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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먹든지 말든지


BY 상스런 여편네 2001-06-23

친정 어머니가 암 중기 진단을 받았다는 전화를 받고서 충격 받은 저녁나절. 그냥, 관절염약의 부작용이거니 하면서 만약을 몰라 검사 한 번 해본 것이 이런 결과일 줄이야... 그놈의 관절염때문에 웬만한 부위는 등한시한게 잘못이엇을까., 아니면 자식들 걱정 안 시키겠다고 있는 통증도 없는듯이 무작정 감추기만 하신 어머니의 사랑법을 탓해야 할까, 하여간 즉시 내려와서 노부모님을 모시고 서울로 올라가겠다는 남동생의 대답을 들어놓고 있자니. 눈물이 한없이 흐르고, 손발에 힘이 쑥 빠지고, 아무런 경황이 없었다.
웬만하면 한 잔 하고 들어오길 잘하는 남편, 이날따라 웬일로 일찌감치 들어왔다. 왜 울었느냐고 묻기에 어머니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구 이런, 진작 알았어야지, 딱 그 한마디 하고는 뭐 다른 일에 열중해 있다. 근데 나는 밤에 교육을 받으러 다니는 중이다. 벌써 4개월, 이제 마무리 특강 단계이고 이걸 빠지면 여태 교육받은 보람도 적은지라, 남동생 도착할 시간도 남아있고 해서 잠시 갔다 오기로 했다. 남동생이 와서 나를 싣고 친정집으로 간다 했으므로.
대충 출석만 따지고 오는 길에 엄마 아버지 잡수실만한게 뭘까 하고 시장 한바퀴 돌고 집에 오니, 아이는 아직 귀가할려면 멀었고, 남편은 자는지 벨을 눌러도 문을 안 열어주었다. 한참이나 있다 열어주길래 들어가 보니, 그새에 나가서 한잔 걸쳤는지 아니 몽땅 퍼마셨던듯 벌겋고 정신이 몽롱하다. 세상에, 앞뒤 분간 못할 병적인 알콜중독이거나, 오늘의 좋지 않은 소식이며 나의 충격을 모른 상태에서 마셨다거나, 뭐 하나라도 되면 이해나 하지. 그 인간이 남으로 보여도 그냥 평범한 남이 아닌 징그럽게 꼴보기 싫은 남으로 보였다. 너무 화가 나고, 치사한 일이지만, 자기네 엄마 살았을때 내가 했던 것, 자기가 우리 부모한테 한 것 하고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있는 힘껏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도 잘하네 못하네 더해라 왜 더 안하고 그것만 하냐 갖은 타박 해가며 당연히 받기만 했던 과거와 비교를 하게 되었다. 속으로 비교하고 속끓이고, 그러다 엄마 생각하고 눈물짓고... 꼭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해갖고 손은 분주하게 내가 없이 맞이해야 할 내일 아침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남동생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동안 이 인간은 세상 모르고 술잠에 빠져있고...
남동생":어 누님 나야. 지금 집 근처에 왓어. "
나:알았어.나 다 챙겼으니 가기만 하면 돼.
남: 매형은 들어오셨어?
나:응.
남:근데 매형이랑 **내일 아침 밥은?
나:몰라. 지네 부자 둘이 굶지는 않겠지. 해 처먹든지 말든지...
남: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아휴, 아줌씨 웬 상스런 소릴...
나:몰라, 나도. 그냥 속상해서 나오는대로 말 한 번 해?f다.
남:차암, 매형 들으신 거 아냐? 평소에도 그렇게 말하고 살아?
나:몰라, 니네들이 뭘 알아.
남동생 어이없다는듯 웃었다. 나 속으로 말한다. 야 이놈아, 너네 매형 가끔 볼때 속 좋게 허허 웃는 것만 보니까 우리가 부부싸움하면 다 니 누이 성질 드러워서 하는 줄만 알고 있지? 그게 나의 알량한 자존심 세우기, 연기에 의해서 이날까지 잘도 유지되어온 거 니깟 잘난 동생놈들이 알게 뭐냐? 인간들아, 엄마 아버지 맘 안아프게 할려고 그냥 그러고 사는 부분도 많다는 말이여./ 그러면서 겉으로는 나, 또다시 그놈의 알량한 자존심을 완전히 내팽개칠 수 없는 꼴난 미련 때문에, 동생과 둘이 타고 달리는 차 안에서 또 이렇게 변명같은 마무리를 짓는다. 늙으니 참을성이 없어져서 그런지, 예전에 참아줄만했던 일도 확 입으로 뿜어내야 속이 후련하더라... 그러니 학식높고 인격 좋기로 정평난 동생놈, 충고랍시고 한마디 한다. 그래도 그렇지 뭔 소리여. 처먹든지 말든지가...
흥, 처먹든지 말든지 갖고 놀래냐? 싸우거나 화나 있는 상태로 내가 설거지하면서 내뱉는 욕설 들으면 고상한 네놈 기절하겠다? 그 욕설들은 여기다 다 못써. 방송은 아니지만, 젊은 새댁들 듣고 배울까 싶어서...
부조리한 삶의 구조, 몸으로 타파하지 못한채 이십 년을 견뎌내다 보니 나도 몰래 인간이 그렇게 돼 버렸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