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633

도대체 며느리란 뭔가요?(2)


BY 며느리 싫어 2000-12-05

그런데 처음 아이 맡기고 한달 동안은 제가 생각해도 참 고맙게 여겨지도록 시댁식구들이 아이를 잘 봐주셨는데 딱 한달.
그러니까 제 월급날이 이 지나고 또 일주일이 지나자 태도가 싹 달라지더라고요.
함께 저녁을 먹는데 아버님이 "아유. 요즘 우리 명자(둘째시누이)가 아이 보느라고 너무 힘들다. 아유. 너무너무 고생을 해" 하시더라고요.

그말을 들으며 참 정말 너무 하신다. 핏덩이 떼어놓고 돈벌러 다니는 며느리에겐 힘드냐는 말씀 한마디 안하시면서 집에서 판판이 놀고 있는 딸이 애 좀 보는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저런 말씀을 하시나 했지요.
그래도 뭐 원래 경우가 없는 양반들이었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바로 아이 백일이 되었어요.

처음 결혼해서 집들이를 일곱번을 하는데 한번도 시어머님이 도와주신적이 없었어요.
처음엔 "내가 도와 줄께" 하시더니 막상 그날이 되면 "으응-- 동창회 있어서...." 뭐가 있어서... 하면서 요리조리 빼시더라고요.
우리엄마는 집안 결혼식 때문에 금요일부터 나도 출근하고 없는 빈집에 오셔서 밤새워 음식 준비 하시고, 토요일에 잠깐 결혼식에 얼굴 비치시곤 다시 집에 오셔서, 퇴근하고 돌아온 나와 함께 손님 맞을 준비를 다 해주셨는데...
나중엔 하도 약이 올라서 남편에게 한소리 했더니 겨우 친정 엄마가 음식준비 다 해 주신 다음에, 당일날 오셔서 하는척만 하시고 가셨죠.
그런 시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아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결혼을 하니까 정말 대범하던 저도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애를 봐주신다는 것 때문에 시누이들과의 문제든 뭐든 말 한마디 못하고 그냥 좋게좋게 지내려 애를 썼어요.
백일이 다가와도 우린 형편이 안되어서 그냥 간단하게 집에서 직계가족끼리만 지내려고 어머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래 직계가족만 하면 되지. 할머니 작은댁, 큰댁. 외삼촌. 이모 등등 모두 직계가족이지 뭐냐"
남편도 그렇게 하기엔 부담스럽다며 말렸지만 어머님이 우기시는 바람에 그냥 그렇게 하기로 하고 말았어요.
사실 저도 아들 장가 보내고 누가 해줬든 간에 번듯하게 사는 모습 자랑도 하고 싶어하시는 그 마음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으니까요.
좀 무리하더라도 어머님 뜻대로 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런 경우 음식 준비는 누가 해야 할까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여쭤 봤더니
"글쎄 집안마다 음식 풍속이 다르니. 내가 도와주고 싶어도 잘못해서 욕 먹을까봐 좀 그렇고... 시어머님과 의논 해 봐야 하지 않겠니? 어차피 그쪽 어른들 입맛에 맞춰야 하니까."

우린 토요일엔 친정부모님과 남동생 내외를 불러서 하고, 일요일엔 시댁식구들을 모시기로 했었거든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엄마 말씀이 맞는것같아, 그럼 금요일 밤에 어머니와 함께 우리 아파트에 와서 어머니는 아이 보시고, 나는 어머님이 가르쳐주시는대로 음식을 만들면 되겠다 생각을 했어요.
또 사실 그렇게 시어머니와 함께 자고 음식만들고 하면서 정도 드는거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남편과 금요일밤에 퇴근을 하고 시댁에 가서 저녁을 먹곤
"어머니. 음식은 어떤 것들을 준비하면 좋을까요?" 하며 노트와 수첩을 꺼냈지요.
그러자 어머님은 심히 불현하신 표정으로
"뭐. 그냥 동그랑 땡이나 하고, 아니 친정엄마 불러서 하면 될 거 아니야?"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어요.
참 정말 기가 막히더라고요.
아니 같은 말이어도 그렇지. 어쩜 저런 말씀을 하시나.
도대체 내가 뭘 잘못 한 건가 싶더라고요.

