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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어이 사고치고 말았습니다.


BY 겨울바다 2001-01-13


말 그대로입니다.
저, 우리 시어머니께 사고치고 말았습니다.
허풍 많으신 우리 시어머니께
여태까지 네,네하고 순종하고 살았습니다.

나쁜분은 결코 아닌데 항상 말보다 행동이 앞서고
실행하지도 못할일을 미리 말씀으로 먼저 생색을 내십니다.

여기 글 올리신 분들이 다 그런것처럼
이작은 화면에 그동안에 그 많은 사연들을 다 올릴수는 없고...

지난 12월부터 우리 어머니 저를 보실적마다
(엎어지면 코가 닿는 거리라 하루에 2-3번은 꼭 만나거든요)
아버지 보너스타면 기름 2드럼 넣어줄테니까 따뜻하게
하고 살라구요. 궁상떠는 며느리가 애처러우셨던거죠.
또 어머니도 가게를 하나 하셔서 경제적으로는
우리보다는 훨 나으시거든요.

그런데 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라고
정말 거짓말 한번 안 보태고 20번 넘게 그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그러시는 와중에도 뜬금없이 생색내고
지키지 않은 말들도 많았구요.
그러는 동안 우리 아버님 보너스는 벌써 은행통장에서
고이 잠들어 있었구요.
그 사실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아버님 보너스 타면 돈 준다고 노래를 하시더라구요.

여러분들은 제가 시댁에 손 벌리고 싶어하는 며느리라고 생각
하실런지도 모르는데 물론 시댁 형편이 우리보다 좋으시니 주시면
감사하고 또 안주셔도 그럭저럭 살아갈수 있는 형편이랍니다.

어쨌든 제가 싫은 건
미리 말씀만 먼저 수없이 하시고 막상 돈이 나올때는
마지 못해서 주신다는 겁니다.
가슴 속에 뭔가가 가득차 있는데
어떻게 다 표현해야 될지를 모르겠네요....

어쨌든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만큼 특히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서 돈 준다고 큰소리 치시던
어머니께서 드디어 그저께 돈을 주시더군요.

가게를 하시는 탓에 동전이 많이 모이는데
두달동안 모은 동전 (100원짜리 50원짜리 10원짜리) 30만원을
양손에 가득히 나누어 담아 오셔서
이돈은 우리집에 없는 셈칠테니까 이돈으로
은행가서 바꿔서 기름 넣으라구요.
그때 갑자기 가슴속에 뜨거운 불덩이가 생기더군요.
평소에 잔돈이 많이 모이면 제가 은행가서
지폐로 바꿔 드리곤 했는데 그 기분이랑은 다르더군요.
결국 시어머니 앞에서는 찍소리 못하고
어머니도 조금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가셨죠.

어머니가 가시고 전 그돈이 절대로 돈으로 보이지 않더라구요.
저의 자존심이 구겨진 뭉치 같더군요.
결국 남편이 돌아와서 그걸보고, 남편도 어머니의 뻥에 몇번 당한지라, 그걸 어머니께 돌려 드렸어요.
기름 안 넣어도 되니까 어머니 쓰시라고.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니기도 하지만
이런 행동은 며느리로서는 시어머니께 반항하는 것이잖아요.
결혼한지 8년째, 처음으로 반항 한번 하고
그러고도 마음이 불편해서 이렇게 글 올립니다.
제가 잘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며느리도 자존심은 있는거 아닌가요.

제가 딸이 아니라 며느리여서 이렇게 행동한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딸이었다면 엄마한테 잔소리 엄청해댔겠죠.
우리 어머니를 포함해서 요즘 시어머니들,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 하신다고 하는데
정말로 딸처럼 행동한다면
친정 엄마한테처럼 당당하게 잔소리를 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나요.

어쨌든 시어머니 앞에만 서면 늘 목소리가 줄어들고
작아만 지던 제가
여기 계신분들의 보이지 않는 힘을 믿고
그런 반항을 하고야 말았는데
빈말이라도 잘했다고 격려(?) 해 주시와요.

그 후에 어?F게 되었냐구요?
풍전등화죠.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언급은 없으신데
조금은 반성 하신것 같기도 하고 (원래 좀 단순하시거든요)
좀 얄미워 하시는것 같기도 하고.
저도 저 나름대로 거기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다른 일로는 잘할려구 하죠.
부침게도 은근슬쩍 구워서 보내드리고....
보일러 수리할 일이 있는데 어머니 아시는분 소개시켜달라고
무덤덤하게 이야기 하기도 하고....

사람 사는게 결국 이런거군요.
이렇게 시시한 일로 마음이 천국도 되고 지옥도 되고...
제가 잘했든 잘못했든
여러분들께 고백하고 나니까
마음이 후련해 집니다.

다음에 혹시나 또 사고치면 또 이렇게
글 올리겠습니다.

즐거운 토요일, 일요일 되시길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