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493

하는 것도 없이 괜히 속이 상해서...


BY 그러려니 2000-12-30

어제 남편회사 송년모임에 갔다왔다.
거기서 여자들이 저마다 집안자랑을 시작했다.
친정에 부동산이 있는데, 부모님이 나중에 좀 주실거다...친정에서 얼마를 주었다...시집에서 집 사주었다...아이들 과외비를 시댁에서 맡아주셨다...식탁을 어디에서 것두 10여년전에 기백만원을 주고 샀다...땅을 샀는데 그게 올라서 얼마가 되었다..그리고 난 들어보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비싼 가구들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거기서 산 식탁이야기며 소파이야기며......등등.

우리 가난하지만, 원래 남과 비교안하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잘 살았는데, 어제는 그 이야기를 듣는동안 내가 너무 초라해서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미소만 짓고 이야기만 들었다.
집에 돌아와 또 밤새 한숨도 못자고 울었다.


그래, 우리 가난하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내 친구들 모두 잘살아도 나 꿇리지 않았고, 질투도 해 본 적이 없다.
친구들 하나하나 큰집 장만할 때도 나 진심으로 박수쳤었다.
나도 열심히 살았고, 내 남편도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가치는 돈에 있지 않았고, 남편과 나 서로 위해주고 사랑하고 돈만 없었지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요즘 나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남편 아주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다.
처음엔 나도 듣고 놀랬었다.
한번도 자기집이란걸 가져보지 못한 집안의 자식이다. 부모님돈으로 전세도 살아보지 못한 집안의 자식이다.
삭월세 단칸방에서 특정한 직업이 없는 아버님은 이일 저일을 하면서 돈을 버셨고, 어머니도 남의집 파출부를 했다.
내남편, 어느학기엔 장학금으로, 장학금 못받는 학기엔 융자로 학교를 다니면서 수업끝나면 아르바이트로 집안에 생활비를 보태고 그렇게 대학을 마쳤다.
남편의 형제들도 모두 그렇게 공부했고, 시부모님 자식들 학비 한번도 대주신 적 없이 학교다니는 자식들이 오히려 돈벌어 집안의 생활비 대며 그렇게 살았단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먹고만 살았는데, 온집안 식구들이 다 벌었는데, 웬 빚이 그렇게도 많냐는 것이다. 내남편 직장에 취직하고 내내 학교때 받은 융자, 집안에서 진 알 수 없는 빚을 갚느라 돈도 하나도 없이 결혼했다.
시부모님은 지금도 월 10만원짜리 삭월세방에 사신다.
그래도 지금도 빚이 있단다.
무엇때문에 진 빚인지 내남편도 모른다.
그저 돈때문에 매일 허덕이고, 우리가 도와주기만을 기대하고 사신다.
나한테는 자식들 학비대느라고 빚지고 돈도 못모우고 힘들게 살았다고 거짓말 하신다. 자식 잘 키워놨으니 이젠 당신들의 모든것을 우리가 책임지라고 호령하신다.

우리 3000만원짜리 전세살면서 시집빚 2000만원 몇년에 나눠갚았다.
내 쌈지돈까지 털어서 갚았다. 그런데도 아직도 빚이 남아있단다.
어느 순간에, 우리 전세빼서 빚의 일부가리라는 말까지 나왔었다.
살고 싶지도 않았다. 정말이지 난 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 우리 그래서 이 나이에도 아직 집도 없고, 나 변변한 옷한벌도 사입어본 적 없고, 내남편 어디가서 기분좋게 술한잔 산 적도 없이 살았다.

그래도 친정 사정이 좋았을 때는 시집일만 걱정하면 그걸로 되었었다.
그런데 아이엠에프때, 남동생이 회사를 퇴직당하고 올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버렸다. 친정사정이 급격히 나빠졌고, 조카들은 남동생이 맡았다.
동생은 아직도 취업이 되지 않을 상태고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상황이 맘대로 따라주질 않았다.
조카를 생각하면 불쌍해서 잠이 안오고, 친정엄마 매일 한숨만 푹푹 쉬고... 어깨 축쳐진 내동생 생각하면 나 정말이지 속이 상하다.

우리 가난하지만, 둘다 남과 비교 안하고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별로 불행하다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친정까지 그렇게 되니까...내가 할 수있는게 없다는게 나를 더 죄절하게 만들고, 이럴때 우리라도 잘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고...

요즘 밤에 잠도 못자고, 이부자리에 누워 남편깰까봐 혼자 훌쩍거린다.
내가 맘을 잡아야 할텐데, 맘도 안잡히고 뜬구름 위에 사는것같고, 어디를 봐도 답답하고 .... 내 생활도 말이 아니다.
남편은 어쩌겠냐고 한다..그래 맞다. 어쪄겠나...

나 시집이고 친정이고 도움같은건 애초에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편안히 살아주기만 하면 좋겠다.
못살아도 좋다. 그냥 아무일없이 편안하게, 가난해도 행복하게 그렇게 살아주기만 한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요즘 난 기도한다.
우리 꼭 잘 살게 도와달라고..
그래서 친정도 일으키고, 시집의 그 알 수 없는 빚들도 갚아주게..그래서 다 좀 편안하게 살게 꼭 잘살게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벌써 4개월째 밤에 잠을 못자고 있다.
이젠 사람만나는 것도 싫고, 나 왜 이렇게 나약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