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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싸우는 거 남일 아니다.


BY 오~이런! 2001-08-12

울 부부 막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모네 집에 갔다 어제 온 큰 애와
저와 같이 저녁나절 잠들다 깬 어리벙벙한 작은 애가 눈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성을 찾아야 된다는 것을 따지기 전에 도저히 차분히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라 성질 한번 내고 나왔습니다.

홧김에 술이라도 한잔 할까하다 1)내일이 월요일이고, 2)오랜 특근에
지친 몸 겨우 추스렸는데 또 피곤해질까 싫고, 3)혼자 마시는 분위기
싫어서 차를 끌고 동네 몇바퀴 돌고 pc방에 앉아 있습니다. 남자가
쫀하게 이러쿵저러쿵 마눌 흉이나 보려고 이러는 거 절대 아니란
전제 하에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 마눌은 일직이라며 출근을 했습니다. 어제 말로는 큰 애를
데리고 간다고(거기 가면 책도 읽어줄 수 있고 그런대로 6세 정도
아이면 같이 있을만 함.) 했는데, 큰 애가 일어나질 않아 그냥 혼자
출근했습니다.

전 한 열흘동안 밤새마다시피 야근을 했더니 낮과 밤이 바뀌어
수면이 항상 부족했고, 또 일요일이면 우린 늦잠을 즐기는 습관이
있어 애들 노는 소리에 깨어보니 9시 30분이더군요. 저 혼자라면야
대충 우유 한컵으로 아침을 때울텐데 그럴 수도 없고 해서 밥을
챙겨 먹었습니다.

마눌이 출근하기 전 해놓은 밥을 퍼서 담고, 나름대로 냉장고를
뒤져 좀 된 참치를 볶고 계란 후라이 두어개 하고 된장찌게 데워서
애들하고 먹었습니다. 밥 먹고 대충 그릇 씻고 과자부스러기 널린
방도 청소하고나니 금방 11시 30분이더군요.

다 하고나서 떼레비 앞에 앉으니 또 졸려서(전 절대 낮잠자는
체질이 아닌데 요즘 닭병 걸렸나 봅니다.) 한 사십분 잤습니다.
잠결에 어렴풋이 큰 애와 마눌이 전화통화를 하는 거 같더군요.
아마도 마눌이 큰 애에게 "네 아빠는 또 잠만 자니~~" 이런 식의
대화 같았습니다.

일어나 아이들과 놀았습니다. 6살과 3살 사내아이 틈에서 조용히
동화책 읽어줄 분위기 아니란거는 다 아실겁니다. 걍 시이소도
돼 주고 던졌다 받아주기도 하고 블럭 쏟으면 주워담고 그러다
1시 30분쯤 마눌이 큰 애를 데려오라는 말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왔습니다.

요기서 하나의 실수라면 큰 애를 데려다 주기 전에 밥이라도
먹였어야 하는데, 아침이 늦고 해서 그냥 데려다 준 겁니다.
뭐 간식거리라고 있을테지 하면서 델다주고 집에 와서 작은 애
밥을 챙겨서 먹였습니다. 참 줄게 넘 없더군요. 저야 뭐 김치
하나면 밥 한그릇 비우지면 두돌 지난 애는 다르지요. 비록
마눌이 바쁘지만 애덜 먹을 것은 좀 사다놔야 한다고 생각했습
니다. 생선조각 하나라도 있음 저 충분히 구워낼 능력 됩니다.

펄펄끓는 물에 넣으면 육개장 되는 거에 애에게 밥말아 먹이고
또 한참을 놀았습니다. 비가 안 오면 밖에 나가면 애도 좋아
할텐데 비도 오고 해서 안에만 있었더니 또 잠이 쏟아지더군요.
4시 30분쯤 거의 반 강제로 애를 토닥거려 같이 잠을 잤습니다.

눈을 뜨니 7시, 마눌이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안 오고
애도 자길래 "애라 모르겠다"하고 또 누웠습니다. 7시 30분에
일어나 밥을 할까하다 귀찮고 해서 데워먹자하고 있는데 마눌이
들어오더군요. 7시 45분, 큰 애가 배고프다고 해서 롯데리아에
들려 햄버거 먹고왔다 하더군요. 그러면서 밥도 안 했냐며 먼저
짜증을 냅니다.

자고 일어나서 한방 먹으면 무지 승질나는 거 아시죠. 저 그래서
한번 소리지르고 그릇 씻고 밥을 안쳤습니다. 뭐 해볼 요량으로
냉장고를 뒤지는데, 작은 애 생일날 먹던 곰팡이 난 팟떡 나오고
말라서 딱딱해진 밥 덩어리, 마눌이 저 준다고 해놓은 오래된
붙임게 반죽, 누런 물 생긴 수박덩어리가 나옵니다.

재료도 없는데다 뭘 할지 당황스러운데 그런 거 나오니깐 좀 승질나서
애들하고 아옹다옹 놀고있는 마눌에게 한 소리 했습니다. "애들 뭐
줄것도 없는데, 반찬좀 사왔어? 이거 버릴 거 나가서 좀 버리고 와!"
이런 소리 뭐 그리 좋은 말로 나오지는 않더군요. 몇번의 다그침에
나도 피고해라는 말을 먼저 질러놓고 마눌이 나오더니, 상한 반죽을
보면서 "이거 다 당신줄려고 가져온거야" 하면서 승질을 막 내더군요.