그리고 더 기분이 나빴던 것은 친정 엄마가 시어머니 종인가?
당신 언니 오빠 드실 음식을 친정엄마 불러다 하라고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어디에 있어?
직계가족만 불렀으면 내가 혼자 했겠지만 그래도 손님 치루는거라 어머님과 의논을 하려는건데..
막말로 어머님이 정 못하시겠으면 그냥 조용히 이러이러해서 내가 못하니 친정 어머니께 부탁을 드려라 하시면 그거 안해주실 우리엄마도 아닌데......

저 또한 불편한 표정을 지었고 결국 나와 남편이 토요일에 재료를 다 사다 놓으면 어머님이 오셔서 도와주시기로 하고 시댁을 나왔지요.
속에선 여러가지 감정이 치솟고 그간의 서운하고 말 안되던 일 들이 다 떠올랐지만, 그래도 숨죽이고 있는 남편 때문에 아무말도 안하고 아파트로 돌아와 자고 토요일 아침부터 수산시장을 가고 장을 보고 하면서 부산을 떨었지요.

마침 친정어머니가 시어머님이 애 보시느라 힘드신데 백일에 쓸 떡이라도 해오시겠다고 해서, 일요일 잠심때에 양가가 모두 함께 모시기로 했기 때문에 토요일 내내 재료 사와서 다듬고 씻고, 하고 있었지만 속에선 여전히 불이 나더라고요.
그래도 남편 때문에 내색하나 안하고 있는데 저녁 여섯시가 되어도 시댁에선 전화 한통도 없고...,
당연히 시어머니와 음식준비에 빠쁘겠다며 걱정하는 올케의 전화만 울리더라고요.

우리 올케 행사 때도 시어머니인 우리엄마가 그먼 지방까지 내려가서 다 해주셨으니, 올케도 당연히 내가 우리 시어머니와 오손도손 음식준비하고 있는 줄 알았겠자요.
남편도 약이 오르는지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느냐" 며 내일 아침 일찍 문 닫아 걸고 다른데 가버리자고. 펄펄 뛰다가 나가서 담배만 뻑뻑 피워대고....

저녁 8시쯤 되니 시어머님이 전화 걸어서 "준비 잘 되고 있느냐?" 하시더라고요.
저도 독이 오를대로 올랐죠.
차분한 목소리로 "제가 뭐 할 줄 아는 게 있나요?" 했더니
"그래. 그럼 내가 있다 애들(시누이들) 보내마" 하시길래
"아가씨들이 뭐 할 줄 알든가요" 했더니
"그래에-- 그럼 내 있다 가마" 하시더군요.

전화를 끊고는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여태 집에서 누구나 그렇겠지만 물한방울 안묻히고 살았고, 결혼해서도 새벽에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고, 거기에 처음 임신해선 유산기가 있다는 말해 노심초사 하느라고 정말이지 음식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손님들은 불러놓고 도와주시겠다는 시어머님은 안오시고.....
왜 그러는시는지 감이 잡히더라고요.

한마디로 돈 때문이죠.

애보는 돈 안준다고 '너 어디 한번 엿 먹어봐라' 이런거였죠.
정말이지 결혼 할 때부터 그날까지 있었던 서럽고 기막힌 기억에 대성통곡을 했었지요.

밤 열시쯤 시어머님이 큰시누이와 오셨더라고요
함께 앉아 이런저런 말 끝에 결국은 그러시더라고요.
"남들이 다 그런다. 시어머니가 애봐주니까 한달에 2 -30만원씩은 받겠다며 얼마 받느냐고" 거기에 시누이도
"시어머니가 애를 봐주면 친정엄마가 와서 백일 음식 만드는 성의를 보여야 하는 거 아니냐?" 며 대들고....

