는 부드럽게 대해서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저도 압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한민국` 건국 후에 `국민 개인`의 희생에 대해서 정부가 얼마나 신경을 썼습니까?

미국에서는 포로 한명의 생환을 엄청난 기사처럼 다루고, 정부에서도 한 사람의 국민을 위해 얼마나 노력합니까?

우리는 그 땅에 태어나지 못해서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도 그 것이 강도를 만나서 죽는 것만 못합니까?

오히러 강도를 만나서 죽으면, 경찰에서 범인을 잡기위해 전력을 다하지요?

이러고서도 위정자들이 이완용을 욕할 수 있습니까?

(2)대미관계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미국에서는 툭하면 수출 수입 문제로 한마디 하더군요.

얼마전에는 산자부 장관차량을 공개입찰로 구입했는데, 그것이 링컨 콘티넨탈이라고 하더군요.

입찰가격이 1원이었다고요?

이미지 제고를 위한 개별 기업체의 노력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오늘(9월1일 시점)의 보도를 보니, 미 정부에서 한국민의 외제차에 대한 혐오감을 정부에서 해소해 달라고 했더군요.

우리나라가 미국의 51번째 주라도 됩니까?

우리도 엄연한 주권이 있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그런 민간을 향한정책을 해달라고 한다면, 그들의 그런 말이 유럽, 중동에서는 어떻게 받아 들여지겠습니까?

모름지기, 감히 그런 말도 못 할 것입니다.

그 들이 들어와서 파는 물건에 대한 마켓팅은 그들이 해야지, 왜 어떻게 주권이 엄연한 국가에게 요청합니까?

덧 붙여서, 향후 20년 후에는 중국이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나라라고 미국내의 모 연구소에서 보고서를 내 놓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런 열강속에서 끝까지 우리의 주권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이 있는 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4.작금의 정치현실에 대한 생각

1)한나라당에 대하여,

집권경험이 있는 당이 야당이 된다는 것은 직접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떠나 역사의 발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집권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은 보다 더 발전적인 정책을 내놓을 수 있고, 보다 더 건전한 비판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98년 이후 행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그래도, 옛날 야당은 정부에서 어떤 법률을 국회에 상정하면, 거기에 상응하는 법률을 상정하고, 날치기가 있었지만 상호 보완하는 법률이 탄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한나라당은 무조건적인 발목잡기, 흠집잡기로 대부분의 시간을 소일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만일 제 생각이 틀리다면, 한나라당에서 제출한 법안과 김대중정부와 여당에서 내 놓은 법률안의 수치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거 야당이 50년 넘게 집권하지 못했던 이유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집권후의 불안때문이 아닌 가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은 바로 그 점에서 집권의 계기가 주어질 것이라고 감히 미루어 생각합니다.

2)민주당에 대하여,

사상최초의 집권당 운영진(요샛말로)을 경선으로, 그 것도 7인은 경선, 5인은 지명직, 즉 경선인원을 지명직보다 늘린 것은 민주당내에서는 커다란 개혁입니다.

그런데, 그 것이 국민의 축제로, 적어도 국민이 호응하는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모자라는 점이 많습니다.

형사사건으로 유죄를 선고 받은 사람이 버젓히 정치권에 컴백한다는 것, 이 것은 국민의 법감정과는 너무나 괴리가 있습니다.

과거에 그랬으니까, 현재도 별 문제 없겠지, 만일 이렇게 생각하는 위정자가 있다면, 그 분이 비록 대통령일지라도 거대한 역사의 흐름속에서 누누히 비판을 받을 것 입니다.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속에서 일탈한 사람은 역시 일탈자로 남아야 할 것 입니다.

그것이 법을 지키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국민에 대한 예의이고, 불멸의 정의입니다.

3)김영삼씨의 민산재건에 대해,

우리 국민은 참으로 슬픕니다.

서글픈 생각을 넘어서 서러운 생각에 소주라도 벌컥 벌컥 마셔야 될 지경입니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여러 지도자들을 만나 봅니다.

그 들의 얼굴은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현임을 떠났을 때, 국가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영달은 돌보지 않고 노력하거나, 후임자가 잘 하기를 바라면서 침묵했습니다.

대통령이면, 대한민국 최고의 지위이며, 가장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 입니다.

그런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이루지 못했던 일이 있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다시 정치를 하겠다?

그렇다면, 김영삼선생께서 대통령이 되서도 이루지 못했던 일을 이제 다시 이루어 보겠다는 허망한 욕심이 아닌지요?

4)자민련에 대하여

김종필 선생께서는 진정한 보수를 누차 말씀하셨지요?

보수는 곧 현 질서를 고수한다는 것과 다를 게 없죠?

향간에 김종필 선생께 이런 말이 있더군요.

혁명과 보수는 전혀 맞지 않다고요.

가장 중요했던 시기, 80년 서울의 봄 보다 더 중요했던 시점에 김종필 선생께서는 박정희 소장을 도와 고대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민주인사에게 칼을 들이 미셨죠?

4.19는 우리 근대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민중 봉기였습니다.

그 결과로 국민의 엄청난 지지를 받고 정권을 잡은 (말 그대로 국민의 정권) 장면 정부를 총칼로 무력화 시키셨죠?

그 건 보수가 아니고, 혁명입니다.

아니, 정확한 의미의 혁명도 아니고, 쿠테타입니다.

과거가 이러할 진대, 시대가 변했다고 `진정한 보수`라니요?

흔히, 정치권에서 쓰는 말이 `日新又日新` 이더군요.

아마 모름지기 김종필 선생께서는 日新 하셨겠지요.



5. 맺는 말

개인에 지나지 않는 저는 오로지 국정에 간여할 수 있는 것이 "한표"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한 표마저 이성 보다는 감정과 유비에 좌우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인터넷의 발달로 이런 글을 다양한 의견을 가진 분들께 올릴 수 있게 되었고,이러한 시대에 살게 됨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소주 한 두잔을 마셨습니다.

아니, 보다 더 정확하게는 마시면서 썼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일제시대가 다시 올 때, 그 들에게 협조도 하지 않겠지만,
국가를 위해 목슴을 바치지도 않겠습니다.

국가는 영속하지만, 정권은 유한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무엇이 국가이고, 무엇이 정권이고 구분이 안될뿐만아니라, 정권 혹은 국가의 지도층에 보편적으로 번져있는 부도덕성과 비이성, 비합리를 보면, 제가 그런 상황에 목숨을 바치지 않겠다는 것을 이해 하실것 입니다.

누구를 위해 백범선생은 노력했고, 누구를 위해 죽기 전까지 독립을 바란 안중근의사는 죽었습니까?

그 분들이 목숨을 바친 것은 박정희를 위해서도 아니고, 김영삼을 위해서도 아니고, 김대중을 위해서도 아니고, 타락한 정치인들을 위해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오로지 조선민중을 위해섭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의 주검이 불과 반세기 만에 작금과 같이 나타날 때, 이런 상황을 보면 그 분들이 목숨을 바치러 했겠습니까?

설사 그렇더라도 그 분들은 똑 같은 신념을 행동하셨겠지만, 그 분들이 저 세상에서 보신다면, 365일을 통곡으로 보내실 것 입니다.

참으로 가슴을 쥐어 짜는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이 글은 인터넷사이트 중 제가 접할 수 있는 모든 게시판에 올릴 예정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저 혼자서 올릴수 없는 이 글을 타당 하시다고 생각을 하시면 알고 있는 여러 계시판에 올려 주시길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어린별곡 김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