나도 압니다. 하지만 내가 뭐 먹기싫어 안 먹은 줄 아십니까. 요즘
바뻐서 야근하느라 잠잘 시간도 부족한데 새벽 시간에 와서 붙임게
붙여 먹을 수 있습니까. 전 화나서 "알어 알어, 그래도 상하면 버려야
될 거 아니야!" 승질 박박 내었더니, 마눌 왈 "너만 힘드냐, 너 야근
할 때 나 애 챙기느라 엄청 힘들었어, 넌 손이 없냐" 그러면서 "너
돈 많이 벌어봐, 내가 직장 안나가고 챙겨줄께" 합니다.

저 승질났습니다. 더 이상 마눌 얼굴 보고있자면 열불 날 거 같아서
현관문 팍 열고 나왔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뭐라
진지하게 마눌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또 서로 이해시키려고 마눌은 마눌대로 자기 주장을 하고 전 제나름의
주장을 하다보면 싸우고 애들 눈치볼 게 뻔합니다.

<마눌입장>
1. 직장생활 하랴 살림하랴 힘들다.
2. 남편 넘 일찍 오면 그래도 애들하고 놀아주니 좋은데, 이 넘이
근 열흘째 과부처럼 만들더니 모처럼 일찍 와선 잠만 잔다.
3. 그냥 남,녀가 할 일 가리지 말고 이 넘이 좀 해줬으면 한다.
4. 내가 일직이면 밥 해놓고 기다리다 밥 먹게 해주어야 정상이
아닌가.
5. (아주 오래전부터 싸울 때마다) 이 넘이 내가 직장생활 하면서
돈 벌어주는 고마움을 모른다. 남들처럼 내가 노는 줄 알고선...

<남편(내)입장>
1. 모처럼 야근에서 해방되니 잠만 쏟아진다. 정말 쉬고싶을 정도로
피곤하다.
2. 마눌이 일직이라 출근했으니 애들은 그래도 챙겨야 된다.
3. 집안 일 하는 거는 좋은데, 남들 눈에 띄는 음식물 찌꺼기 버리는
거 같은 일과 장보는 일은 마눌이 해주었음 한다.
4. 마눌이 늦네, 남은 밥이면 나와 작은 애 먹겠지. 애라 걍 쉬자.
5. (내 기본적 생각) 부부가 맞벌이 하는 거 이제 특별한 일 아니다.
내가 네 돈 떼어먹자고 돈 벌어 오라고 했냐.

이런 거 사는 모습이라 알지만, 어느 땐 정말 마눌이 잔소리꾼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입에 달고 사는 "너 돈 많이 벌어와라. 내가
직장 안다니지." 이 소린 정말 들을 때마다 승질부터 납니다. 저
공뭔이라 봉급 많이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고생하는 마눌이라 생각
하고 허튼 돈 쓰지않고 삽니다.

아줌마 방에 오고선 알게모르게 남, 녀의 생각차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껴 그냥 일상사 별일도 아닌 걸 지껄여봤습니다. 아무리 부부가
대화를 많이 하더라도 근본적인 사고까지 바꾸기는 힘듭니다. 그냥
애들 통해 뽀뽀를 전달하고 한번 웃고 말렵니다.

우리 부부는 사실 이 곳에 올라오는 많은 속상한 일에 비하면, 참으로
행복하게 사는 편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틈새는 보입니다. 어차피
내 입장에서 쓴 일방적인 글이기에 그냥 그대로 나열해 봅니다.

<마눌에게~>

1. 마눌아 너 앞으로 부부쌈 할때 직장다닌다고 그걸 나 돈 못벌어
그런다고 하지 좀 말아라. 걍 살림만 해봐라. 너 더 속상할껴.
2. 마눌아 너 직장에서 조금 속상한다고 집에 와서 이러쿵저러쿵
얘기하지 마라. 그 속상한 상사덜 내가 존경하는 분도 있고 직장은
직장인거지. 그거 은근히 스트레스 된다.
3. 너 무지 깔끔하고 부지런한데, 가끔 냉장고에 상한 거 있음 무지
화난다. 나도 가끔 요리하는데, 잔소리로 받고 걍 화부터 내지말고
웃으면서 받아들이면 안되냐.
4. 마눌아. 남들은 남편 피곤하다고 보약도 짓는데, 너 보약 져봤어.
물론 내가 밥이 보약이라면서 거절하지만, 속으론 나도 바란다.

<내 잘못>

1. 떼레비 늦게까지 보고 그래서 마눌 무지 스트레스 준다(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 해서~). / 씨팡~ 왜 볼만한 프로는 늦게 하냐.
2. 요즘 너무 자주 드러눕는다. 애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3. 어쩌다(10일 정도) 술 먹으면 뿌리를 뽑는다(12시 또는 1시).
4. 나이트나 노래방 가면 예전과 달리 아짐덜 하고 좀 논다.
(그 이상은 절대 아니다.)
5. 툭 하면 삐진다(마눌 생각)./ 난 싫은 소리 나오기 시작하면
귀찮아서 피해버리는데, 마눌은 삐진다고만 한다. 여기 글 올라
오는 다른 아저씨들 보단 덜 삐진다.
6. 직장에서 바쁜 일 있음 집에 거의 신경을 안 쓴다. / 같이 직장
만 안 다녀도 나 이렇게 열심히 일 안 한다.