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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나쁜 며느리 할랍니다.


BY 이기주의자 2001-04-19

그냥 누구한테든 털어놓고 싶어서 끄적거리겠습니다.
저 여태 26살이 되도록 '착하다'는 말만 듣고 살았습니다.
친정부모님도, 친구들도, 회사직원들도, 남편도...
그리고 결혼해서 시댁식구들에게도...
근데 전 여태 '착하다'는 말이 칭찬인 줄 알았어요.
전 제가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면 참았었죠.
나중에는 알아주겠지...
하지만 '착하다'는 말은 욕이었습니다.
시키는대로 다하고 참 멍청한 애구나... 이런 소리였죠.
항상 웃고 네네... 거리니 얼마나 우스웠겠어요.
쟤는 뭔말을 해도 웃으니까 놀려먹어야겠다... 이랬던거에요.
전 '착하니까' 당연히 시부모를 모셔야했습니다.
남편이 원하고 시부모님이 원하니까요.
이한몸 바쳐서 울 남편 울 시부모를 열심히 공경하고 사랑하자...
근데 1년 6개월만에 전 결심했습니다.
'나쁜 사람'이 되기로요.
저보다 10살이 넘게 많은 큰형님은 시부모님과 사이가 좋지않아요.
'나쁜 며느리'죠.
하지만 그게 훨씬 현명한 방법이었어요. 나쁜며느리가...
저 말대꾸 한마디 하지 않고 열심히 일다니고 살림하고 부모님모셨죠.
형님... 멀리 사시면서 전화한통 하시지 않고
아주버님벌이로 살림하시면서 취미생활 즐기시고,
시모한테 바락바락 대들었죠.
근데요... 항상 대접받는 건 형님이랍니다.
아무도 형님한텐 꼼짝도 못해요.
뒤에서 욕은 하지만 앞에만 서면 헤헤거린답니다.
전 어딜가나 부엌데기고요 동네북이죠.
이제는 좁은 집(18평에 5명)에 40먹은 시누이가 들어와 산답니다.
저한테 한마디 말도 없었고...
한마디 상의라도 해줬더라면 저랑 남편...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거에요.
항상 어리다 어리다 하며 결정권은 하나도 주지 않던
아주버님과 시누이들, 시부모님...
그러면서도 외식때가 오면 으례 저희가 사는 줄 안답니다.
명절 모임 때 고기하나 과일하나 사오시는 분 안계시고,
저희집에 방문하신다고 하면 회와 갈비, 해물탕은 기본으로 있어야 하죠.
없으면 밥상에 오지도 않으세요.
부모님 모시고 외식하려면 누님들이 모두 오시죠.
다 참았어요.
당연한 거라고... 난 '착하니까'... 웃기죠.
저 형님 미워한 적 없어요. 시누이들도 그랬죠.
시부모님... 감히 어떻게 미워해요?
근데... 생각을 바꿨습니다.
아버님 명의로 된 집...
그 집에 시집오면서 모든 가구, 가전제품 새것으로 바꿔드리고...
저희 생활비며 용돈이며 아깝지 않게 썼었죠.
경제력없는 시부모님... 안타까우니까 더 잘해드리고 싶었고.
근데 이번에 시누이가 온다더니...
저희를 이집에 얹혀사는 사람들로 만들어버리더군요.
저희한테는 아무런 결정권도 없었던거죠.
'착하니까' 이용만 당한 것 같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비참할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 시누이가 본격적으로 산다고 하면
저희 세식구 나가기로 어제 남편이랑 합의를 봤습니다.
이젠 저희 셋만 생각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이젠 정말 착하다는 말 지긋지긋 해요.
누구보다도 악한 며느리로 살겠습니다.
'저 년이 저렇게 변할 수가...(시누이들이 이년 저년해도 웃고 있던 접니다)
이런 소리 꼭 듣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되기까지 상황을 다 적지는 못했지만...
용기 좀 얻어볼라고 이렇게 지루한 글을 올렸어요...
죄송합니다.
오늘... 남편이랑 KFC가서 외식하고 들어갈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