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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자의 독백


BY 홍두깨 2001-07-04

십년동안 결혼생활을 하면서
난 당신의 아내이면서도 남편이 없는 여자가 되어 살아왔다.
당신...
내 마음을 알고 있는가..

옆에 있어도 없는것마냥.. 시집문제에 대해서 난 항상 외톨이었지.
숫제 남편이 없다면... 정말로 없다면 포기라도 하지..
옆에 있으면서도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않는 남자 옆에서
그래도 명목상 아내라는 자리에 있던 나는
가슴에 분노만 쌓으며 살고 있었다.

이해해 주지도... 그렇다고 힘들었을거라고 인정해 주지도 않는
남편..
시집과의 문제에서 다른 형제들은 아내를 대신해 변호하기도 하고
때론 부당함(부당함도 아니었지만)에 소리를 높이기도 했지만

정작 피를 토할일을 앞에 두고도 함구로 일변하는 당신..

나는 점점 미친X이 되어 더욱 더 예민해져서 악에 받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왜?

나를 지킬건 나 스스로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억울해 울고불고 하는 나를 당신은 그냥 외면했었지.

사는게 바빠서 힘이 들 때에도
때론 당신의 무관심에 몸과 마음이 병들어갈 때에도

그래도
나를 지탱해 주는건 내 밑에서 이쁘게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못난 엄마라고 욕하지도 않고 맑은 눈으로 엄마와 하나가 되는
아이들...
그 눈속에서 그래도 내가 새롭게 용기를 내서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발견하곤 했지..

그럭저럭 세월은 흐르고 많은 상처를 가슴에 안고 이제 낼이면 40이 되는 나이에 비로소 내 지난 시간과 지금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무엇보다도 당신에게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많았던 것 같다.

그동안 힘들었던 내 생활
잃어버린 내 꿈..
돌아갈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제는 여느여자처럼 아내의 자리에서 남편이라는
투명인간같은 사람에게 사람으로서의 정을 느끼고 싶었지..

그러던 어느날
내게도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정말
기적처럼 당신이 변했고
잠시.. 나는 행복했다.
내게도 평온한 가정이 생겼다는거...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깨고 싶지 않은 행복 같은 것이었어.

앞으로 이렇게 저렇게
꿈같은 미래도 설계하고
처음으로 스스로 나를 돌볼 수 있게 되었어.
여자로서...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지
당신이 여태껏 내게 보여준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기에
그냥 한 순간 반짝 하고 나타난 신기루처럼
빠져들면 금새 또 사라져 버릴 것 같았거든..

그런데...
어제부터 시작된 나의 우울은
다시 나를 과부 아닌 과부로 만들어 놓았네.

당신의 입장을 이해는 하면서도 왜 이리도 섭섭한 걸까..
한번도 내편이 아니라고 느끼면서 가슴을 후벼놓던
외로움이.. 다시 내 안을 가득 채우고
결국 또 피같은 눈물만 쏟아지는데....

시아버지의 편파..
그속에서 병든 나..

남편의 절대적인 무관심
그 속에서 죽어가는 나

도대체가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고
때때로 거대한 파도처럼 나를 휘감아
저 멀리 깊은 심연으로 나를 내동댕이치는데...

효자는 아니지만 불효자도 될 수 없다던 당신의 말
틀린말은 아니지만 기어이 내 가슴을 후벼파는 말이
되고야 말았다..

이제야 알았다.
당신을..

결국 당신에게는 병들어가고 지친 아내보다는
당신의 부모가 더 소중했다는 걸..

어느날 갑자기 변한 당신이었기에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꿈꾸었었는데
그건 나의 사치고 착각이었음을
이제사 알게 되었다.

난 당신이 나의 억울함을 같이 느끼고 있는 줄 착각한 거였다.
그래서 나를 마음아파한 것으로 생각하고
더 없이 소중한 사랑으로 마음깊이 받아들였는데...

나 혼자만이 인정했던 스스로의 자긍심을 벗어버리고 싶다.

그리고 그동안
잠시라도
나를 행복하게 했던 그 착각...
그 착각속에서 영원히 깨고 싶지 않았던 기억만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려 한다.

당신...
당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 행복해라.
당신의 부모밑에서, 당신의 형제안에서
날 만나기전의 지극히 행복했던 그 때로 돌아감을
이제는 서운치 않게 생각하겠다.

그리고
다시는
당신의 무관심에 대해서도...
당신 아버지의 편파에 대해서도...
당신 형제들의 이기심에 대해서도...
나는 입닫고 귀막고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는 묻겠지..
그렇게 살아서 무엇하냐고..

하지만 나는 대답할 말이 하나 있다.

내 안에서 생명을 잉태한 나의 아이들이
나를 보고 살고 있다고..

불행하다 생각들어 눈물 날 때면
그 아이들의 눈에서 행복을 발견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