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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며느리란 뭔가요?(1)


BY 며느리 싫어 2000-12-05

안녕하세요? 답답한 마음에, 넉두리 좀 하렵니다. 저는 서른살에 4남매의 장남과 결혼을 했지요. 지금 28개월된 딸아이가 있고요. 처음 결혼할때 남편쪽이 여러가지 면에서 저희 친정부모님의 기대보다 많이 쳐지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남편하나 믿을만했고, 또사랑했기에 결혼을 강행했어요. 극구 말리던 저희 부모님도 왠만하면 허락을 하려고 하셨는데 이것저것 다 양보하고 형편없이 가난한 집 장남이라는 조건까지는 딸년때문에 눈감아 주겠는데 몸 불편한 시누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절대 그런집에는 못보내신다는 것이었어요.

시댁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딸가진 부모입장에서야 그런집안에 안보내려는 게 당연하거 아니겠어요? 남편 또한 그문제로 어디가서 선도 못보고 또 어쩌다 선을 봐도 상처만 입곤 했었고, 아픔이 많았던사람인 것 같더라고요.
저도 처음엔 부모님으로부터 여러가지 말씀을 들으면서 도저히 안돼겠다는 생각도 여러번 했었는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어느날, 그날은 정말 헤어지려고 했는데 남편이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 눈가에 눈물이 글썽해지며
"그래. 나도 알아. 네가 왜 그러는지 나도 알아. 너의 결심에 대해 아무도 뭐라고 말할수 없다는 것도 알아. 그래. 그렇지만 나도 속이 상해 너무너무 속이 상해. 나 때문도 아니고, 왜 내 잘못도 아니고 내 주변상황때문에 이렇게 되어야 하는건지 나도 너무너무 속이 상해. 난 정말 아무것도 잘못하게 없는데 말야...." 하는 넉두리를 듣는 순간 도저히 이남자를 그냥 내버려 둘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착한 남자인데, 가난한 집 장남이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그런 유일한 남자를 이렇게 아프게 내버려 둘수가 없더라고요.

몇날을 울면서 기도하고 부모님께. 또 하나님께. 애원했지요.
내가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이미 사회적인 능력도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이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 부모님이 흡족해 하실 만한 다른 남자와 얼마든지 결혼할 수가 있지만 이남자에겐 내가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비통한 마음에 자살을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등등
그렇지만 저도 여자고 사람인데, 사랑하다만 믿고 빤히 들여다보이는 여러가지 걱정들을 모른척 할 수도 없더라고요.

몇날을 고민고민 하다가 이렇게 결론을 내렸죠.
내가 사회적인 능력이 있으니까 이남자와 결혼해서 함께 돈벌면서 열심히 살다가 한 십년쯤 지나서 1층에 상가가 딸린 3층집을 하나 얻어서 우리 모두 함께 살자.
시부보님과 시누이는 위층에 사시게 하고, 우린 아래층에 살면서 1층엔 우리 아가씨가 시집도 못가 좌절하지 않게, 뭔가 할 수 있는 작은 ?事?하나 내주자고.
지금이야 모두들 시부모님을 모시면 오래사네 못사네 어쩌고 하지만, 지금이야 젊은 혈기라 그렇고. 한 사십쯤 되면 모두가 다 똑같아 지지 않을까? 그때쯤되면 나도 좀더 유해지고 아래 위층 함께 살면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으면 함께 아껴주며 알콩달콩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나 또한 정 많고 눈물 많고 야박하지 못한 성격이라 불쌍한 사람보면 어떻게든 도와주려 애쓰며 살았는데 남편 가족 돕는게 뭐 그리 어렵겠어?

