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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다


BY ... 2001-04-09

남편과 내가 처음 만난건 내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취업을 나가 몇달도 되지 않았을때였다.

벌써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땐 참 어렸지 싶다. 주위의 수많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해 우린 동거를 시작했다.

집에서 나와 기숙사 생활을 하며 난생 처음 하는 타지생활에

힘들어하고 있던 내게 남편은 흑기사처럼 느껴졌다.

일년..?이년...? 오래되서 잘 생각도 나질 않는다.어느날

퇴근해서 내가 저녁을 하는동안 머리를 자르고 오겠다며

나간 사람이 한시간이 지나도 두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는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의 친한 회사동료가 전화를 걸어

남편이 다쳐서 지금 병원 응급실에 있다는것이다.

정신없이 병원으로 가보니 다행이 턱이 조금 찢어졌을 뿐이었다.

미용실 앞에서 넘어졌다고 했다.

난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그것이 간질발작때문이었을줄이야(나는 그때 간질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살면서 끝까지

숨길수있는 것이 아닌데 죽어도 그런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나보다.

어느날은 머리가 아프다더니 갑자기 화장실로 들어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너무나 놀라 문을 열어보니 좁은 화장실바닥에

누워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무생각도 할수가 없었다.119에 전화를 걸어 응급차를 불렀다.

구급대원이 오더니 그때까지도 의식을 못찾는 남편을 보며

"간질인것같습니다." 나는 의식을 차릴때까지 마냥 울었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안쓰러움과 연민 뭐 그런것들만 느꼇다.

남편은 미안하단 소리를 한번도 하질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왜 내게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할 엄청난

짐을 주었냐고 수십번 수백번 원망했는데...

간질에 술과 피로는 독과도 같다.

그런데 남편은 사람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남들(정상인들)과

똑같이 하고 다니려고 해서 늘 싸우게 된다.

이젠 아이까지 두 식구가 딸린 몸이니 제발 몸생각좀 하라고

애원하다시피 해도 들은체도 하질 않는다.

옛날에야 그저 마냥 좋아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를 위해줄줄 모르고 화내고 몰아붙이기 일쑤인 요즘

지겹다는 생각까지 든다.

내가 도대체 뭣땜에 이사람과 살고 있는걸까.

밖에 나가 잠시라도 연락이 안되면 나는 피가 마른다.

전화해서 왜이리 늦냐고 물으면 "내가 지금 놀아?

하면서 화를 버럭 낸다. 그렇다고 절대로 먼저 전화를

하는 일도 없다. 제발 밖에 나가면 전화좀해라

부탁을 하면 어떻게 일일이 보고를하고 다니냐고 짜증을 낸다.

더구나 남편은 지금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출장수리를

하는 일이라서 걱정은 두배이다.

만약 오토바이를 탄중에 발작이 오기라도 하면...

오늘처럼 술마시고 들어온 다음날은 하루종일 가슴을

졸이며 혹시?혹시?하면서 걱정을 한다.

내일도 그럴것이다.

원망스럽다. 너무 힘이든다.

자식에게도 대물림되는 병 ..

두렵고 무섭다. 내아들 혹은 내손주가 그런 모습을

보일 날이 올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