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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비감


BY yut 2001-05-09

난 딸만 있는 집의 맏이다. 엄마가 6년동안 아이를 못낳다가 내가 태어난지라 엄청 귀여움 받고 학교 다니며 공부도 제법해서 더욱 그랬다.
솔직히 내 성격은 아주 내성적이고 고집불통에다가 한번 아니면 아닌 별로 좋지 않은 성격이다.
직장생활하면서도 상사에게 아부하면 죽는 줄 알고 동료들과 똑같이 대했다.
나 하나 잘하면 되는 것이지 누구에게 잘보이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다.

그런데 눈에 콩깍지가 씌어선지 한 성깔하는 남편을 열심히 쫓아다니고 지금도 꼼짝도 못한다.
남편 형제들 모두 성격이 보통이 아니다. 아래로 갈수록 좀 완화된 듯 보이긴 하지만...
남편과 그 누나가 쌍벽을 이룬다고나 할까?
그런 그 누나가 바로 이웃에 산다. 남편 결혼하기전에 누나랑 살았는데, 하는 행동이 똑같다. 결혼전에 몇번 봤고 밥도 사주었는데 인상이 무지 차가와 보였다. 그냥저냥 할노릇은 하는것 같은데도 그냥 정이 안간다고나 할까?
친정에 정말 소홀한 남편은 (그것 때메 이혼도 생각했다) 매주 주말에 누나에게 밥 같이 먹자고 전화한다.
밥한끼 안해도 되는 것에 만족하긴 하지만 밥 먹는 내내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나마 30개월된 아들이 재롱을 떨어주어서 그렇지 정말 썰렁하다.
나 때문일 것이다.

누나 남편은 내가 보기엔 정말 좋은 사위감이다. 부러워 죽겠다.
시동생 취직도 좋은 곳에 시켜주고 (그래서 우리집에 같이 살게 됐다네)울 남편이 자기네 차를 써도 아무 소리도 않는다. 속으론 욕할 수도 있겠지만..
난 이렇게 시댁과 얽혀 사는데 형님은 시댁쪽과는 거의 왕래를 끊고 산다. 그쪽 사람들이 싸가지가 없단다.
내성적인 형님 남편은 치매걸린 자기 아버지도 혼자 보러 다닌다.
형님 최근들어 절에 열심히 다니던데 좀 나아지려나 모르겠다.

시집식구들이 자주 드나드는 편인데 그때마다 같이 식사를 한다.
시댁이 시골이라 맏이인 형님이 동생들을 많이 돌본것 같다. 그래서인지 집안의 가풍이 형제간의 서열을 철저히 따져서인지 시누이들이나 시동생이 형님을 하늘같이 안다.
난 완전 왕따다.
그러면 난 그런 모습을 봐야하는 그런 모임에 내가 있다는게 너무 싫다.

그냥 결혼은 남자 만나서 한 가정을 꾸미고 사는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무나 내 일이 아닌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해야 할 때 절망감이 든다.
직장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힘듬이다.
그때는 내가 돈을 받기 때문이라 참을 수 있었는데, 무조건적인 노동(?)을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받으며 하려면 정말 힘들다.

그래도 내가 최악은 아니지 싶어 그냥 산다.
단지 결혼의 실체를 모르고 살았던게 잘못이지 하며 산다.

그나마 내가 좋게 생각하는 시누이 보며 참고 산다.
물론 그 시누이도 시댁과 얽혀서 살진 않지만 시댁에도 잘하고 친정에도 잘하고 남편도 하늘같이 여기고 그렇게 산다.
똑똑하고 생활력도 있지만 그렇게 참고 사는걸 보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라는 의심 섞인 희망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