참 기가 막혀 말도 안나오더라고요.
나도 친구들이, 결혼 할 때 시어머니가 뭐해줬느냐 ,무슨 때엔 어떻게 해 주시더냐 하고 물으면 마치 다 해 준 것 처럼 얘기 했어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돈이 없어서 못해주시는거니까 공연히 함께 앉아 시어머니 흉 보고 싶지도 않았고,
안해주신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었고요.
헌데 이건 정말 너무 하시더라고요.
그동안 시댁에서 시어른과 시집 못 간 두딸들이 앉아서 어떤 얘기들을 나눴을지 짐작이 가더라고요.

속에선 저도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았죠.
특히나 큰시누이는 바로 저 때문에 오빠가 장가도 못가고, 마음 고생을 얼마나 했었는데,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감히 큰소린가 싶기도 하고.
정말이지 하고 싶은 얘기 다 해 버리고 끝장 내고 싶더라고요.
일 할 수 있는데도 일 안하고 판판이 놀고 있는 시누이도 그렇고,
여태까지 가슴에 담긴 얘기 다 하고 싶었었지만 애 때문에 참았어요.
할 얘기 다 하고, 애도 데려오고, 회사도 떼려 치워 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참았어요.

그래도 좋은게 좋은거지하는 생각에 울면서 얘기했죠
"어머니. 저 한달에 20만원씩 어머니 드릴 여유돈만 있어도, 핏덩이 떼어놓고 회사 안다녀요" 하면서.
출산휴가 마지막에 시댁에 일주일동안 있으면서 이거 떼어놓고 회사 나갈 일이 캄캄해서 흐느끼는 내 모습을 어머님도 보셨었거든요.
그래서 그정도 여유만 있어도 회사 다니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는데, 우리 시어머닌 지금도 그러시죠
"너 전에 나 줄 돈 20만원 아까워서 회사 안나닌다고 했지? 나도 그생각하면 너한테 섭섭하다"

정말 우습죠?
그래서 그날도 이런저런 애기가 오가는데, 어머니가 소리소리 지르더니 결국엔
"그래도 어떡하냐. 네가 시집 잘 못 온 걸. 네 팔자가 그 모양 인 걸" 바로 다음날이 우리 결혼 일주년 기념일이었는데...
어쩌면 아무리 말주변이 없고, 배운게 없어도 그렇지.
이건 정말 너무 하신 게 아닌가요?

그날은 그렇게 지냈지만 저는 밤새 한숨도 못자고 공부방에 가서 숨죽여 흐느껴 울었어요.
정말 결혼 잘못했다는 생각을 했었죠,
부모 반대하는 결혼해서 잘 사는 사람 없다더니, 내가 그꼴인가 싶기도 하고.
저런 시어머니, 시누이 데리고 앞으로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더라고요.

아이 낳고 나서 회사 다니면서도 거의 먹지를 못했었거든요.
밥을 먹다가도 시댁을 생각하면 역겨워서 토할 지경이었어요
왜냐고요?
나와 남편은 이렇게 열심히 살려고 아등바등 대는데, 우리 시부모는 세월아 내월아 하고 계시고,
판판이 노는 시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버려 두시면서, 핏덩이 떼어놓고 다니는 나에게만 돈을 바라는 눈치를 주는 걸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남편에게도 당신 식구들이 다같이 열심히 살려고 노력을 하는데도 안된다면 당연히 내가 도와야 겠지만, 일 할 수 있는데도 빈둥거리고 저러고 있는데는 한푼도 못준다.
지금 돈을 드려도 결국은 그돈이 시누이들 입에 들어갈 게 아니냐
아버님이 식구들 다 출가 시켰으면 택시 운전해서 두분이 못 먹고 사시겠니?
결국 며느리가 벌어서 시누이들 먹여살리는 꼴인데 나는 그짓은 못하겠다.
또 그동안 두 시누이들이 싹아지 없게 군것들도 아직 용서가 안되고 있는데.....

결혼하고 나서도 주말에 시댁을 가면 딸은 비디오나 끼고 앉아 있고,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에게
"에고. 내일은 결혼식이 몇 건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어쩌나 애고..." 하시고 시어머님은 내얼굴을 보시며
"뭐 어떻게 되겠지" 하셨죠.
처음엔 저도 시댁이 그정도로 어려우신가 보다 싶어서 주머니에 있던 돈도 털어드리고 오곤 했는데
그꼴을 일년을 보니까 나중엔 사람 같지도 않게 보이더라고요.

