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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 스스로에게 미안해.


BY 나는나 2001-04-23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어쨌든 또 이렇게 아침은 밝아오고, 새로운 하루가 우리에게 주어졌네요. 오늘 하루도... 잘 살아야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자주 이곳에 들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오면 저보다 더 많은 고통을 안고 살아계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제가 가진 고민들은 그저 좀더 나은 사람이 되라는 시련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조금 우습기도 하네요.

결혼한지... 이제 4년입니다. 2년 연애기간 후에 한 결혼이지요.
신랑은 매우 좋은 사람입니다. 성실하고, 절 사랑해 주고, 이해심 많고... 이런 사람 다시 없지 하는 마음으로 감사 하려고 합니다.
시댁 부모님들도, 남들 보기에는 다 좋으신 분들입니다. 스스로도 자신들이 좋은 시부모라고 생각하고 사십니다.


그런데... 가끔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는 이 감정의 덩어리는 어쩔 수가 없습지다. 결혼한지 4년이지만, 제 나이 이제 27살입니다. 신랑도 동갑이구요. 신랑이 결혼하고 한참을 신랑은 학교를 다녔습니다. 군대는 면제가 되었지만,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직장을 잡느라고 그랬습니다. 그동안 저는... 직장 다니면서 살림했습니다. 물론 학비는 시부모님께서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밖에 모든 살림은 제가 직장 다니면서 번 돈으로 해야 했습니다. 크게 능력있는 사람은 아니라서, 펑펑 벌어 잘 살지는 못했지만, 남들 버는 만큼은 벌어 나름대로 잘 살았습니다. 부모님 용돈 드린다는 생각은 안했지만 (아직 시부모님들이 젊으십니다. 두분다 아직 사회생활을 하십니다) 손 안벌리고, 공부하는 신랑이랑 사는 저... 칭찬받을만하다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저의 지난 날들이 다 부질없이 여겨집니다.
저희 부모님은 지방에 사시는데, 일요일 조카 결혼식에 가시려고 주말에 올라오셔서 하루 주무시고 가셨습니다. 자식들 불편하다고 오래는 안계시는 분들이십니다. 오셔서, 이제 아이를 낳으라고 하십니다. 결혼한지 4년인데 아직 아이가 없으니 손주를 보고싶으시겠다 하고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이제 직장들어간 신랑.. 돈 저보다 조금 받습니다. 원래 넉넉히 살던 사람들도 아니니.. 없는대로 살면 되겠지 싶지만... 원래 저희 계획대로라면 다음 학기에 제가 공부를 시작할 차례였습니다. 서른 까지는 조금 어렵더라도, 서로의 발전을 위해 살자는게 애초의 계획이었고, 시부모님도 동의하신 바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들이 학위를 따고보니... 마음이 그렇지가 않으신가 봅니다. 여자가 공부는 많이 해서 뭐하냐 하십니다. 아이를 낳으면 맡길 데가 없어서 아직은.. 이라고 말씀 드렸더니 너희 친정엄마는 집에 있는 사람이 애도 안봐주냐 하십니다. 저희 친정엄마... 2년전 교통사고 당하셔서 겨우 걸어다니시는 분입니다. 다 아시는 분들이건만... 속상한 마음 누르고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이번엔 딴 며느리들은 돈 만 잘 벌어서 애들 맡기고 잘만 사회생활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저희 신랑... 그렇게 잘난 아들인지 몰랐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잘난 아들.. 그게 바로 저희 신랑이더군요.
이번에 석사 끝내고, 원래대로라면 박사를 들어가려 했었습니다. 저희 생각이 아니라 부모님 생각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어디 먹고 사는 일이 간단한 일입니까? 그냥 취업 했습니다. 우리 시부모님 그게 불만이십니다. 하던 김에 계속해서 공부 마쳐야 한다고 아쉬워하십니다. 능력있는 여자랑 결혼시켰으면 편안하게 공부 다 했을거라고 생각하십니다. 저희 도련님 이번에 결혼시키실려고 중매처 알아보시는데, 돈 많은 집 딸이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제 앞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야 편안히 살지.. 안그럼 너희들처럼 고생한다구요. 돈이 없다는거.. 이렇게 서러운건지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결국... 저는 돈도 별로 없는 집 딸이, 능력도 없어 돈도 잘못벌고..
그래서 자기 아들 공부도 못시키는 주제에, 뭐잘났다고 아들돈으로 공부 한다고 나서는걸로도 모자라서 애도 안낳는 그런 며느리 입니다.
우리 신랑은 신경쓰지 말라고 합니다만.. 며느리 되시는 분들은 다 알고 계시겠지만, 어디 그렇게 됩니까?

전.. 정말 제가 이렇게 바보 같이.. 멍청이 같이 살지 몰랐습니다. 나름대로 똑똑하고 현명하게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엄마 아빠한테는 둘도 없는 딸이, 누구보다 영리하고 귀했던 그 딸이 이런 대접 받고 살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어... 자연히 전화도 안하게 되고, 피하게 됩니다. 엄마 많이 아프시다는데... 약값 한번 못드리면서, 이번에 내려가시는 시부모님들 선물은 했습니다. 시누이 면접 볼 때 입으라고 비싼 옷 사주면서, 아르바이트하며 학교 다니는 제 동생 용돈 한번 마음 놓고 준 적 없습니다. 정말... 제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 좋은 날이 오기는 오는 걸까요?

공부 좀 해볼려고 한다니까.. 저희 시어머니.. 친정에서 가져다 하라십니다. 신랑이 죽어도 그건 안된다 했다니까... 신랑 몰래 하랍니다. 정말 이런 날들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