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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고 했는데...라는 말이 무색해질때...


BY aeto 2001-02-23

주말에 시댁에 다녀오는 길에 남편이랑 말싸움을 했답니다.
둘다 강아지를 좋아해서 한마리 키우고 있는데,시댁엔 어렸을 때 한번 데리고 갔었고, 많이 컸으니 남편이 또 한 번 보여드리자고 해서 데려갔죠.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따~아...
예상했던 일이지만,고만고만한 남자 조카애들이 셋씩이나 되는 관계로 우리 강아지는 이리저리 끌려다니며,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엄청 쫄아있었답니다. 그걸 보니 너무 안쓰러워서 제가 좀 안고 있었죠..

그때 주방에서 작은 형님이 튀김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갑자기 남편이 "니가 좀 하지 그러니?" 그러는 거에요..짜증섞인 말투로...

엄청 기분 나빴죠.그래도 내색 안할려구 제가 가서 했더랬어요. 자기두 자기가 한말 뉘앙스가 이상한걸 알았는지, 옆에와서 미안타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럴 수도 있지 뭐 하고 용서해 줬죠.

돌아오는 길에 아까 왜 그렇게 짜증이 났더랬냐고 물어보니,일은 안하고 강아지만 안고 있는 걸 보니, 자기집 식구들이 뭐라할까봐 걱정이 되더래요. 전 결혼한지 1년 됐거든요. 그동안 시댁가서 꽤 부리구 일 안한적 없어요. 친정엄마가 절대 그러지 말라구,시댁가서 몸 사리면 나중에 뒷말 난다구.. 그래서 나름대로 팔걷어 부치고 일했어요.

근데, 강아지 잠깐 안고 있었다고 잘해보려던 그간의 노력들이 다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려 속상했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나두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그런 말 들으니 참 섭섭해" 그랬더니 남편 하는 말...결혼한지 1년 밖에 안됐는데, 뭘 그렇게 했다고 내세울게 있냐고...

갑자기 그가 그렇게 남처럼 느껴질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그동안 시댁을 위해서 뭘했을까 생각해 봤어요.

멀지만 최소한 한달에 한 번씩은 찾아가 뵈었고, 일주일에 몇차례씩 문안전화 드리고, 명절이랑 생신때,시부모님 생신, 남편 누나생일, 형님 생일들...선물에 카드까지 다 써서 드렸더랬어요.
새댁이 뭐 할 줄 안다고 칠십이 다 되신 시어머님 내 어머니처럼 생각하니 내가 뭘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설날 혼자 음식 만드실 일 안쓰러워서 시댁가기 전날 식혜 만들어 싸들고 가고...
그것도 계산적인 생각이 아니라 정말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서요.

그런데 1년이 된 지금...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니 앞으론 그렇게 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은 뭘 그렇게 했냐는 말이나 들으니, 그동안의 나의 진심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남은 남인가 봐요.
선물 주고 잘해줘도 그때뿐이고, 시간이 지나 섭섭한 일이 생기면 섭섭한 마음만 남을 뿐이니까요...

--- 앞으로 시댁식구들에게 잘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는 새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