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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서방을 팝니다.


BY 386아줌마 2001-05-16


저도 어디선가 퍼온 글입니다.
정말 공감이 가길래 속상해 하는 아줌마들 읽어보시라고 올립니다.


서방을 팝니다

헌 서방을 팝니다

반 십 년쯤 함께 살아

단물은 빠져 덤덤 하겠지만

허우대는 아직 멀쩡합니다.


키는 6척에 조금은 미달이고

똥배라고는 할 수 없으나

허리는 솔찬히 굵은 편,

대학은 나왔으나 머리는 깡통입니다.


직장은 있으나 수입은 모릅니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출근하고

밤늦게 용케 찾아와 잠들면 그뿐.

잔잔한 미소 한 번,

은근한 눈길 한 번 없이

가면 가는 거고 오면 오는 거고.

포옹이니 사랑놀이니

달착지근한 눈맞힘도

바람결에 날아가버린

민들레 씨앗된 지 오래입니다.


음악이며 미술이며

영화며 연극이며

두 눈 감고 두 귀 막고

방안의 벙어리된 지 오래입니다.


연애시절의 은근함이며

신혼초야의 뜨거움이며

생일이며 결혼기념일이며

이제는 그저 덤덤할 뿐,

세월 밖으로 이미 잊혀진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일 뿐,

눈물방울 속에 아련한 무늬로 떠오르는

무지개일 뿐, 추억줄기일 뿐.


밥 먹을 때도 차 마실 때도

포근한 눈빛 한 번 주고받음 없이

신문이나 보고 텔레비나 보고,

그저 덤덤하게 한마디의 따근따끈한 말도 없고.

매너도 없고 분위기도 모르는지

그 흔한 맥주 한 잔

둘이서 나눌 기미도 없고.

일요일이나 공휴일의

들뜨는 나들이 계획도

혼자서 외출하기, 아니면 잠만 자기.

씀씀이가 헤퍼서 말도 잘해서

밖에서는 스타같이 인기 있지만

집에서는 반 벙어리,

자린고비에다 술주정꾼.

서방도 헌 서방이니

헐값에 드립니다.


사실은 빈 가슴에 바람 불고

눈 비 내리어

서방 팝니다, 헐값에 팝니다,

주정거리듯 비틀거리며 말은 하지만

가슴에는 싸한 아픔

눈물 번지고

허무감이 온몸을 휘감고 돌아

빈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서방 팝니다.


헌 서방 팝니다며 울먹입니다.

흩어진 마음,

구멍이 송송 뚫린 듯한

빈 가슴을 추스리며

안으로만 빗질하며 울먹입니다.



-------------------------- 이향봉 시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