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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BY 넋두리 2001-07-26

남편이 새벽부터 뒤척이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잠이 안오는군요.
저희 남편은 정말 효자입니다. 오늘 시어머니께서 허리수술 하시는 날이죠. 못내 걱정이 되어 새벽 5시에 집을 나서더군요.
그런데, 제 마음은 왜이리 서글픈 것일까요? 남편이 정말 싫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아주 나쁜 여자라고 생각할줄 모르지만, 사실 자꾸 나쁜 여자가 되어 갑니다. 남편이 끔찍이 시댁식구를 챙기면 챙길수록 전 적대감만 생깁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댁식구들과 원수처럼 지내는것이 아니라, 내키지 않지만 앞에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잘해줄려고 애를 씁니다.
이제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하죠.
저희 시부모님은 연세가 좀 있으십니다. 시누이는 5명이고 외아들이죠. 얼마나 귀하게 컸겠습니까? 그런데 의외로 남편은 막내이면서 외아들 티가 전혀 나지않고 의젓한것입니다. 착하고 속이 깊은것 같고 순순한 점이 좋아 결혼을 했죠. 하지만 결혼날짜가 잡히면서 남편의 이기적인 모습이 서서히 보이더군요. 특히 자기네 식구들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 자기식구가 잘못하는건 살다가 그럴수도 있는것이고 제가 그러면 어찌 그럴수가 있냐며 타박하죠.
이건 시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돈을 아끼면 여문것이고,
제가 돈을 아끼면 자기아들 용돈도 안주고 행여나 싸구리 음식 먹일까 노심초사 걱정하시면서 돈아끼지 마라 듣기 싫은 말씀을 하시죠.
시누이들도 어떻게 얘길했는지 좋은 음식 사먹이라며 말합니다.
정말 속이 터집니다. 저는 아낀적도 없고 특히 인스턴트는 물론이고
조미료도 안쓰면서 음식을 나름대로 정성들여 만드는데, 어찌 생각하는게 그정도인지....제 사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보여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사고 방식 삶의 방식 차이일수도 있지만, 옛날 옛적 전통적이 효부의 역할을 강조하니 신세대 사고를 갖고 있는 저로선 너무 힙듭니다. 며느리의 희생을 아주 당연시 여기닌깐요.
시댁가면 허리가 부러질세라 이일저일 다하고 좀 쉴려고 하면 어깨주물려라 하면서 쉴틈을 안주죠.
며칠전엔 시어머니 수술여부 검사를 하기위해 병원에 찾아갔다 길이 엇갈려 그 더운날 밥도 못먹고 왔다갔다하는 일이 있었죠.
어머니는 검사시간이 너무 늦어 잠시 시누이집에 있었는데, 저희 남편은 연락줄때까지 기다리라는 시누이의 연락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질 못하더니 결국 병원에 무작정 갔죠. 조금만 참았어도 헛걸음 하지 않았을것을 전 더위에 지치고 배도 고프고 더구나 길까지 엇갈려 짜증이 엄청 났답니다. 더 기가 막힌건 시누이집에 와서였죠.
전 이리저리 지쳐 밥먹을 힘도 없어 기진맥진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는 아들 미숫가루 타줘야 된다며 저보고 우유를 사오라고 하더군요. 남편이 저의 지친모습을 보고는 제가 갔다올께요 하니 넌 힘드니 여기 가만히 있으라며 니가 갔다오너라 하며 냉정히 말하시더군요.
너무 속상했습니다. 더구나 그날은 저희 친정어머니 생신까지 겹쳐 시집가서 첨 맞는 생신이라 제손으로 끓인 미역국이라도 드리고 싶었는데 시어머니 허리 검사때문에 저녁이 되어서야 친정에 갈수 있었습니다. 정말 눈물이 핑 돌더군요.
제 남편에게 물었죠. 만일 우리 엄마가 병원에 있어야 하고 내가 없으면 안될 상황인데, 시어머니 생신이면 어딜 가야하냐교 물었더니 대뜸 당연히 자기 어머니 생신이지 하더군요. 말이래도 어찌 저리하나 싶더라구요.
전 너무 잘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못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그냥 제가 할수 있는 한도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애를 쓰는것 뿐이죠.
제 친구는 요즘 너같이 시집살이 하는 애가 어딨냐며 혀를 두르죠.
제가 봐도 너무 바보처럼 행동하는것 같습니다. 저두 한번씩은 큰소리 치고 얄미운 며느리처럼 하고 싶어도, 막상 시부모 앞에선 마음이 여려져 잘해줘야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기가 죽어 그런건 전혀 아닙니다.
너무 지칩니다. 어젠 병실을 지키고 있는 시누이 김밥싸느라 새벽1시에 잤는데 4시간도 못자고 깼습니다.
모든게 다 싫습니다. 이젠 악이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