그런 결심을 하고 남편에게도 결혼해서 함께 열심히 살아서 그런 계획을 이루자고 얘기했었죠. 남편은 그야말로 너무너무 고마워 했었지요. 저는 그렇게 이쁜 마음로으 결혼을 준비했는데, 시댁에선 전세자금도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할 형편이더라고요.
남편이 겨우 모아놓은 2천만원이 전부라고..
우리 친정에선 어차피 내가 결혼하겠다고 우기니, 한나밖에 없는 딸자식 전세집 전전하게 할 수는 없고, 남편이 왠만한 전세자금만 내놓으면 슬그머니 보태서 아파트 한채라도 사주려고 준비하고 계셨는데, 겨우 2천만원이라니까 많이 실망 하시더군요.
그래도 어차피 하는 결혼인데 저는 양가에서 상처 받지 않도록 준비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어요.
돈이 없어서 못해주는 거야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정 그러면 형편 나은쪽에서 좀 더 도와주면 오히려 좋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헌데 집문제를 처음 거론하시며 우리 시어머니께서 제게
"준비된 2천만원에 2천만원 더 융자 얻어서 전세집 얻고, 너 아직 젊으니까 네가 맞벌이 해서 네가 갚아야지 어쩌겠냐?" 하시는 거였어요.
참 정말 기막히더라고요.
나는 남편과 동갑인 서른에 결혼을 하는데 같은 말씀이어도 어쩜 저렇게 하시나.
내가 돈을 내놓으라고 한적도 없고, 아직 아무 얘기도 오가지 않은 상태에서... 어쩜 저렇게 경우없이 말씀을 하시나.
아니 없으면 없는대로 그냥 2천만원에 맞는 지하 전세방이라도 얻으라고 하시면 될 일이지. 거기에 2천을 융자 얻어서 나더러 벌어서 갚으라니?
결국 있는집 딸이니 돈을 해 오라 뭐 그런 얘기가 아니겠어요?
너무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거기에 내 나이가 서른인데 왠만한 집이면 어서 손주부터 보자고 하셔야할 시어머니가 "너 아직 젊으니까 네가 벌어서 네가 갚아라?"
참. 그 중간중간에도 어머님이 너무 경우가 없는게 아닌가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이런 일이 터지니 도저히 더이상은 안되겠더라고요.
결혼전에도 이모양인데 결혼하면 얼마나 더 경우없게 하시겠어요?
남편에게도,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여태도 참았는데 참 너무나 무경우인 당신 어머니 때문에 결혼 못하겠다고 얼마나 성질을 부렸던지.
남편도 그런 어머니 때문에 여러가지로 마음 고생이 많았더라고요.

사랑이라는 이름 때문에 또한번 참으며 결국 결혼을 강행 했는데 우리 아버지도 그간의 과정을 겪으며 도저히 안되시겠던지 살며시 저에게 그러시더라고요.
"일단 결혼할 땐 시댁수준에 맞게 2천만원짜리 전세 얻어서 살아라. 그러다 시동생 졸업하고 두 시누이 다 시집가고 나면 그때가서 집을 사주겠다. 꼭 이 결혼을 하려면 아빠 말 들어라. 어차피 없는 집안인데. 여태도 없이 잘 살아왔으면서도 네가 아파트까지 해가서 살면 고마워 할 성품은 못되는 것 같고, 오히려 하나라도 더 얻어가려고 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의 그 말씀에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내가 지하 전세방에서 살아? 도저히 말도 안돼.
며칠을 울고불고 매달려서 결국엔 1억이 넘는 아파트를 사게 되었는데 물론 전부 다 친정에서 부담하게 하지 않았어요. 2천만원은 은행에서 융자를 얻었지요. 친정 부모님 부담(?)을 덜어주려는 마음도 있었고, 시어머님에 대한 복잡한 심정도 있었으니까요.
결혼을 하면서 부모님은 직장을 그만두라고 하셨어요.
편하게 살라고 집까지 해줬으면 고작 2천만원 정도야 남자가 벌어서 갚아야 하는 거 아니겠느냐시며.
허지만 저는 남편 월급도 빤한데 혼자 고생을 시키고 싶지가 않더라고요그리고 고작 그정도 금액쯤이야 한 1년만 맞벌이하면 금방 갚을 수 있는 금액이었으니까요.

