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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이 넘 얄미워요.


BY 늙은 새댁 2001-02-01

너무 속이 상해서 글을 써볼려고 하는데 막상 무슨 말부터 해야 좋을런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올해 서른살이 되구요, 이제 결혼한지 9개월이 조금 지났었요. 근데 요즘 우리 신랑이 너무 너무 얄미워서 어쩔 줄 모르겠었요.
저흰 중매로 만나 결혼식까지 2개월 밖에 안걸렸거든요? 근데 그게 전기가 통했다거나 서로 첫눈에 반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구요 둘다 어쩌다 보니 나이도 제법 찬 상태였고 기냥 성격도 무난해 보이고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결혼을 하게 되었거든요.(신랑은 잘 모르겠지만 전 그랬었요.)
그리고 지금까진 그런대로 잘 지내왔던 것같아요. 심각하게 싸울 일도 없었구요. 일단 신랑이 저보다 6살 많다는 점에 있어서 제가 한 수 접고 들어가서인지 아님 신랑이 절 봐줘서 그런지 싸움도 안되더라구요. 뭐 둘다 워낙 좋은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넘기기도 하니까...
사실 문제 삼을려고 들자면 한두가지가 아니죠.
저요 매주일마다 시댁에 가요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문안인사하구요(무슨 일이 있어도 7시엔 전활 드려야지 안그러믄 10~20분 안에 우리 어머님이 전화하시거든요.) 그리고 막내 며느리지만 형님이 직장생활을 하시고 지방에 계시기 때문에 비록 같은 지역에 살지만 시댁까지 1시간 이상(자동차로, 대중교통이용시 2시간 이상 소요)되는 거리라도 제사나 무슨 집안 경조사엔 제일 먼저 달려가 대기하고 있어야죠. 그외에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제일 먼저 막내 찾으시는 어머님이시니 달리 말할 것도 없겠지요?
사실 전 결혼 전에 일이라곤 거의 해보질 않았어요. 흉이라면 흉이겠지만 작은집에 차남이고 거기다 친가에선 모두 교회에 다니다 보니 제사상 차리는 건 거의 구경도 못해보고 시집와서 좌충우돌 이리저리 어깨너머로 배우고 있는데 저희 시댁은요 상반기에는 설을 중심으로 제사 및 경조사가 대여섯개 몰려 있구요. 또 하반기에는 추석을 중심으로 갖은 경조사가 예닐곱개 또 몰려 있어요. 뭐 우리 형님 말씀이 결혼전에 자기나 나나 결혼 전에 일 없이 자라서 이제 결혼하니 일많은거라고 말씀하시며 쓰게 우스시지만 사실 전 일이 많다거나 자식들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시어머님이나 안그런 척하지만 은근히 신경쓰이게 하는 형님이나 사실 다 별루 맘에 담고 사는 성격이 아니라 그런지 별루 힘들다거나 시집살이 한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그런데 제가 견딜 수 없는 건요. 저의 남편의 태도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거예요. 그냥 모든 게 당연하다는 거죠.
이번 명절때만해도 그래요. 어머님, 형님, 저 그러니까 며느리라는 꼬리표가 달린 사람들은 그 무지막지한 노동을 제공하고, 끝도 없는 기다림과 피곤함과 지친 몸을 희생시켜야 다른 모든 일가 친척들이 즐겁고 재미있는 명절이 된다니.
그러면서 저의 신랑 아주 작은 일 하나 도와 주면서 온갖 생색이란 생색은 다내고 하는 말이 너무 민주적인 가정이라나요? 나 참 기막혀서...
서로 몇십년간 자라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저랑 신랑은 자라온 환경이 너무나 하늘과 땅 차인 걸요.
신랑은 정말 무쇠팔 무쇠다리 철인과 같은 시어머님 덕에 정말 손가락하나 까딱은 커녕 부엌 근처는 구경도 못하면서도 철따라 계절따라 입맛따라 온갖 국이며 맛난 음식을 입에 달고 자랐는가 하면(참고로 저의 신랑은 국물 종류가 없으면 절대 밥을 안먹어요. 그것도 두끼 이상 같은 종류의 국물요리가 나오면 안먹으러 들구요.) 전 그야말로 어려서부터 아래로 있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자기 운동화며 청바지를 초등학교 다닐때 부터 스스로 빨아 신고 입으며 자랐지요. 사실 결혼 전엔 두 남동생들이 저보다 음식 솜씨가 좋아서 가끔씩 해달라고 졸라서 먹고는 저는 설겆이만 하면 될 정도였거든요.
처음엔 저도 결혼을 했으니까 또 전 하루종일 집에 있고 신랑은 밖에서 돈을 벌어 오니까 그리고 나이차도 있으니까 그러면서 하나둘 참고 참아 가며 그려려니 뭐 나보다 잘난 여자들도 그렇게들 맞춰 산다는데 뭐 중뿔나게 굴것도 없지 않나 싶기도 했지요.
그런데 일이 많아서도 시댁 식구와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라 그냥 내가 한지붕 아래서 같이 자고 밥먹고 사는 사람이 나의 노동이나 인내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하고 싶지도 않다는 겁니다.
더군다나 설 명절 끝에 시아주버님네 가족과 시누이네 가족이랑 여행을 가자는데 솔직히 별루 달갑지 않더군요. 사실 거기 가서도 다른 식구들이 다 즐겁게 놀아도 저에게 그 치닥꺼리가 먼저 떠오르니 가고 싶은 생각이 들겠냐구요. 그런 제 눈치가 보였는지 가기 전에 하는 말이 '놀러가서는 남자들이 다 하는 거'라며 정말 자기가 알아서 다할 것처럼 안심을 시켜 놓더니 역시 화장실 가기 전과 후가 다르다고 일단 설겆이는 전적으로 내차지고 식사 준비도 형님과 나, 스키 탈줄 모르는 게 죄지 어리 4명의 조카들이랑 저녁 먹고 놀아 주는 것도 모두 나 혼자 차지라는 거 아닙니까? 거기다 이틀째 저녁엔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더니 야간스키 타고 놀다오는 자기들 안기다렸다고 한마디씩.삼일째 되는 날엔 무릎을 다쳐 절룩거리고 서있기도 힘든데 참 사람좋은 우리 신랑 자기 마누라 죽어나는 줄은 생각도 안하고 점심 준비를 따로 해서 갔다 준다나 어쩐다나 그래놓고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도시락 다 싸놓으니 들어 와서는 좀 도와 주지 않았다고 한마디 하니까 자기가 놀다 왔냐며 뭐 리프트권이 어쩌고 저쩌고 _그 일이 사실 우리 신랑이 아니면 안되는 일이었다면 제가 그렇게 화나고 억울하고 서럽지도 않았을겁니다._
어쨌든 앞도 뒤도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보았지만 그래도 아직 마음이 다 안풀리네요. 여행 다녀 와서 정말 보기도 싫고 너무너무 밉기만하고 그러네요. 아직 말도 제대로 안하고 있어요. 제가 너무 성질이 못되서 그런 걸까요? 정말 신랑의 생각이나 태도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는 없는 건지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 제발...
두서 없는 글 읽어주시느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