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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에도 가기싫다...1탄


BY 비가오네... 2001-07-30

대학교에서 전산학과를 마치고
98년 IMF시절 제가 대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다 정리해고되어
특별히 전문적인 기술이 있는것도 아니기에
모통신회사의 전화상담원으로 취직되어 10개월여 다니다가
(상담원 오십여명중 거의가 전문대,고졸이였고 대졸은 저를 포함 딱 두명이었습니다. 다른직원들의 대졸을 왕따시키는 분위기도 참으로 힘들었지요)
상담원의 일이란게 너무 힘들고 비인간적인 대우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고 지친 몸과마음을 잠시 쉬러 고향에 내려갔었습니다.
그당시 동생둘은 대학을 마치고 직장을 구하기위해 학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땐 아버지 혼자 직장에 다니고 계셨죠.

퇴근해 들어오시던 아버지가 저를 쳐다보지도 않으시더군요.
저녁밥상앞에서도 저한테 단 한마디도 건네지 않으시더군요.
눈물이 핑 돌아서 동생방으로 뛰쳐가 마구 서럽게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너무도 원망스럽더군요.
제가 회사를 관두고 온것이 보기가 싫었었나 봅니다.
며칠을 지내지 못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직장을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공공근로로 프로그래머를 뽑는다하여 그곳에 다녔습니다. 한달평균 65만원을 받으면서도 45만원씩 저축했습니다. 그땐 간장과 참기름에 고추를 잘게 썰어서 밥에 비벼먹었습니다.
너무나 맛있게 먹곤 했었죠.
그러다가 관공서 공공근로 프로그래머로 90만원씩 받으면서 1년을 일했습니다. 이때는 너무나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월급이 전보다 30만원이나 더 올랐으니까요.
90만원은 4년제대학을 마치고 처음 입사했던 회사월급의 절반밖에 안되는 돈이었지만 당시의 제겐 너무 감사한 액수였습니다.
90만원에서 한달에 60만원씩 모았습니다. 차츰 고기도 사먹고 과일도 사다가 먹었습니다.

사실 그시기에 한창 룸싸롱에서 아가씨 뽑는 광고가 많아서 거기에 나가볼까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전화로 알아보니 한달에 300이상은 벌겠더군요. 당시에 의대다니던 남자친구도 있었지만 남자친구따윈 염두에 둘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남자친구도 가난한집(당시에 집안이 부도났음) 아들이었고 우린 결혼하려면 너무도 오랜세월을 기다려야 가능할듯했고 내 스스로가 어떻게든 어떤식의 성공이든 그 성공이란것을 하기위해 몸부림치던 시절였으니까요. 그러나 제가 술집나가는것은 제 운명이 아녔나봅니다.

우린 KFC에서 치킨을 사먹는것도 큰 사치일정도로 궁했습니다.
까페에도 가보질 못했음은 당연지사이구요. 남자친구를 부둥켜안고 운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헤어질것같은 예감때문에요..
우리는 둘다 가난했지만 서로가 이상은 너무 높았거든요. 우리둘다 서로의 이상을 충족시켜주기엔 너무 모자랐거든요...
남친에겐 미안하고 남친도 저처럼 이쁜기집애가 초라한 행색으로 다니는게 가슴이 아팠던것 같더군요. 저는 그렇게 첫사랑였던 남자친구를 떠나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