결국 친정 부모님 속은 있는대로 다 태우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하자마자 IMF가 터졌어요.
갑자기 보너스는 한푼도 안나오고 은행이자는 잔뜩 오르는데 월급은 70% 밖에 안나오게 되었죠.
그래도 처음 1년 동안은 며느리 노릇한답시고 매주 들러서 시댁어른들과 식사도 함께 하고, 하룻밤 자고 오곤 했었죠.
물론 그러는 중간중간에도 참 말 안되는 상황이 많았었는데. 어쨋든 허니문 베이비로 결혼 1년만에 아이를 낳게 되었고, 아이가 태어나자 이제는 정말 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돈이 궁해서 어쩔수 없이 회사를 다녀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어요.

그 1년동안 은행 원금은 한푼도 못갚고 이자만 계속 넣고 있었는데, 2개월 출산휴가가 끝나고 시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출근을 하는데 정말이지 피눈물이 나오더군요.
시댁과 저희집이 좀 멀어서 주말에만 아이를 데려와야했는데 매일 아이와 함께 있다가 퇴근하고 텅빈 집에 들어가려니 가슴이 미어지고, 찢어지는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남편회사가 불안정하고 월급도 제대로 안나오는 상황에 깎여서 몇푼 안되는 내 월급이라도 있어야 생활이 되겠기에 이를 악물고 회사를 다니는데, 문제는 아이를 맡긴 다음에 생기는 돈 문제였어요.

그때까지 우리시아버님은 택시운전을 하고 계셨고, 서른이 다 된 큰딸은 돈 버는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무슨 봉사나 하러 다닌다고 했는데 그래도 저는 그 불편한 몸에 좌절하지 않고 살아주는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지요.
둘째딸 또한 서른이 가까왔는데 회사를 다니다 말다 하더니 1년도 넘게 집에서 놀고 먹고 하고 있더라고요. 시아버님은 맨날 돈없다 하시면서도 부지런히 일은 안하시고, 일하러 나가시는 날은 머리 아프다고 일찍들어오시고 이틀에 한번씩 쉬시는 날은 친구분들과 술드시러 나가시고...
도무지 당신 자식들의 미래는 생각을 하시는건지 안하시는건지.

둘째딸이 하도 판판이 놀기에 답답해서 어디 경리로라도 취직을 시켜주려고 운을 떼면 "언니 저는 일하기 싫어요" 이러고 있고.
정말 답답하더라고요. 여기서 다 얘기할 수는 없는 참...
이런 상황에서 시어머니께 아이를 맡기며 도대체 얼마를 드려야 하는냐는 문제로 고민했지만 솔직히 우리는 드릴 돈이 없었어요.
저희 회사에서는 제가 결혼해서 아파트도 있고 (물론 여유로운 시댁에서 다 해 준 줄 아시니까) 또 평소의 내 생활상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으니까 그냥 일이 좋아 회사를 다니는 줄 아셨지만
저는 임신을 했을 때도 점심값이 없어서 굶기도 했었고, 추운 겨울에 퇴근후 길가에서 파는 400원짜리 호떡이 그렇게 먹고 싶은데도 주머니에 있는 동전만 만지작 거기며 버스를 기다리곤 했었죠.
다음달에 남편 월급이 나오면 그때 꼭 여기에 와서 남편과 함께 저 호떡을 배가 터지게 먹으리라 결심하면서..

이런 내 신세가 하도 서러워 버스타고 돌아가며 버스 안에서 혼자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답니다.
상황이 그러니 저희 친정에서도 설마 시어머님이 애보는 돈을 달라곤 못하실거니 그냥 한달에 돈십만원 정도 선에서 매주 과일이나 고기라고 사라드리라고 하셨고 남편도 안드려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자기 월급도 불안한 판에 마누라 돈에서 시어머니 돈갖다 드리라고 할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그럼 내가 어머님께 그러그러해서 당분간 돈은 못드리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디다고 했는데, 남편은 우리어머니가 그 정도도 모르실 줄 아느냐며 더이상 돈얘긴 하지말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자격지심이었겠죠. 그래서 그냥 그렇게 넘어가게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