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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왠지...


BY 찰리 2001-01-11

좀 전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엊그제 출장을 갔는데, 지금 오고 있다고... 집도 좀 치우고, 꾀죄죄한 몰골도 좀 정리해야 겠는데, 영 하기가 싫으네요.
어제 아이를 재우고 전화를 했더니, 게임방에서 친구랑 온라인 게임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제는 동료들이랑 영화를 봤구요. 출장을 간 건지, 마누라 등쌀 피해 놀러간건지...

남편이 집에 있는 날 우리집 풍경은 이러합니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던 남편은 정오가 되어야 일어나고 배도 고프지 않답니다.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아이랑 한 오분 놀아주죠.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합니다. 게임하자고... 그리고 게임하다가 배 고프면 밥 먹고 또 게임을 합니다. 한 두어 판 끝나면 나와서 뽀뽀 한번 해주고, 애랑 또 오분 놀아주고 다시 게임을 하죠. 어떤 때는 커피를 갖다놔도 모르고 혼자서 커피 타 먹는다고 할 때도 있답니다. 하루종일 게임을 하다가 함께 게임을 하던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있지요. 그러면 새벽에 들어오구요.

초 저녁에 어린이 TV프로를 애가 보고 있으면 나와서 자기 보고 싶은 걸로 채널을 돌려놓구요. 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자기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보죠. 애는 아직 말도 못하는데 그래도 자기 보고 싶은 걸 못 본다고 울면서 떼를 부리구요....

애를 시댁에 맡기고 일하러 일주일에 두세번 나갑니다. 절대로 먼저 가서 기다리는 법이 없죠. 항상 그 친구와 만나서 게임방에 갑니다. 어쩌다가 시간이 좀 나서 저를 데리러 와도 게임방에서 그 친구와 게임을 하면서 기다리구요. 집에 있는 날도 혼자서 아이를 돌보려고 하지 않아요. 좀 있으면 아이가 두 돌인데 지금까지 혼자 아이 본 적이 두번밖에 없어요. 이 추운 날에 아이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하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듭니다. 저는 지금 임신 8개월이거든요.

함께 집에 있어도 혼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혼자 밥하고 밥먹으면 먼저 일어나고 아이 뒷정리나 씻기고 먹이고 모두 제 자치가 되구요. 제가 아이를 재우다가 잠들면 컴퓨터도 안 끄고 새벽까지 게임하고 이상한 사이트나 헤매다가 혼자 자구요. 그 놈의 게임 때문에 처음에 무지하게 많이 싸웠죠. 회사 바쁘다고 거짓말하고 게임방에 가 있고 해서요. 지금은 그냥 놔두고 있는데, 제가 몸이 힘들고 지쳐서 그런지 점점 짜증이 나고 참을 수가 없어요.

저에 대한 배려나 아이에 대한 애정이 친구보다 못한 것 같아서요. 항상 친구가 우선이고... 그 친구와 하루에 두세번씩 통화를 하구...

뭔지 모르게 부부생활에 빈 틈이 생기는 것 같아서 안 그래도 추운 날씨에 마음까지 추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