처음엔 안쓰럽게만 생각했었는데 나만 가면 다를 앉아서 내주머니 털 생각들만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 져 오더라고요.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 토요일을 꼴딱 세우고 일요일 아침부터 대충해서 점심때 손님을 치르는데 제가 그만 정신을 잃고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는 일이 생기고 말았어요.
그동안 아이낳고 거의 못먹어서 몸무게가 40킬로 정도 밖에 안나갔는데 정신을 차리니 병원에 아버지 엄마 그리고 내 남동생과 남편이 있더라고요.
의사선생님이 우리부모님께 정신적인 충격때문에 그런것 같다며 어젯밤에 무슨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바람에 부모님이 대충 분위기를 파악하시게 되었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내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는데도 큰시누이는 친구 만나러 간다며 나가고,
둘째시누이는 내가 실려나가는 그 와중에도 시어머니에게 "엄마 엄마. 내가 가져온 0000책 어딨어? 나 그것 갖고 나가야 해" 하며 나가더랍니다.
부모님과 동생이 내 신발등등을 가지러 다시 우리 아파트로 가 보았더니 거나하게 술판이 벌어져 있고,
우리시아버님은 내가 좀 어떠냐고 묻기는 커녕
"어이 사돈 내 술 한잔 받으슈. 사돈 총각 술 한잔 받으슈" 하고 있고

외삼촌이라는 분이 내가 회사를 다니면 어떻게 모유를 먹이느냐고 물었더니 우리부모님도 계시는 앞에서 시아버님이
"우리 00 이는 모유먹이면 안돼. 지애미 닮으면 안돼" 하시더랍니다.

참 무서운 사람들이죠.
그동안 애보는 돈 안준다고 한달 동안 나를 얼마나 미워서 뜯고 있었으면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며느릴 두고 그런 소리들을 할 수 있는지...
이십대의 혈기 왕성한 남동생이 나중에 그러더라구요
정말 그때는 사돈새끼고 뭐고 타 엎어 버리고 싶었다고.
그게 무슨 시부모냐고.
그때까지 아무 말씀 안하시던 우리 부모님은 얼른 짐을 챙겨서 올케와 함께 나왔답니다.
아파트 1층까지 내려와선 아버지가 땅을 치며 통곡을 하시더랍니다.
내 딸 시집 잘못보냈다 시며.

그날도 손님들이 와계시고, 거기에 우리 부모님까기 와 계신는데도 두시누이들은 상 차리고 손님 접대 하는 걸 거들기는 커녕, 방이 많으니까 우리 공부방에 들어가 앉아서 '떡 가져와라, 과일 가져와라' 이러고 있었는데도 우리 시어머니는 가만히 내버려 두시더라고요.
오죽 답답했으면 우리 올케가 시댁식구 손님 접대를 다하고 있었겠어요?

병원에 신발과 의복을 챙겨오신 엄마는
"오늘 네 시누이들 하는거 보니까, 너 그동안 얼마나 속상했을지 내 다 알겠더라" 하시는 그 한마디에 그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이 다 터지더군요.
부모 반대하는 결혼을 한 죄로 그동안 시댁에서 속끌이고 말 안되는 상황이 있어도 항상 잘해주신다 잘해주신다고만 했었는데, 그래도 빼짝빼짝 골아가는 딸을 보면서 엄마가 왜 아무 생각이 없으셨겠어요?
말안해도 다알지.
나는 "엄마. 엄마. 엄마" 를 불르며 대성통곡을 했어요.
이놈의 결혼이고 뭐고 다 팽겨치우고 다시 엄마에게로 돌아가고 싶더라고요.

그간 내앞에선 결혼을 반대했어도, 그래도 남편앞에선 한마대 내색도 안하시던 분들이었지요.
결사 반대 하시면서도 그래도 혹시 결혼을 하게 되면 상처가 생길까봐 남편에겐 일절 아무 말없이 계시던 분들이었는데 그날은 한소리 하시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