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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해도 너무 하네~


BY 당근 2001-06-07

저 오늘 낼 하는 임산부입니다.

오늘 낼 오늘 낼 .... 하루하루가 불안해서 어디 멀리 가지도 못하고 조금만 통증이 와도 침대에 누워서 꼼짝 않는 막달 임산붑니다.

저는 어쩌다보니 남편 회사 사람들과 비슷비슷한 지역에 모여살게 되었습니다.
사모님을 필두로 모임을 가졌습니다.
저 그 모임 정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생산적인 모임이 아닙니다.
모여서 호호호 맛있는거 사먹고, 부장님 사모님과 몇몇 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자기자랑을 듣다가, 헤어져서 서로 욕하는 모임입니다.

궁시렁궁시렁 그 속에는 말도 많고, 웃긴 일도 많습니다.
남편의 회사생활에 지장이 있을까봐 할 수 없이 나가고는 있지만, 전 그 모임을 생각하면 머리에서 쥐가 납니다.

사모님이란분, ... 사장님 사모님이 아니고 부장사모님입니다.
부장님 사모님... 그 모임에 목숨 거십니다.
아랫것들 모아놓고 당신 자랑하는거 무척 즐기십니다.
그 모임을 남편의 출세에 한몫하는 모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아랫것들은 사모님에게 잘해야 하는거지요.

그렇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겟머리 송사가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건 아니겠지만, 회사일에 아내가 이러쿵저러쿵 해서 아부 안하는 일부 싸가지 없는 (저같은) 아랫것의 남편의 회사생활을 어렵게 만든다면 그 부장님도 능력 꽝인 사람 아닙니까?
정말 능력있고, 현명한 상사라면 아래 부하직원의 능력을 보지 그 마누라의 아부능력을 보고 인사를 단행하거나 괴롭힘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거나, 왕따 시키지 않거나 하겠습니까?

전 아부..하고 싶지도 않고 조용히 모임에만 참석했다가 조용히 집에 돌아오는 사람인데..그렇다고 회사일에 이러쿵저러쿵 아는척을 하는 것도 사람들과 입마주대고 앉아 그네들처럼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저떻네..하고 말하는 사람도 아닌데, 어느날부터 이런 저를 갈구기 시작하더군요.

뒤에서 욕하고..
자기들은 저한테 해준거 하나도 없으면서 바라는건 무지하게 많습디다.
남편의 나이 많음이 무슨 벼슬이라고 입사년수 반년 빠른것까지 행세를 하려고 드는데 정말 사람 돌기 일보 직전입디다.
저 그렇다고 그 분들에게 버릇없게 말 퐁당거리면서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입사년도 1년 빠른 사람들의 마누라들까지...저를 부려먹는걸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걸핏하면 심부름 시키고, 시장 갈 일 있으면 너 갔다 오는길에 뭐 좀 사다가 우리집에 들러 놓고 가라...나갈 일이 없는데도...자기가 갔다오면 될 것을 저한테 전화걸어 뭐 사가지고 갔다달라..

어이 없음.

이건 완전히 자기네 종년 부려먹듯 하는데...어쩔땐 돈도 안줘요.

그래서 한번은 모른척하고 하지 않았더니..싸가지 없다고, 버릇없다고 뒤에서 얼마나 욕을 해대고 앞에서 나이많은 아줌마들이 사람을 비웃는데...이건 배운 사람들이라 할 수가 없을 정도라니까요.

자기들이 일류 명문대를 나왔다고 자랑하면 무얼합니까.
집에서 먹고 할 일이 없으니까 머리는 그런 쪽으로만 돌아가고, 그저 대우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마냥 뭐 좀 부려먹을거 없나 눈이 반짝반짝한데..

이젠 오늘낼, 오늘낼, 하는 상황이니 좀 편해지겠구나 싶었더니..글쎄 그 모임을 또하자고 하는군요.
누구 끔찍히 생각해 주는것처럼 배가 남산만해가지고 잘 걷지도 못하는 저..아파도 그 모임에 꼭 나가야 합니다.

왜인지 아세요?
안가면 괘씸죄에 걸리거든요.
명령에 복종하나 안하나 그 사람들 머리엔 온통 그 생각뿐이랍니다.
사람의 상황이 어찌되었건, 그건 안중에도 없어요.
너무나 높고 고귀하신 몸들이기에 당신들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노발대발...나이 나오고, 신분 나오고 심지어는 남편의 출세까지 운운하면서 협박아닌 협박을 하지요.
그것도 고상하게 살짝 미소를 띄우고 조용조용하게..

끔찍합니다.

나도 남편이 부장되면 그래서 부장 싸모님 되면 아랫것들 불러 모으기 좋아하고 명령에 복종하나 안하나 고것만 세고 앉아 있는 싸모님이 될까요?
아~ 남편이 부장되기 전에 회사 떠나라 하고 싶군요.
회사의 앞날과 이나라의 앞날과 저 자신의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능글맞게 나이먹고 싶지 않습니다.

대우 받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과연 대우받을만한 사람인가 먼저 생각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아랫것들 불러모아놓고 서투른 자랑 늘어놓기 전에 아랫것들의 불편함이 뭔지 먼저 살펴보아 주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나이를 먹는것은 그만큼 책임도 따르는 일이 아닌가요.

고명하신분들 모시고 사는 이 아랫것.
남산만한 배를 움켜안고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진통이 와서 길바닥에서 뒹구는 한이 있더라도 그분들이 명령에 복종해야하지요.

남편왈.

먹고 할 일없는 어편네들.
그 모임에 나가지 마라.
너 그 모임에 안나가고 나 회사생활 괴롭지 않다.
누가 그러든? 너 명령에 복종 안하면 내가 괴롭다고.
가서 전해라 우리 남편이 그런말 하는 사람 뭘 모르고 하는 소리래요..이렇게.


남편이 부장이면 마누라님도 부장이고, 남편이 과장이면 마누라님도 과장이고, 남편이 대리면 마누라님도 대리고..

정작 사장님 싸모님은 어떤분일까요.

그 회사의 오너도 아닌 사람들이, 당장 내일 잘릴지 낼모레 짤릴지 알 수 없는 같은 처지 하루살이인 월급장이 마누라 들이 정말 해도 너무하네요.

그래 있는동안 실컷 행세해라~
너네가 나한테나 이렇게 행세하지 어디가면 너네 이름 석자 알아주는 사람 있더냐?
그렇게 해서 뭔가 높은 신분에 오른것같은 착각이 마구마구 밀려와 잠시라도 행복하다면 계속 해라~

맘속으로 그들에게 말합니다.

아이가 나오면 좀 나아질까요.
남편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불안해서 나가긴 나가는데.....

아~ 대한민국의 직장생활 .
별 희안한 것까지 신경쓰게 만들고..
이땅을 떠나고 싶네요~

시어머니들이 하도 많아서 이젠 아예 무섭습니다.

애 낳는날도 호출하면 어쩌나..낳다가 못갔다고 괘씸죄를 지우는건 아닌지... 애가 아프다고 해도 부를 사람들이라니까...

정말 속상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