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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려고 한다.


BY 초등교사 2000-12-16


나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 사회에서는 "교사"라 부른다.

엄마들이 대청소 해주신다길래 구석구석 쌓인 먼지도 많고 해서

고맙게 받아들였다.

청소를 마치고 차를 마시며 웃고 즐기는 가운데 갑자기 한 엄마

가 반장 엄마를 쿡쿡 찌르자 반장아이 엄마가 백화점 상품권이

담긴 상자를 내민다.

"선생님, 한 해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오호, 통재라. 어찌 나에게 이런 시험을...

내 왜 미리 이런 사태를 짐작하지 못했을까?

아니 짐작은 했으나 대처할 수가 없지 않았는가!

엊그제 학급임원들 회식자리에 나오라는 간곡한 청을 거절하면서

'돈을 거둬서 엄마들끼리 무얼 드시든지 어딜 가서 춤을 추시든

노래를 하시든 상관없는데 혹시라도 담임한테 준다고 돈을 거

두거나 하는 거는 절대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

지만 오히려 이상하게 들릴까 싶어 말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니다.

고민끝에 퇴근길 백화점에 들러 만원권 상품권으로 교환했다.

다행히 임원이 스무명이라 돌려 드리기가 한결 수월했다.

나는 페스탈로찌도 허준도 아니다.

그리고 거지도 아니다.

그냥 월급받고 아이들 가르치는 교육공무원이다.

혹 그들이 나에게서 교육공무원이상의 어떤 열정을 느끼고 감사

의 정을 느낀다면 이런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은 정말 무례라고 생

각한다.

그 자리에 참여한 또는 참여하지 않은 스무명의 엄마들의 마음이

어찌 한결같을까?

생각할 수록 얼굴이 달아 오른다.

나도 같은 엄마로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이런 방법은

너무 아닌것 같다.

하여튼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으로 며칠을 보냈는데 이제 조금은

정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