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510

나이들어 늙은 것도 <벼슬>일까


BY 2000-10-04



이 세상에 나이 안먹고 항상 청춘으로 사는 사람 누가 있을까.

여기 올라온 최근의 글들을 읽다보니 서글픈 생각이 든다.

심지어 어떤 나이드신 분은 '너희들은 안 늙냐'시며, 속상해 글올린 이를 책망하는 글도 올리셨다.

너희들은 안 늙냐.....
이것이 과연 이유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젊어서 고생한 것(못먹고, 못입고..등등)을 자식들이 그대로 다 답습하고 살아야 속이 시원하실려는지.

며느리는 엄연한 바깥식구라고 마음으로 내치는 시어머님의 그 속마음을 읽는 듯 하여 씁쓸하다.

나도 예전에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

"너도 늙어봐라. 늙으면 외로워서 자식이랑 같이 살려는 것이지, 누가 자식 덕보자고 같이 사는줄 아느냐...."

단지 외로워서 같이 자식과 사는 거라면, 당신이 외로울 때 며느리의 친정부모님도 외로워 자식을 그리워할 거란 생각은 왜 못하시는 지.

자식 덕보자는 게 아니면..... 도대체 무슨 때만 되면 누구 며느리는 뭘 해줬네, 뉘집 자식은 현금을 매달 얼마씩 또박또박 온라인으로 넣어준다는데.... 하는 식의 말은 왜 달고 사시는지.

정녕 부모라면....
의연하게 자식을 위해서 기꺼이 자기가 살아온 역경이나 고난따위는 접어야한다.

부모가 고생고생해서 널 키웠다라고 공공연하게 자식에게 되뇌이는 분들이 있다.

특히나 그런 사람이 며느리라도 얻으면 그 며느리에겐 거의 세뇌가 될 정도로 그 공치사를 한다.

내가 내 아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아느냐?

그럼, 어느 부모는 내 배에서 내놓은 자식을 나몰라라하며 살았더란 말인가.

어미가 새끼를 위해 하는 건 생명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본능적으로 다 한다.

문제는 그 자식을 독립시킨 후가 아닐까.

그렇게 정성껏 키운 자식의 행복을 왜 지켜주지 못하는가.

물론 예전 시집살이보다는 많이 수월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체감하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져야지, 막연히 옛날과 같은 상황으로 동격 비교를 한다는 것은 무리다.

간단한 예로, 옛날 분들은 전기제품없이 다 손으로 살림했지만, 요즘 그렇게 험하게 살림살라고 하면 결혼하겠다고 나서는 처자 아마 한명도 없을 것이며, 내가 딸을 가지고 있다해도 그런 집에 시집보낼 바엔 차라리 안 보내겠다.

고무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김장을 100포기, 200포기 담궜노라고 말하는 시어머니앞에서 온수틀어놓고 갈작대며 설겆이하는 며느리의 모습은 당연히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과연 요즘 며느리들이 다 못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생활 수준의 향상과 복잡다변화된 사회에 적응해 살다보면, 과거 무지막지한 살림살이를 살아내는 일은 거의 원시에 가까워진다.

그렇다면 시어머니세대들도 그런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나야하지 않을까.

자기 딸도 똑같이 그런 시집살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렇게까지 며느리에게 마음으로 상처주게 되지는 않을 텐데.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수직적인 가족관계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시부모세대는 당신들이 부모라는 명목하에, 자식들의 자유로운 삶을 아무렇게나 통제하려고 든다.

그것이 여의치않으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식의 항변을 하며 오롯이 집안 분란의 책임을 며느리에게 돌린다.

자식이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며느리가 효부여야 한다. 며느리가 효부가 아닌데, 자식이 효자노릇을 하려면 그 집안의 끝은 안봐도 훤하다.

나는.....
나이든 이들의 잘못된 노욕을 지적하고 싶다.

부모건, 자식이건 핏줄로 맺어진 사이인데 왜 의무는 잊은 채 권리만 주장하려하는가.

며느리가 시집오는게 아들이 좋아 오는 것이지, 시집에 종살이 하려 오는 것 아니잖은가.

사랑하는 아들이 아이낳고 함께 살고 싶어 맞이한 며느리인데, 왜 한번쯤 너그럽고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보지 못하는가.

너희도 늙어봐라.... 하는 식의 고집으로는 결코 좋은 고부관계를 이뤄나갈 수 없다.

그렇다. 모두다 늙는다. 그렇다면 아무도 그 늙는다는 명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세대간의 엄연한 변화와 차이는 인정해주어야하지 않는가?

젊은 날, 오로지 자식하나 잘되는 것을 바라고 살았다면서, 왜 정작 그 자식이 성가하여 새로운 가족을 이뤄 행복하게 살려는 싯점에선 그들의 행복을 방해하는가.

한번쯤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 아닐까.

함께 살던, 따로 살던 자식이 결혼하여 내 품을 떠나면 그때부터는 당연히 엄연한 하나의 새가정으로 존중해줘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존중하다보면 남의 며느리 종부리듯 할 일 없을 것이고, 며느리도 엄연한 남의 집 귀한 자식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사랑으로 맺어진 좋은 관계인 사람들에게 축복과 격려는 하지 못할 망정, 부모라는 이름의 폭력은 이제 자제되어야하지 않을까.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