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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충한 날에...


BY 나 2000-09-15

여기 들어와보면 사는 것이 다 비슷하구나...하는 위안이 되기도 하고, 어째 다들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나...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명절 뒤라 여러 님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가 다 속이 후련해지는 대리만족을 느끼다가 저도 몇 자 적어보네요. 며느리, 딸들의 이야기가 다 거기서 거기, 모두 제가 할 얘기를 다 해주시는 것 같아요.

결혼 4년째. 요즘은 부쩍 시어머니를 보는 일이 답답해집니다.
아이를 맡기고 직장에 다니는 터라 싫더라도 아침, 저녁으로 얼굴을 대해야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발걸음이 천근이네요.

주말 부부인 관계로 신랑없이 세살짜리 아들녀석 손잡고 10분 거리인 시댁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데, 저희 어머니, 제게는 참 잘해주시죠. 친딸처럼 대한다 하시면서.
근데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님의 그런 지나친 자상함이 오히려 제겐 스트레스가 되더군요.

7년을 함께 살던 형님이 고부갈등으로 분가한 뒤로는 더욱 저희에게 의존하시죠. 몸이 조금만 아프셔도, 뭐가 없어도, 늘 곁에 있는 제 몫입니다. 편찮으시면 퇴근해서 부랴부랴 약국 가서 약을 사다드리는 일도, 앞집 사람 흉보는 말씀 들어드리는 일도, 시누들 걱정하느라 걱정이 태산인 어머니 하소연 들어드리는 일도 다 제 몫입니다. 가끔은 너무 피곤해서 멍한니, 딴 생각하면 서 대답만 네네,하고 오죠.

근데, 아무리 좋은 어머니시지만, 제게 가끔 못마땅하면 어쩜 그리 찬바람이 도시는지요. 말을 중간에 톡톡 끊으시면서 두말도 못하게 하시는게 저희 어머니 주특기시죠.

아이를 맡기는 탓에 죄송해서 몸이 아무리 아파도 저녁이면 데리고 가고, 아침엔 데리고 옵니다. 하지만 차가 없는 관계로 비가 많이 오거나 할 때는 놔두고 가기도 하죠. 그럴때면 저희 어머니 무슨 핑계를 대서든 전화를 하십니다.
처음엔 그게 혼자 있는 며느리 걱정해서 하시는 전환줄 알았습니다. 근데, 요즘은 제가 집에 있는지 확인하시는 전화 같아서 끊고 나면 너무 불쾌해집니다.

그저 여자는 남편 뒷바라지 하고, 아이들 잘 키우는 일 외에는 어떤 것도 잘한 것이 없다고 믿으시는 우리 어머니.
연애 6년, 결혼해서 3년을 지금 신랑 뒷바라지 해놓았더니, 이젠 오로지 잘난 아들이 똑똑해서 지금까지 온건고, 제가 그동안 참고 고생한건 거의 잊어버리신것 같습니다.

그래도 물론, 저희 시부모님, 좋으신 분들이시죠.
세상에 그렇게 자식들밖에 모르시는 분들도 없을겁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지나친 애정이 집착이 되어 숨이 막히기도 하죠. 그리고 당신도 그렇게 살았으니, 며느리들도 그렇게 사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저희 어머니의 생각은 절대 확고하구요.

가끔은 왜 내가 남에 집에와서 남의 부모 시중들며 남의 남자 뒷바라지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냥, 지금은 이대로 사는 수밖에요.
신랑이라도 빨리 내려와서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좀 숨통이 트일 것 같네요.

날씨가 며칠 우중충하니, 기분까지 우중충해서 몇 자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