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내년에 서른이 되는, 두 살짜리 아들을 둔 5년 차 주부예요. 남편은 그렇게 싹싹하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잘 해주고, 그저 다른 남편들처럼 그래요. 그런데 얼마전부터 이 사람이 너무 힘들어 해요. 회사 사정이 안 좋거든요. 월급도 안 나오고...제가 부업을 해서 돈을 조금씩 벌기는 하지만 그걸로 한 달 넘어가기는 택도 없죠. 술도 즐기지 않던 사람이 일주일에 한 사흘은 술타령이고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에도 가만히 의자에 누워서 혼자 노는 아이만 심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결혼 하기 전부터 시댁 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고, 결혼 할 때도 지금도 손 안 벌리고 혼자 계시는 시어머니 용돈 드리면서 지내왔어요. 하지만 단 한 번도 돈문제 때문에 바가지를 긁거나, 다툰 적은 없었거든요. 월급이 조금 늦게 나와도, 안 나와도 그걸로 신랑을 곤란하게 한 적은 절대 없어요. 남편이 주식한다고 융자얻어서 망했어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 한거라고 생각하고 얘기 안 했구요. 그저 지금 우리 나이가 젊으니까 인생공부 한 거라고 생각했구요. 틈틈이 아르바이트 해서 아이 장난감도 사주고 가족끼리 외식도 하고 여행도 했어요.
둘다 성격이 낙천적이라 돈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거라고 생각하고 지냈는데...
근데 이 사람은 생활에 의욕이 없대요. 직장에 다닐 의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삶에 의욕이 없다는군요. 너무 답답해요. 이렇게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정말이지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아서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 안쓰러워 하고 있어요. 결혼하고 간간히 싸우고 크게 싸운 적도 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 어떻게 해주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저도 둘째를 임신하고 있어서 배가 부르면 아르바이트도 하지 못할 것 같은데, 정말 막막해요. 그냥 직장 그만두라고 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