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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비참하다


BY 맹꽁이 2001-07-28

아, 비참하다.
어디서든 공짜 사은품 준다면
총알같이 달려가는 내 두 다리.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서
이젠 더 쪼개 쓸 수 없는 생활비.
튀어나온 뱃살에
허리 경계선 없어진지 너무 오래.
속이 상해 씹는 껌, 하루에 한 통
질겅질겅
껌씹으며 슬리퍼 끌고
미장원 안간지 1년된 머리, 핀으로 아무렇게나 올리고
짧은 3000원짜리 바지입고
근처 할인매장에 나갔다가
--------정말 깜짝 놀랐다.
대학교 1학년때 첫미팅해 몇달 사귀었던 남자가
세련된 옷을 입은 날씬한 부인과 함께
귀금속 상에서 목걸이셋트를 고르다가
나를 본 것이다.

지저분한 때낀 슬리퍼에
내 살진 허벅지...
문제는 더이상 이런 내모습이
수치스럽지 않다는 거였다.
너무 뻔뻔해졌나? 내가?
몇 마디 주고 받다가
그 부부들을 보냈는데
그들이 부러운 생각 전혀 안들더라는 것이다.
아마
가난한 생활에 대한
오래된 체념으로
포기한 마음으로 살다보니
이젠 질투도, 부러움도, 샘도
없어진 거였다.
워낙 그런 감정 별로 없었지만
이렇게 전혀 없을 수가...
실오라기만큼도.
그렇다고 내가 행복한 것도 아닌데
너무 이상했다.
나는 감정이 없는 인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